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충전]"우리 진짜 놀러가? 워크숍 아니고?"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오소리)
2023-10-13

워크숍 아니고 여행!

‘2023 인권활동가 재충전 프로젝트 일단, 쉬고’에 선정된 이후 사무국 활동가 3인은 제법 들떴습니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으니 자비를 내어 운영위원들도 함께 재충전의 시간을 갖기로 했어요. 

프로젝트의 취지에 맞게 이번 재충전의 목표는 정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놀기’였습니다. 결심을 하면서도 반신반의했고 계획을 짜면서도 믿지 못했죠. 무의식적으로 워크숍이란 단어가 튀어나오면 누군가 바로 지적을 했어요. "워크숍 아니고 여행!" 


아무 계획이나 무엇을 챙길 필요도 없이 있어도 된다는 것  

프로젝트에 선정된 5월부터 8월까지 운영회의 회의록 하단에는 ‘쉼 프로젝트’가 자리했어요. 빽빽한 일정들을 논의하고 나면 우리에겐 함께 놀기 위한 계획이 있다는 것이 숨쉴 틈을 주었어요. 회의 내내 지쳐있던 이들이 쉼 계획을 세울 때는 초롱초롱해집니다. 8월 말이 휴가 막바지라는 점을 고려하여 준비를 서둘렀어요. 그런데도 숙소를 찾는데 한참 애를 먹고 차량을 선정하는 데는 아쉬움이 남아 이런 저런 방법들을 고민해보기도 했죠. 운영위원들이 모두 함께 타고 갈 수 있는 7인승 이상의 차량을 운전할 수 있는 이가 없었거든요. 결국 사무국은 렌트를 하기로 하고, 운영위원들은 자차로 이동하기로 했어요. 다 함께 같은 차를 타고 가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서울 내에서도 사는 위치가 각자 멀기도 해서 차라리 효율적이기도 했죠. 따로 가는 즐거움도 있더라고요. 가는 내내 우리는 어디쯤이다, 서로 위치를 공유하면서 실시간 대화를 나누고 휴게소 회동의 반가움도 누릴 수 있었거든요. 

숙소는 하조대해수욕장 인근 펜션이었어요. 해수욕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도보로 이동 가능한 숙소의 위치는 최적이었어요. 오래된 가정집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작은 펜션이었지만 방도 넉넉하고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머물기도 좋았답니다. 도착해서 짐을 풀고 진짜로 무작정 해수욕장으로 향했어요. 가장 신났던 순간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 모두 다 하나같이 말했었죠. “이런 기분 진짜 처음이야.” “다음 계획없이 이렇게 나가도 되는 거야?” “언제까지 다시 모여. 다음에 뭐 할거야. 이런 게 진짜 없어도 되는 거야?” 몇 시까지 소집한다는 공지 없이, 다음 프로그램에 대한 준비 없이, 정말 아무 계획이나 무엇을 챙길 필요도 없이 있어도 된다는 건 의아하고도 가벼운 기분이더군요. 그동안 그나마 친밀하게 활동해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 '우리가 정말 일로 만난 사이긴 하구나'라는 걸 확 느꼈어요. 

 

(△ 하조대 해수욕장에서 신나는 물놀이)


날씨는 정말 물놀이 하기에 최적이었어요. 튜브에 둥둥 떠다니기도 하고, 공놀이도 하고, 짠 바닷물을 마시며 수영도 즐기다가, 모래사장에 퍼져 앉아 캔맥주를 마시거나 게임도 하면서 서로의 편하고 장난스런 얼굴을 보았어요. 2시간 정도 놀다가 숙소로 돌아와 바베큐 대신 회를 사다 술 한잔 기울였네요. 평소 회의에서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나누다가 얼큰하게 취할 때쯤 다시 바다로 나갔어요. 밤바다는 한없이 고요해보이는데 파도소리, 바람소리에 더해 저 멀리에선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모래사장 위에서 폭죽을 터뜨리며 노는 무리진 사람들의 모습이 영락없는 휴가지의 바닷가 풍경이었어요. 그 틈에 섞여 각자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열심히 사진을 찍기도 하고 맥주를 들이키며 비틀거리다 문득 멀리뛰기 시합을 시작해버렸어요. 누군가는 평소 단련한 근육을 자랑하는 시간이자, 누군가는 나자빠져 내일의 몸상태를 걱정하게 한 시간이었지만, 취한 채 한바탕 놀기엔 더없이 좋더라고요. 온갖 변종으로 신발 멀리던지기, 한 발 뛰기 등등 내키는 대로 몸을 쓰며 놀았어요. 그러다 숙소 키를 잃어버려 우리가 지나온 길을 되짚으며 모래사장을 뒤졌던 소동도 잊을 수 없는 해프닝이랍니다. 두고두고 추억으로 소환될 것 같은 장면들을 참 많이 만들었어요. 

 

(△ 고요한 밤바다에서 멀리뛰기 중…)

 

이튿날 아침, 낙산사 혹은 하조대 전망대로 산책을 가려던 계획은 숙취에 괴로워하는 몸들로 인해 무산되고, 대신 인근 예쁜 카페에서 모닝커피를 즐겼어요. 앞으로 이렇게 멀리는 오지 말자고, 다음엔 회원들과 함께 이런 시간을 보내도 좋겠다고, 서로의 새로운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날씨가 참 좋았다고,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서 이런저런 감상도 나누었죠. 그러면서 한바탕 또 깔깔거리다가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서울로 돌아왔답니다.

인권활동가 재충전 프로젝트 ‘일단 쉬고’ 덕분으로 이사 준비와 하반기 사업들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기에 앞서 정말 잘 충전하고 돌아왔어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활동’ 얘기 없이도 잘 놀았다만, 사실 거의 모든 얘기가 ‘활동’의 언저리를 맴돌았던 양양에서의 1박2일, 행성인 사무국 잘 ‘쉼’!😊


글  | 오소리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편집 | 황서영 (인권재단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