[인터뷰] 장애인 접근권을 실현하는 행사, 이렇게 만들어 보세요

송정윤
2021-04-27

"장애인, 비장애인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행사는 어떻게 기획해야 하죠?"


"코로나19 때문에 화상 컨퍼런스를 처음 준비하게 되었어요"


고민이 많은 기획자들을 위해, 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들에게 물었습니다. 


활동가들은 "농인 당사자, 통역사와 행사 기획부터 함께하는 것"이 접근권 실현에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최근 늘어난 온라인 행사들이 "단지 수어통역, 문자통역이 있다고 해서 접근권이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코로나19 이후 장애인 접근권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어도 상황은 1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접근권을 예산이나 기술에 관한 문제, 어떤 요소를 추가한다고 실현되는 것으로 보지 말고, “일상적으로 논의하는 주제로 만드는  것”과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합니다.  


인터뷰이

레고 : 8년 째 상임활동을 하며, 한국농인LGBT설립준비위원회 상임활동도 겸하고 있습니다.

고운 : 작년에 장애인접근권팀 코디를 했고, 올해는 후원홍보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채영 : 2018년 자원활동가로 장애인접근권팀의 시작을 함께 했습니다. 작년에 상임활동가가 되었습니다.


순서

1. “오시는 길”부터 바꾸다

2. 한 편의 영화를 누구나 만날 수 있기까지

3. 온라인 행사의 표준을 만들다

4. 접근권 실현을 위한 첫걸음



“오시는 길”부터 바꾸다


독립문역 인근, 높은 언덕에 위치한 서울인권영화제 사무실에서는 “우리도 접근성 빻았잖아.” 라는 말이 주고받는 농담이 됐습니다. 


채영  이게 농담이 되는 분위기에서 가능한 대화가 있거든요.

레고  우리가 뭘 못하고 있는지 알고, 그럼 어떻게 논의해야 하는지 아는 조직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고운  사무실이 접근권이 안된다는 걸 알고 있으면 접근권이 보장된 미팅이 필요할 때 찾을 수 있는 선택지를 미리 마련할 수 있어요.


그래도 영화제가 열리는 장소만큼은 반드시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으로 정합니다. 2018년 영화제에 장애인접근권팀이 생기면서 행사 안내문에 흔히 쓰는 ‘오시는 길’부터 장애인 관객의 입장에서 다시 썼습니다.

 

레고  내가 휠체어 타는 사람이라면, 내가 보이지 않거나 들리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공간에 어떻게 있을 수 있는지 상상하는 것이 아주 중요해요. 보통 '오시는 길'에는 무슨 역에 내려서 도보로 몇 분이라고 써있는데, 시각 장애인이나 휠체어 타고 온 사람한테는 맞지 않거든요. 그래서 현장 답사를 가면 역에서 접근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어디에 있고 항상 켜져 있는지 확인하고, 거리와 시간을 계산해서 구체적으로 적었어요. 바닥에 유도블럭이 있어도 장애물에 가로막혀있지 않은 길로 안내해요. 성중립 화장실은 어디에 설치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이건 전반적인 접근권과 관련되어 있죠), 장애인 화장실은 성별이 구분된 건지 아닌지, 전동 휠체어를 충전할 수 있는 장소는 어디인지도 안내해야 하고요. 


채영  현장 주변에 있는 장애인 화장실을 다 가본 뒤 휠체어를 타고 갈 수 있겠다 싶은 곳만 정보를 줬어요. 입구의 너비를 재고, 휴지통은 잘 되어 있는지, 문은 잘 잠기는지, 휠체어를 탄 채로 잠그거나 열 수 있는지를 다 살펴보고 선택해서 정보를 제공했어요. 모든 경로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게 아니라 최적화된 경로에 대한 정보를 주는 거죠. 여러 개의 횡단보도 중에서 휠체어를 타고 또는 시각장애인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횡단보도만 안내하는 식이에요.



