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0명을 만나면 7명의 생각을 들을 수 있고, 1명의 생각이 변하는 것을 경험해요.”

오정민
2021-06-17

‘난민과 함께하는 사람책 도서관’ 기획자 인터뷰


2018년 봄. 제주도에는 500여 명의 예멘인들이 입국하여 난민 신청을 했었어요. 심각한 내전 상태인 예멘을 떠나 타국으로 강제이주를 할 수 밖에 없게된 난민들이었지요.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는 난민들을 환영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제주도 난민 수용 거부’를 내건 청와대 국민청원이나 ‘난민 반대’를 외치는 거리 집회가 열리기도 했어요. 이 과정에서 이슬람 문화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이야기들이 퍼졌습니다. 


인권활동가들에게 이런 상황은 답답하면서도, 난민들이 저 멀리 다른 대륙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한국에서 이미 함께 살아가고 있는 구성원임을 알릴 수 있는 중요한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2019년부터 시작된 프로그램이 하나 있으니, 바로 난민 사람책 도서관입니다. 사람책 도서관이란, 사람이 책이 되어 자신의 삶의 경험을 ‘대출신청자(독자)’에게 들려주는 프로그램입니다. ‘난민과 함께하는 사람책 도서관’은 바로, 난민 한 명 한 명이 ‘책’이 되어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독자들과 대화하는 것을 말하죠. 


난민 사람책 도서관의 기획자이자, 올해로 9년째 난민/이주민 인권 옹호 활동을 해온 '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MAP)'의 김영아 활동가를 인터뷰 했습니다.




순서  

1.“이 책은 ‘사람’으로 만들어져 있으니 좀 더 조심히 다뤄주셨으면 해요.” 

2.“이 과정 전체가 내게는 치료과정 같았어요” 

3.“10명을 만나면 7명의 생각을 들을 수 있고, 1명의 생각이 변하는 것을 경험해요.” 




“이 책은 ‘사람’으로 만들어져 있으니 좀 더 조심히 다뤄주셨으면 해요.”

 

사람책 '프리맨피' 씨의 표지 : 에일리언 난민, 지역 주민과 살아가다사람책 '마이'씨의 표지 : 다른 나라에서의 마이 스토리

사람책 표지에는 책 제목과 저자인 난민의 이름, 책 내용이 간단히 소개되어 있어요. 


난민 사람책 도서관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2013년 한국에서 난민법이 시행되었을 때부터 시민들과 난민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를 많이 만들고 싶었어요. 경기도에서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평화인권교육을 하면서 난민, 이주민 당사자들이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들기도 했어요. 어떤 해에는 난민, 이주민 당사자가 프로그램 스텝이 되기도 했죠. 인권, 평화 분야 활동가들을 초청해서 ‘사람책’과 비슷한 시간을 갖기도 했는데, 반응이 가장 좋았어요. 사람과 직접 대화하는 게 정말 임팩트가 크다는 걸 확인한 거죠.


그러다 2018년 평화인권교육을 준비할 때 ‘제주도 예멘 난민 사건’이 일어났어요. 제게 강연 신청이 와서 ‘경기도에 이미 살고 있으며 학부모이기도 한 난민들이 직접 강연을 하는 건 어떠냐?’고 제안을 했는데, 결국 성사되지 못했어요. ‘난민이 직접 강의하는 게 부담된다’는 이유였는데, 예민한 시기이다보니 이해가 되면서도 아쉬웠죠. 그러다 ‘난민이 강의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학교로 직접 가야 겠다고 마음먹게 되었어요. 이렇게 2019년부터 ‘난민과 함께하는 사람책 도서관’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어떤 분들이 사람책이 되나요? 

난민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개선하기 위해서 한국 시민들과 더 많이 교류하려는 분들이 사람책 활동을 시작해요. 2019년부터 계속하신 분도 있고, 중간에 새롭게 들어온 분도 있어요. 우리는 매년 10명~15명의 사람책을 유지하려고 해요. 사람책들을 구성할 때부터 난민들의 다양한 조건들을 고려하고 있는데요. 난민은 국내체류자격에 따라서도 생활 조건이 달라지기 때문에 체류자격까지도 고려해요. 그리고 사람책 사이의 안전을 위해 동료 사람책이 나와 종교, 젠더, 문화가 달라도 우리가 상호 이해하고 배우며 성장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전동의를 받아요. 서로 적대하는 종교인이나 정치 지향을 갖은 이들이 동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난민 사람책 도서관의 운영 방식은요?

