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충전]안식년 아니었으면.. : 울릉도 여행

병원에서 전공의 생활 5년, 단체 활동가로 6년 총 11년의 ‘직장’생활을 하기 직전, 울릉도에 다녀왔었다. 의사 면허 시험 전에 주어진 자유 시간이 있어서 큰맘 먹고 다녀온 것이었는데, 그 때 울릉도가 내게는 먼 곳의 섬이라기보다, 따뜻한 가을볕 들던 산골로 다가왔었다. 언젠가 다시 가고 싶은 아늑한 곳. 하지만 멀기도 하고, 태풍이니 눈이니 하는 계절에는 가기 어려운 곳이라 다시 찾기는 어려웠다. 2021년 안식년을 맞아, 이 때 안 가면 언제 다시 가겠냐 싶어 <일단 쉬고> 프로젝트에 지원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 울릉도는 ‘이 때 아니면 가기 어려운’ 곳이었다. 강릉에서 울릉도 가는 배편을 예약하고, 거기에 맞춰 서울에서 강릉 가는 기차와 아침 배를 타기 위해 강릉에서 하루 묵을 숙소까지 예약을 마쳤는데, 출발 열흘 전에 갑자기 강릉 배편은 11월 중순부터 운항하지 않는다는 연락이 왔다. 아니, 그럼 애초에 표를 팔지 말 것이지.


다행히 울릉도 여행 비수기여서, 포항에서 출발하는 쾌속선으로 예약을 변경할 수 있었다. 그런데 포항에서 가는 배는 저녁 늦게 도착하고 나올 때는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해서, 울릉도에서 하루 더 묵는 것으로 여행 일정도 바꿨다. 바뀐 일정에 맞춰 숙소와 포항행 기차까지 모두 예약 하고 나니, 마지막 숙소 주인장께서 뒤늦게 연락을 줬다. 강풍으로 쾌속선 안 뜨는 날이 많으니 쾌속선 말고 올해부터 운항을 시작한 크루즈를 타고 오는 게 좋겠단다.


다시 배를 바꾸고 배 시간에 맞추어 포항가는 기차까지 바꾸고, 헥헥. 우여곡절 끝에 밤 12시에 포항에서 출발하는, 6시간 걸리는 크루즈를 타고 울릉도로 들어가게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내가 들어간 날, 나오는 날은 쾌속선도 모두 운행을 했으니 큰 이득은 없었고, 심지어 마지막 숙소 주인장 본인이 육지에 나갔다가 못 들어오는 바람에 그 숙소도 이용을 못 하게 되었다. 아이고, 정말 문턱이 높은 섬이다.


울릉도 여행 내내 바람이 많이 불었다. 바람이 티나는 사진을 골랐다.


밤새 달린 배를 타고 아침 일찍 도착하여, 울릉도에 도착하자마자 11년 전 못 탔던 해상 유람선을 타고 울릉도를 밖에서 구경했다. 깎아지른 바위들, 이 먼 바다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내려앉은 섬은 섬 바깥, 배에서 볼 때만 볼 수 있는 풍경을 잔뜩 품고 있었다. 울릉도가 밀고 있는 ‘Mysterious island’라는 말이 와 닿는 풍경이었다.


숙소에 짐 풀고 나서는 10년 전 못 가봤던 석포 옛길을 걸었다. 11년 전 뚜벅이로 울릉도 전체를 일주한 여행의 마지막 일정이었는데, 다음날부터 배가 안 뜰 것 같으니 급히 나가라는 충고에 눈물을 머금고 걷지 못 했던 길이었다. 산길을 걸으며 보니, 그 때 없던 터널이 두 개나 뚫리고 그래서 완공되지 못 했던 일주도로도 연결돼 있는 풍경이 멀리 보였다. 와, 11년 동안 울릉도도, 나도 많이 변했구나.

 

도착 첫날부터 11년 전 못 했던 두 가지를 하고 나니 뿌듯함도 잠시. 숙소 들어가는 길에 택시 운전기사 분이 ‘왜 안 나가셨어요?’ 한다. ‘저희 오늘 들어왔는데요.’ ‘관광하기 좋은 때는 아니네요.’ 아니나 다를까, 그날 오후부터 쾌속선은 못 들어왔다 하고, 다음날부터는 우리가 나올 때까지 크루즈도 못 떴다. 먼바다 풍랑 뿐 아니라 섬에도 강풍이 불어 해안가 관광은 불가능했다. 입도 3일 째에는 느지막히 일어나 바람이 덜 불 것 같은 나리분지에 가려고, 버스로 일주도로 돌다가 길을 덮치는 파도와 바람이 너무 무서워서 다시 버스 타고 숙소로 들어갔을 정도다. 비싸다지만 큰맘 먹고 먹어보려던 독도새우도, 울릉도 가면 너무 흔해서 시시하게 여겼던 오징어 회도 먹을 수가 없었다. 어선도 풍랑으로 못 뜬 것이다. 5일째에는 편의점에 빵도 떨어져 가더라. 언택트니 메타버스니 새로운 세상으로 달려나가는 척해도 여전히 바람이 불면 배가 뜰 수 없고, 그러면 고립되는 섬의 삶이 있었다. 여전히 자연 앞에서 인간은 작고 작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바람 때문에 해안 관광은 거의 불가능했고, 울릉도 여행은 트레킹으로 점철되었다. 주로 바람과 파도로부터 안전한 산길을 찾아다니다보니, 왜 울릉도 원래 마을들은 골짜기에 있었는지, 섬 사람들은 오래도록 왜 해안길 대신 산길로 돌아 다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나마 여행 막바지에는 바람이 조금 잦아들어(여전히 육지 가는 배는 뜨기 전이었다) 아름다운 행남해안길-도동저동길을 걷고, 울릉도 최고 비경인 북면 해안선을 볼 수 있는 대풍감에 오래도록 앉아 구경할 수 있었고, 마지막 날에는 섬 일주 유람선도 한 번 더 탈 수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 날 일출 때 육안으로 독도를 볼 수 있었다. 보이시나요?


서울에서 흔히 겪기 어려운 바람 덕에 이 섬이 오기 어려운 섬이라는 걸 절감했다. 동시에 태풍도 아닌 바람에 이렇게 불안한 해안 도로를 보면서, 여전히 여기저기 뚫고 있는 해안 터널 공사가 꼭 필요할까? 일 년에 몇 달씩 보수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이 섬과 해안도로가 안 어울린다는 얘기는 아닐까? 너무 좁아 보이는 부지에 추진하고 있는 울릉도 공항 공사는 정말 적합할까? 이런저런 걱정도 들었다. 따뜻한 가을볕으로 기억되던 울릉도가 앞으로 조금은 쌀쌀하게 기억될 것 같은 것은 날씨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쉬러 가는 곳도, 삶이 있고 갈등이 있고 고민이 있는 현장이구나.’ 당연한 것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쉬는 게 따로 활동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 안식년 막바지에 울릉도가 알려준 듯 하다.



글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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