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을 이해하기 위한 4가지 질문

송정윤
2021-06-02

작년 11월, 중견기업들의 채용 시즌에 있었던 일입니다.

박카ㅅ 음료로 잘 알려진 동아제약의 면접관이

한 여성 지원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ㅇㅇㅇ씨는 여자라서 군대에 가지 않았으니

남성보다 임금을 적게 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옆자리 남성 지원자들에게 군 생활에 대해 묻더니,

그 다음 던진 질문이었죠. 

올해 3월, 여성 지원자는 이 사건을 폭로했습니다. 

(참고 :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피해자입니다”)


사원 수 900명이 넘는 기업에서

여전히 성차별적인 면접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해당 기업이 여성 소비자의 마음을 사기 위해

생리대 할인 이벤트까지 벌이던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었죠.


그리고 지난 주 그는

국회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국민동의청원’을 쏘아올렸습니다.

(청원 보기: https://bit.ly/equality100000)


청원 내용에 따르면, 그는

본인 뿐만 아니라 누구도 언제든

배척과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 청원이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성립되면, 

국회는 반드시 차별금지에 관한 법안을

심사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됩니다. 

국민이 국회를 압박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인 것이죠.


청원이 시작된 후 SNS 타임라인이 후~끈 달아올랐는데요. 

락스타 황소윤씨를 비롯한  99인의 제안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6만여 명의 참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드디어, 우리는 처음으로,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을 논의하는 시간을 맞이하게 될까요? 


다가올 국회의 시간을 기다리며, 오늘은 차별금지법에 대해

  • 많이 들어는 봤는데,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어
  • 제정된 건줄 알았는데, 아직도 안된거야?
  • 좋은 법이라면서 왜 안 되는거야? 뭐가 더 필요한거야?

를 궁금해하는 분들을 위해 정리해 봅니다.



순서 

1. 차별금지법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금지하는 법인가요?

2. 이 법을 안 지키면 처벌받나요?

3. 근데 왜 제정이 안되는 거예요?

4.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뭐가 좋아요?

+ 그럼 나는 뭘 할 수 있죠?




1. 차별금지법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금지하는 법인가요?


언제 어디서 :

채용 과정에서, 일터에서, 학교 등 교육 현장에서, 

주거시설, 병원, 교통수단 등을 이용할 때,  

행정 서비스 등을 제공할 때 등


이런 이유로  :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인종, 혼인여부, 가족형태,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 등 23가지 이유로


이런 행위를  :

특정한 사람을 불리하게 대우하거나, 

정당한 편의 제공을 거부하거나,  

괴롭힘을 가하거나, 성희롱을 하거나, 

차별을 조장하는 광고 등을


하지 않기 위한 법입니다.

(참고 : 차별금지법안 살펴보기)



2. 이 법을 안 지키면 처벌받나요?


그렇지 않아요 :

예를 들어 위의 동아제약 사건을 보고
"기업이 뽑고 싶은 사람 뽑는 게 무슨 차별?" 이라고
친구한테 말했다는 이유로 멱살을 잡힐 수는 있어도
이 법으로 처벌받지 않아요.
우리는 모든 걸 “법대로!” 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단, 이 법을 근거로 해서
학교나 일터에서 인권에 대한 토론과 교육,
평등한 조직생활 원칙등이 만들어질 테고
그렇게 차츰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뒷배가 생기는 것이죠.


예외는 있어요 :

직장에서 차별받았다고 신고한 사람을 해고하는 등
회사가 불이익을 준다면, 처벌받을 수 있어요.
차별을 시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권한을 활용해 보복하려 한다면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이 당연하겠죠?



3. 근데 왜 제정이 안되는 거예요?


국회에선 시계가 거꾸로 가서요..

일단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려면

1) 국회의원  10명 이상이 모여 법안을 제출하거나

정부가 법안을 만들어 제출하고

2)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사를 한 후

3)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투표를 거쳐야 하는데요, 


1) 법안 제출은 2006년부터 7차례나 되었지만,

2) 제대로 된 심사는 하지도 못한 거죠.


4년 주기의 국회 임기가 끝날 때까지

빛도 못보고 있다가 폐기되거나,

반대에 부딪혀 철회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답답한 현실을 보다 못한

국제인권기구들에서 법 제정을 촉구하기도 했지만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 (2007, 2018)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2011, 2018)

유엔 자유권위원회 (2015)

유엔 사회권위원회 (2017)

유엔 아동권리 위원회( 2011, 2019)...

 국회는 침묵했는데요. 그 이유가 뭘까요?


"각 교회가, (차별금지법에) 동조한 의원들

절대 다시 국회 보내면 안된다고 하니까, 

각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너무 겁먹은 거예요." 

- 김한길 전 의원


"'우리 지역에 어느 성직자하고 약속을 했다. 

성직자가 절대 하면 안된다고 한다. 

이런 논리들이에요. 