오시는 길과 공간 사용 정보가 담긴 안내문

23회 영화제 '오시는 길' 안내문에는 휠체어를 이용할 경우 최적의 길과 상영장의 휠체어 접근 정보가 구체적으로 제공되었습니다.



한 편의 영화를 누구나 만날 수 있기까지


불특정 다수의 대중이 찾아오는 영화제의 특성상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통역 등 상영작의 접근성은 필수적이었습니다.


레고  누가 올지 모르고, 그렇다면 누구든지 올수 있어야 했기 때문에 기본 조건을 다 갖춰 놓아야 했던 거죠. 영화에 수어가 있으면 수어 사용자들이 와요. 농인 사회에서 ‘저기 가면 영화 볼 수 있대’ 하고 소문이 나면 사람들이 와요. 그렇기 때문에 더 하게 됐었던 것 같아요.


야외 상영을 시작했던 20회 때부터는 화면 안에 수어통역을,  23회에는 한국어 자막에 소리 정보까지 추가된 자막해설을 넣었습니다. 농인 활동가들이 합류하면서 통역의 질도 달라졌습니다.   


고운  농인 활동가들이 이전에 수어통역을 붙여놓은 영화들을 한 번 본 뒤에 통역이 엉망이라고 피드백을 해줬어요. 번역기 돌린 것처럼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자막으로 봤다는 분도 계셨고, 한국 수어 어휘에 없는 어떤 인권 용어가 나왔을 때 그게 번역이 제대로 안 되어 있다든지 엉뚱하게 번역이 되어 있는 게 너무 많았던 거예요. 그래서 이번에는 청인 통역사랑 농인 당사자가 논의를 한 후에 촬영에 들어갔어요.


채영  자막해설을 쓰다 보면 청각 장애인 사이에서도 원하는 정보의 양이 다르기 때문에 그 중간 지점을 찾아야 해요. 예를 들어 ‘칙칙폭폭 기차 소리’라고 써야 하는지 ‘기차 소리’라고 써야 하는지, 또는 눈에 보이게 기차가 지나가면 소리 정보를 넣지 않아도 되는지, 경우에 따라 다 다르거든요. 어떤 정보가 이 영화를 전달하는 데 제일 나을지 고민해야 해요.



3050분, 한 편의 상영작을 완성하는데 걸리는 시간

한 편의 영화를 상영작으로 완성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3,050분에 달합니다.  


한 편의 상영작을 만들기 까지 긴 시간과 연출에 가까운 과정이 필요한 이유는 영화가 애초부터 장애인을 고려하고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작년부터는 자막해설을 감독들에게 직접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영화가 어떻게 전달되어야 하는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감독이라는 이유에서 입니다.  


채영  처음부터 장애인 관객을 생각하고 만든 다큐멘터리를 한 편 발견했어요. 이걸 보고 나니 감독님들께 자막해설을 요청할 용기가 났죠. 작업에 참여한 감독님 가운데 ‘내가 영화 초반부터 이걸 고려하고 만들었으면 아주 다른 영화가 나왔겠다’고 말씀하신 분도 있었어요.  


영화 뚜렛히어로의 한 장면

"머리를 길게 땋았고 안경을 써요. 오늘은 무테 안경을 썼고.."  24회 상영작 <뚜렛히어로: 나의 입과 나>에서 제시와 루스는 영화를 보거나 듣는  관객에게 직접 자기소개를 하고, 수어를 함께 사용하기도 합니다. 뚜렛증후군이 있는 주인공 제시가 내는 소리 “비스킷”은 어떻게 통역이 될까요?  

 


온라인 행사의 표준을 만들다


서울인권영화제에도 코로나19의 영향은 컸습니다. 야외 상영 대신 온라인으로 진행된 2020년 ‘코로나19 영화제’는 상영 원칙과 온라인 접근성을 다시 고민하게 했습니다. 


