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과 공중화장실, 모두를 위한 공간일까요?

정민석
2021-04-23

어느 동네를 가든 24시간 이용 가능한 편의점이 있습니다.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편세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편의점이 근처에 있다는 것은 집을 선택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언제든 갈 수 있고 1+1 제품을 사면 이득을 본 것 같기도 합니다.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소량으로 필요한 만큼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만으로 대형마트보다 편의점을 먼저 찾게 되는 것은 ‘편의’가 ‘비용’보다 얼마나 더 중요해졌는지 보여주는 지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편의’를 모든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은 편의점 앞에 있는 계단과 문턱 때문에 들어가기조차 어렵습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없는 겁니다. 지난 3월 인권활동가들은 CU편의점 본사를 찾았습니다. 대구 지역 CU편의점 10곳 중 8곳 정도가 매장 출입이 어렵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촉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작년에는 광화문에 있는 스타벅스, 올리브영 등 유명 브랜드점 앞에서 출입을 가로막고 있던 계단을 뿅망치로 두드리는 퍼포먼스를 하며 “커피 한 잔의 여유”, “1층이 있는 삶”은 모두 함께 누리자고 외치기도 했습니다.

 

CU편의점 앞 장애인 접근권 보장 촉구 기자회견

지난 3월 5일, 장애인 접근권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CU편의점 앞에서 열렸습니다. 장애인 당사자들이 "차별금지", "나도 손님이 되고 싶다" 라고 쓰여진 피켓을 들고 있습니다. 사진: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하루에도 몇 번씩 이용하는 화장실 또한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공간입니다. 그곳에서 볼일을 보고, 손을 씻고, 옷매무새를 정리하기도 하는 등 하루에도 몇 번씩 이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별로 나뉜 공중화장실 앞에서 이용을 망설이거나 아예 이용조차 하지 못하는 누군가가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9.2%가 화장실에 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음료를 마시거나 음식을 먹지 않았고, 40.9%가 부당한 대우나 불쾌한 시선을 받을까 봐 자신의 성별정체성에 맞지 않는 시설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정의당은 3월31일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을 맞아 국회부터 성중립 화장실을 설치하자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나도 손님이 되고 싶다.”, “눈치 보지 않고 화장실을 이용하고 싶다.”는 요구가 누군가에게는 소박하게 들릴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절박한 권리입니다. 혹자는 사회적 비용을 운운하며 이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하냐고 푸념하기도 하지만, 사회적 소수자들이 차별의 경험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우리는 편하게 편의점을 이용하면서, 눈치 안 보고 화장실을 이용하면서 그곳에 차별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불편함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인권재단 사람이 운영하고 있는 인권중심사람은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이 어려움 없이 이동할 수 있게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고, 모든 공간에 문턱이 없습니다. 또한 성중립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어 트랜스젠더를 포함해 누군나 눈치보지 않고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인권중심사람 역시 접근성이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공공기관 등에서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한 시도가 전혀 없다 보니, 이 공간을 답사하기 위해 적지 않은 분들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인권중심사람 화장실

 인권중심사람에 있는 '비장애인도 함께 쓰는 장애인 화장실'과 '성별 구분 없는 1인 화장실'.


모두를 위한 공간은 몇몇 인권단체들의 활동만으로, 일부 개인들의 성찰만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바닥 면적 300㎡(약 90평) 이하인 건물은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하지 않아도 되고,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공중화장실은 반드시 남녀로 구분되어 있어야 합니다. 견고하게 버티고 있는 법과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모두를 위한 접근권은 불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계단을 차별이라 말하고, 지정성별 중심으로 구획된 공간이 차별이 될 수 있음을 지속적으로 문제제기 한다면, 그 견고함을 언젠가 깨트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당신이 의식하지 않고 누렸던 일상의 공간 속에서 혹시 다른 누군가가 배제되진 않았는지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차별을 감지하는 인식이 확산될수록, 계단과 성별이 가로막은 접근성은 언젠가 모두에게 닿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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