차별금지법 찬성하는 세력은

별로 표를 갖고 있다고 생각 안하죠."

- 민주당 이상민 의원

(출처: 차별금지법 실패의 연대기, 닷페이스)


국회는 바로 이런 이유때문에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논의 자체를 미루거나,

침묵하기를 반복했습니다. 


보수 기독교계, 보수 언론사들은

차별금지법에 관한 가짜뉴스를 수없이 생산했고,

"말 한마디 잘못하면 감옥간다."는 식의 두려움을

반대의 근거로 삼도록 했죠.


그럼 국회의원들이 이해관계에 눌려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있는 사이, 

국민들 생각도 거꾸로 갔을 까요?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2019년 '혐오표현 국민인식조사' 에서 72.9%가,

2020년 '국민인식조사' 에서는 무려 88.5%가

차별 금지법 제정에 찬성한다고 응답했습니다.


2020년 개신교인 대상 인식 조사 결과에서는

42.1%가 '차별금지법 찬성',

38.2%가 '차별금지법 반대' 로 찬성이 앞설 만큼

변하고 있습니다.


차별을 금지하는데 다수의 합의가 꼭 필요한가에 대한

논쟁이야 있지만,

국민들은 이미 사회적 합의를 해 내고 있습니다.



4.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뭐가 좋아요?


첫째, 

12년 전 만들어진 '장애인차별금지법'으로 미루어보면,

몰랐던 차별을 인식하고, 더 민감해지는 효과가 있어요.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당시 내가 겪은 일이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은 행동이었다는 걸 비로소 인지하게 됐다."

(출처 : 발달장애아동 엄마가 돼서야 알게 된 세상)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선천적 장애인은 의지가 약하다” (이해찬) 거나

“절름발이 총리” (주호영) 라는 발언을 하면

장애인 비하로 큰 비판에 직면할 뿐 아니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시정 권고도 받을 만큼

사회는 변했습니다. 


둘째, 

이런 개별적인 법안보다 차별금지법이 가진 장점은

“교차적 차별” 에 더 민감해질 수 있다는 건데요.


내가 여성이고, 장애인이고, 나이가 어리다면

어느 한가지 이유로만 차별을 설명할 순 없어요. 

한 사람을 구성하는 정체성은 다양하고

상황에 따라 도대체 뭐 때문에 차별받은 건지도

정확히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더 많죠.


“제 인권을 반으로 자를 수 있습니까?”


차별금지법은 차별해선 안되는 사유를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복잡 미묘하고 은연중에 벌어지는 현실의 차별을

더 잘 포착하고 시정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죠.


셋째,

무엇보다 이 법은, 만들어지고 다듬어지는 과정 자체로

평등이 무엇이고, 차별이 왜 나쁜지

치열하게 토론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한국 민주주의의 위대함과 성숙함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 홍성수 교수

(출처 : 차별금지법 제정, 이제 정치와 입법의 몫)



요약하면,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당장

천지개벽이 일어나진 않고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혼쭐나지도 않지만

내가 몰랐던 차별에 민감해지고

이걸 어떻게 해결할 지 토론하게 되서

우리 사회가 보다 성숙해진다는 겁니다.

대체 이런 법을 왜 15년 동안 묵혀야만 하는지..



+ 그럼 나는 뭘 할 수 있죠?


이렇게 정리를 마치려니 지난 3월,

우리가 잃어버린 사람, 

차별때문에 놓쳐버린 사람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저는 이 사람만큼 나라와 국민을 지키겠다는

정신이 투철한 사람을 이제껏 본적이 없습니다.


차별금지법이 있었다면  변희수 하사는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강제 전역 당하지 않고

당당한 군인으로서 우리에게

더 큰 용기를 주고 있지는 않을까요.

그럼 제가 그에게 빚진 것 같은 마음도

돌려줄 기회가 있었을 텐데요..


이렇게 소중한 사람들을

차별의 희생자로 떠나 보내지 않으려면,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선택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 작은 선택 뒤에는 무려 15년 간 불굴의 의지로

다양한 차별의 장면들을 하나로 모으고 

국회와 국민들을  설득 또 설득하기를 멈추지 않은

인권활동가들이 버티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당신 개인의 힘도 무시하지 말고,

조금 시간을 내서 국민동의청원에 참여하면 어떨까요?


지금이 바로 

잠자고 있는 국회를 깨우는

당신의 힘을 보여줄 시간입니다. 


차별금지법 제정 청원 참여 : https://bit.ly/equality100000

청원 참여 방법 : https://equalityact.kr/100000-guide


뉴스레터 읽는 사람을 구독해 보세요.

2주에 한 번, 한가지 인권 이슈를

읽을만한 글과 함께 보내드려요.

인권의 관점으로 세상을 읽어보는 뉴스레터.

2주에 한 번, 하나의 이슈만 골라서 읽을만한 글과 함께 보내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