우선 사람책 도서관을 저희가 직접 여는 방식이 있어요. 도서관 ‘사서’가 된 활동가가 이렇게 안내를 하며 시작합니다. 

“오늘 사람책 도서관은 3시간 동안 열립니다. 사람책 하나당 대출시간은 50분이고요, 오늘은 두 권의 책을 대출할 수 있어요. 이 책은 ‘사람’으로 만들어져 있으니 좀 더 조심히 다뤄주셨으면 해요. 이 벽면에 붙은 사람책 표지, 제목, 간단한 소개글을 보고 사람책을 신청해주세요.”

그럼 참가자가 각자 대출 신청을 하고, 해당 사람책이 있는 테이블에 가서 앉으면 사람책이 20~30분 이야기를 하고 그후 독자와의 대화 시간을 가져요. 대화가 끝나고 나면 도서대출 후기를 곧바로 써서 공유도 하고요. 


다른 방식은 임시도서관을 여는 거예요. 사람책 도서관을 열고 싶은 모임에서 대출 신청을 하면 우리가 사람책과 함께 찾아가는 거죠. 대출신청하는 모임 및 참석자들 특성, 듣고 싶은 이야기, 장소 환경 등이 다양하기 때문에 대출신청이 완료되면 단체가 모임과 협의하여 기획을 같이 하기 시작해요. 



난민 사람책 도서관이 열리면,

사람책 1명과 서너 명의 독자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독자(대출신청자)가 사람책을 선택하기만 하는 건 아닌가봐요?

독자가 사람책을 직접 선택해요. 다만, 다양한 난민들이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책의 다양성을 고려하고 있어요. 난민들은 출신 국가, 인종, 젠더는 물론이고 문화권, 종교, 사용 언어, 직업 등이 달라요. 난민이 된 사유들도 다르고요. 특정 조건에서 이들이 난민이 됐을 뿐이지,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란 걸 알리고 싶어요. 그래서 최소 2명 이상의 사람책을 대화하게 하려고 하고요, 여러 명 갈 때는 최대한 다양한 조건을 가진 분들로 구성해요.



“이 과정 전체가 내게는 치료과정 같았어요”


주로 난민이 독자로부터 질문을 받고 답하게 되나요? 

사람책 도서관은 난민들이 질문받는 시간이 아니에요. 난민들은 난민 심사 과정에서도 일상생활에서도 너무 많은 질문을 받아요. ‘왜 한국을 선택했어요?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한국에서 힘든 점은 뭐예요?’ 등등 계속 같은 질문을요. 그래서 난민을 정신적인 코마 상태(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고 하기도 해요. 과거 이야기를 계속 반복해야 되지만 미래를 기획할 수가 없고, 현재에 갇혀 있는 상태를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죠.  그래서 사람책들과 하는 사전준비 워크숍에서 저는 이렇게 말해요. 

“사람책이 진행될 때 이 대화의 주인은 당신이에요. 당신의 삶을 엮어 책의 각 장을 쓴 거죠. 그러니 당신의 컨디션에 따라, 독자의 특성에 따라 들려주고 싶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면 돼요. 독자들이 질문을 하면, 어느 수준으로 답하고 때로는 다른 화제와 어떻게 연결시킬지, 어떤 질문은 정중히 거절하지 다 사람책이 끌고 가면 돼요.” 


통역인의 역할도 중요할 것 같아요.

사람책 테이블에서 사람책 옆에 통역자가 앉아요. 이럴 때 보통 사람들은 사람책을 보기 보다는 통역자를 바라보게 되는데, 이러면 사람책과 교감하는 게 어려워져요. 그래서 신청자들에게 통역을 들으면서도 사람책을 마주보며 대화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드리죠. 그리고 사람책이 신청자 3명과 대화하는 상황과 10명, 20명과 대화하는 상황에서의 통역은  많이 달라요. 같은 단어여도 국가나 문화, 언어 특성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기도 해요. 이런 다양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통역자에 대해 여러 번의 교육을 해요. 통역자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죠.   


사람책 주변으로 독자들이 둘러 앉아 있어요.

사진 가운데에서 사람책이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바로 옆에 통역인이 있지만 독자들은 사람책을 보고 있죠. 


유독 기억에 남는 사람책이 있나요.