레고  기존 OTT 서비스는 이용하려면 회원가입과 로그인을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고, 우리의 슬로건과도 맞지 않았어요. “누구든지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상영 원칙을 온라인에서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그냥 유튜브처럼 누구나 클릭만 하면 영화가 재생되게 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로그인을 안 해도 되는 웹페이지를 만들었죠. 발달장애인도 읽을 수 있는 이지 리딩(Easy Reading)도 시도해 봤어요. 이건 진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데, '코로나19영화제'의 라이브 토크 송출 포맷은 농접근권을 실천하는 온라인 행사의 표준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채영  행사 기획을 농 활동가와 통역사와 함께했다는 것이 핵심이에요. 김보석 수어통역사가 기획부터 함께하자고 제안했는데, 회의에 참여했던 모두가 “그게 제일 좋네!” 했죠. 그렇게 시도하게 된 것이 화자와 수어통역사가 같은 화면에 같은 비율로 등장하는 거예요. 문자통역은 밑에 큰 글씨로 세 줄이 깔리죠. 그렇게 하는 곳은 지금도 거의 없어요.


고운  그전까지는 화면 구성도 진짜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행사는 행사대로 진행되고 통역은 통역대로 따로 진행된다고 생각하니까, 이걸 같이 보여주려면 카메라를 10대를 써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어요. 근데 농 활동가들이 “그냥 패널과 통역사를 같이 무대에 올리면 안돼?” 하더라고요. 그러면 다 해결이 되었던 거죠.

 

화상으로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

24회 영화제 관객과의 대화 에서는줌 화면을 가운데 두고 통역사들을 양쪽으로 배치했습니다. 화면에서 왼쪽에 있는 사람은 왼쪽 통역사가,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오른쪽 통역사가 맡습니다. 수어가 크게 보일 뿐 아니라 누가 누구를 통역하는지도 알아보기 쉽게 배치한 것이죠.

 

- TV 방송 뿐만 아니라 여러 온라인 행사를 봐도 수화통역이나 문자통역은 필수에 가까워졌어요. 비장애인의 눈에는 코로나19 이전보다 장애인 접근권이 훨씬 나아진것 처럼 보이기도 해요. 


레고  사실 농인들은 TV뉴스나 국회에서 나오는 수어통역을 보면 다시 한 번 해석해야 해요. 농인 당사자들이 사용하는 언어(한국수어)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현재 우리가 흔히 보는 수어통역사들은 대부분 '한국어 대응 수어'라는 유사 언어 체계로 통역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것에 대해 농인들이 문제제기를 하고 싶어도 통역사를 통하지 않으면 청인과 소통할 수 없으니 정확히 전달이 되지 않아요. 그리고 통역사는 “농인마다 수어 스타일이 달라서 이해 못하는 것이다.”, “농인마다 지식 수준이 달라서 이해도가 다르다.” 이런식으로 말을 해버리는거죠. 한국어를 쓰는 사람들이 말투, 환경 등이 모두 다르지만,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상황을 아예 이해 못하지는 않잖아요.



접근권 실현을 위한 첫걸음


1. 기획 단계에서부터 함께


레고  우리는 요청이 들어오는 곳에 질문을 10개 정도 써서 보내고, 사전 회의를 2,3일 정도 요청해요. 그렇게 행사에 대해서 우리도 이해하고 주최측이 필요한 것을 듣고, 화면 배치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논의하죠. 준비하는 행사를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고 싶고 행사의 내용 중에 반드시 전달됐으면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는 사실 행사를 기획하는 곳이 제일 잘 알거든요.  


단지 수어통역이나 문자통역이 있다고 해서 장애인 접근권이 실현됐다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특히 행사 준비 마지막 단계에서 수화통역을 부를까, 문자 통역도 할까. 이런 식으로 해서는 전혀 실현할 수가 없어요. 이럴 때 ‘통역 있음’은 좋은 말일 뿐이죠.  휠체어로 갈 수 없는 장소에서는 행사를 열지 않겠다고 선택할 수 있다면, 그건 장애인 접근권이 행사 기획 초기 단계에 영향을 미친 거잖아요? 그런데 왜 다른 장애들은 행사 기획 단계에서부터 영향을 미치지 않는지 생각해봐야 해요.