사람책 시작한 첫 해가 강렬했어요. 고국에 두고 온 가족을 걱정하며 우울증과 수면장애 속에서 난민 심사를 기다리는 분이 있었어요. 이 분이 건강했을 때 주변과 잘 어울리는 매력적인 분이란 걸 알고 있어서 사람책을 하자고 했죠. 하지만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할 때 숨을 골라야 할 정도로 힘들어 하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해서 많은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눴어요. 이 분이 어느날 그러더라고요. ‘이 과정 전체가 내게는 치료과정 같았다.’고. 이와 달리 사람책 독자들에게 인기도 많고 즐겁게 얘기를 했던 분이 끝나고 집에 가서 허탈한 마음이 밀려와 힘들다고 말씀하신 경우도 있었어요. 그래서 매번 사람책이 끝나고 나면 오늘 어땠는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해요. 


독자들 반응은 어떤가요. 

평화캠프에서 사람책 도서관을 했을 때, 자신이 참여한 평화캠프 중 최고였다고 얘기해준 대안학교 학생이 있었어요. 나중에 학생이 학교에서 난민을 주제로 수업을 제안해서 저와 같이 수업계획서를 만들기도 했어요. 학교 교사들이 주변에 사람책을 추천하고, 그렇게 추천 받아 경험한 분들이 학교를 옮겨서 또 연락을 주세요. 이렇게 이어질 때 보람을 느끼죠. 


사람책 독서 감상문을 받으면 그 내용을 하나 하나 사람책에게 읽어 드리기도 하는데요, 사람책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응원하는 글, 난민을 만들지만 포용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통찰, 더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작은 행동을 하겠다는 다짐 이런 건데요. 이 메시지를 듣는 사람책의 표정과 눈빛을 볼 때 독자와 사람책 사이의 대화가 계속되고 있는 것 같아요. 



“사람책으로 10명을 만나면 7명의 생각을 들을 수 있고, 1명의 생각이 변하는 것을 경험하기도 해요.”


사람책 도서관이 계속되면, 어떤 변화가 생길거라고 보세요?

사람책이 제게 가끔씩 물어봐요. ‘우리가 이렇게 사람들을 만나는 게 무슨 도움이 돼요?’ ‘10명, 20명씩 만날 게 아니라 마팅 루터 킹처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제가 사람책을 한다고 출입국관리소가 바뀔까요. 제가 난민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럼 제 경험을 얘기해요. 제가 사람책 같은 방식으로 난민을 처음 만났거든요. 


스무살쯤 캐나다의 대학 어학당을 다닌 적이 있어요. 어느날 게스트 스피커가 왔는데, 저 보다 몇 살 많은 르완다 학살 생존자였어요. ‘호텔 르완다’ 같은 영화에서 본 사건의 생존자가 실제 앞에서 폭력의 경험과 난민으로서의 삶을 이야기하는 데 큰 충격을 받았어요. 이 기억이 계속 마음에 남아서 10년 뒤에 난민 인권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 뒤 6년이 지나고 나서 사람책 도서관을 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해요. 


사람책 독자들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무엇을 할지는 지금 알 수 없어요. 다만 사람책으로 10명을 만나면 7명의 생각을 들을 수 있고, 1명의 생각이 변하는 것을 경험하기도 해요. 지금 만난 10대가 몇 년이 지나면 사회활동을 하고, 투표를 하게 되겠죠. 



인터뷰 진행 : 오정민(우공)

사진/이미지 제공 : 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MAP) 

사람책 목록을 보고 대출 신청하기 : http://mapcast.org/humanbook


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Migration to Asia Peace, MAP) 은?

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Migration to Asia Peace, MAP)는 난민처럼 분쟁과 박해로 삶의 터전을 떠나는 비자발적 이주 문제에 대해 시민의 관심을 촉구하고 국내 난민의 존엄과 삶의 회복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는 인권단체입니다. 이주민/난민과 함께사는 사회를 고민하는 평화교육과 함께 상시 난민 상담과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의료사각지대에 있는 난민의 건강권을 위해 무료건강검진, 통번역, 자원연계, 건강뉴스 배포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코로나 방역정보의 번역과 전달, 방역물품 지원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읽는 사람

뉴스레터 읽는 사람을 구독하고
인권의 관점으로 세상을 읽어보세요.

인권활동이 계속될 수 있도록

후원에 참여해 주세요.

지금, 당신의 연대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