고운  회계를 담당하는 사람도 있고 기록을 담당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장애인 접근권을 총괄할 수 있는 사람도 필요해요. 문자 통역을 보면 사전 소통이 잘 됐는지 안됐는지가 엄청 티가 나요. 왜냐하면 너무 많은 말과 단체 이름과 사람 이름이 다 틀리게 나오거든요. 


채영  장애인 접근권을 어디에 누구한테 물어보면 제일 확실하냐, 누구를 섭외해야 되냐고 많이 물어보는데, 그 질문은 틀렸다고 생각해요. 계속 기술을 물어보고, 기술이면 젊은 사람들이 잘 알겠지 하고 젊은 사람에게 맡겨요. 근데 기술을 안다고 접근권을 실천하는 건 아니거든요.



2. 예산이 부족하다면?


채영  예산이 부족하다면 더더욱 기획단계에서부터 논의를 하는 것이 필요해요. 우리 행사에서 최소한 꼭 필요한 장애인 접근권이 뭔지 파악하거나 수요를 파악하는 방법을 고민하기 위해서, 적은 돈을 어떻게 가장 효율적으로 쓸 것인지 결정하기 위해서라도요.


레고   예산이 있고 없고는 사실 마지막 문제라고 생각해요. 못하면 못한 이유에 대해서 소통하면 다음에는 반드시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서로 고민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돈이 있으면 하고 아니면 다음에 하자라고 우리끼리만 얘기한다면 장애인 당사자들은 어떤 이유에서 자기가 그 행사에 갈 수 없게 된 건지 알 수 없잖아요. 


3. 접근권 가이드나 체크리스트가 있나요?


레고  사실 우리 단체도 ‘장애인 접근권을 실현하는 행사 만들기 가이드북’을 몇 년 전부터 만들고 싶었지만, 이제 그런 건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체크리스트라는 말이 왜 나오는지 생각해보면, 지금 당장 해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요. 빠르게 행사를 치르기 위해서 수어통역, 문자통역을 요소로써 배치하는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그보다는 접근권에 대한 담당자를 빨리 배치하고 접근권을 일상적으로 논의하는 주제로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해요. 

 

고운  체크리스트가 위험한 이유는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나요? (x), 비건 메뉴가 있나요? (x) 이러면 끝나버리니까요. 빙 둘러 가더라도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잖아요. 비건 메뉴 못한다면 밥 먹는 시간을 없애거나 지금 있는 메뉴에 뭐만 빼달라고 요청하는 식으로 바꿀 수 있듯이요. 체크리스트는 생각을 더 좁게 만드는 것 같아요. 


레고   그런 면에서 장애인 접근권 실현을 위한 인권행사 만들기 워크숍을 해보고 싶어요. 각자의 케이스들을 가져와서 얘기해보고, 장애인 접근권 논의를 처음부터 어떤 식으로 진행해 나갈지 같이 고민하는 거예요. 이런 워크숍은 저희처럼 비슷한 행사를 꾸준히 정기적으로 하면서 발전시켜 나가본 경험이 있는 단체가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인터뷰 진행 : 송정윤(야릉)

사진/이미지 제공 : 서울인권영화제

*서울인권영화제 '추모와 저항의 특별상영회' : http://www.hrffseoul24.org



서울인권영화제는 영화의 내용 뿐만 아니라 영화가 제작되고 상영되는 모든 과정에서 인권의 원칙을 지킬 때 ‘인권 영화’가 된다고 생각하는 인권단체입니다. ”인권영화는 누구나 차별 없이 만날 수 있어야 한다.”는 슬로건을 실현하기 위해 무료 상영과 장애인 접근권 등을 중요한 상영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1996년 1회 인권영화제 '영화 속의 인권, 인권 속의 영화’를 시작으로, 2020년 ‘코로나19영화제: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부터는 온라인 영화제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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