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활동을 하게 될 줄은
택시를 타고 가던 길이었다. “사고 다발 지역입니다. 주의하세요.” 내비게이션에서 안내가 나왔다. 그 순간 ‘아, 사고가 나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죽음을 일상적으로 떠올렸다. 이대로 죽고 싶단 생각을 늘 품고 살았다.
“넌 상담을 해야 돼” 점쟁이는 확신하듯 말했다. 상담이라니,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진로였다. 전공이나 그간 경력엔 상담과 관련한 일은 전무했다. 그냥 ‘돌팔이네’ 생각하고 그 말을 넘겼다.
그해 7월, 나는 디지털 성폭력 피해경험자를 지원하는 시민단체의 활동가가 되었다. 영화를 전공하고 디자인 공부를 한 나는 영상을 제작하고, 카드 뉴스를 만드는 등 디자인 작업을 주로 했다. 그러다 피해지원팀 인력이 집단 퇴사를 하면서 내가 피해경험자 상담을 하게 됐다. 피해지원은 피해경험자와 상담하고 단체에서 어떤 지원을 할 수 있을지 모색해, 피해경험자가 일상을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상담’을 하게 된 것이다. 돌팔이라고 생각했던 그 점쟁이는 사실 꽤나 용한 사람이었을지도.
나에게도 상담이 필요해
피해경험자의 회복이 나의 성적표같이 느껴졌다. 피해경험자가 힘들어하면 그게 다 내 책임 같았다. 내가 상담을 잘 못해서 회복되지 않는 거 같은 느낌은 나를 옥죄었다. 피해경험자가 하필 나에게 전화를 걸어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하면 어쩌지? 라는 고민이 늘 맴돌았다. 상담 전화를 받기 싫었다. 선배 활동가의 노련한 상담을 보며 두려웠다.
나는 ‘삭제 지원’도 담당했었는데, 사이버상에 유포된 불법 촬영물을 찾아 지우는 일이었다. 법률 지원과 달리 삭제 지원에는 종결이 없었다. 삭제해도 제목만 바뀌어 다시 올라오는 일이 다반사였다. 삭제하는 것보다 유포는 늘 더 빨랐고 불법 촬영물은 검색만 하면 유명 포털 사이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끝이 있긴 한 걸까. 내가 퇴근한 후에도 유포는 계속됐다. 퇴근하는 것이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삭제 지원을 담당하는 활동가인데 퇴근하면, 그동안 유포되는 불법 촬영물은 어쩌지?’ 퇴근길에 항상 피해경험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유포는 쉽게 막아지지 않았다. 나는 구렁텅이로 빠지는 일이 많았다. 최초로 유포한 가해자와 재유포자들이 미웠다. 그렇다고 삭제를 멈출 수도 없었다. (이제는 국가에서 삭제 지원을 한다. 또한 ‘N번방 방지법’ 통과 후 불법촬영물을 시청·소지한 자를 처벌한다.)
두려움을 안은 채로 상담 활동을 계속할 순 없었다. ‘나에게도 상담이 필요해.’ 지친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방법이 내겐 절실했다. 그렇게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지친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법
“죽고 싶어요”
나는 짧게 말했다. 상담 선생님은 잠은 몇 시간이나 잤는지, 약은 먹었는지, 요가는 다녀왔는지, 강아지 산책은 시켰는지 길게 물었다. 상담은 보통 1시간 30분쯤 한다. 그중 30분은 내 상태를 체크한다. 자살 도구를 샀는지, 지금 불편감을 1점에서 10점으로 표현하면 어느 정도인지, 출퇴근은 잘하고 있는 지 등. 선생님은 질문하고 나는 대답하는 형식의 상태 체크가 끝나면, 이슈 진술을 한다. 일주일을 살며 어떤 일을 겪고 느꼈는지, 힘들었던 일은 없었는지, 가장 나답게 살았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였는지 등을 이야기한다.

(△ 상담받으러 가는 길에 보았던 무지개)
상담을 받으면 죽고 싶은 마음이 싹 없어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난 여전히 죽고 싶다. 죽고 싶은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법, 그걸 나는 상담에서 배운다. 상담 초기에 배운 기법(?)은 ‘냉동복근’이라는 행동 요법이었다. 죽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 때 사용하는 방법인데, 냉: 차가운 물로 세수한다, 동: 동적이게 움직인다, 복: 복식호흡을 한다, 근: 근력운동을 한다. 아니, 죽고 싶은 마당에 세수를 하라니? 심지어 근력운동? 정말 이름도 이상하지만 하고 싶지 않았다. 하겠다고 대충 뭉뚱그려 대답했지만 마음은 시큰둥했다.
그날도 지칠 대로 지쳐 집에 돌아왔다. 죽어야 끝날 거 같은 압박이 느껴졌다. 아무것도 막지 못한다는 무력감, 가해자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침대에 누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웃기게도 ‘냉동복근’이 떠올랐다. ‘힘드니까 근력운동은 못하겠고, 일단 찬물로 세수나 해볼까?’ 나는 싱크대로 가서 가장 찬 물을 틀고 한참이나 세수를 했다. 정신이 좀 드는 것 같기도 하고? 기분이 확실히 나아진 건 아니지만 조금은 힘이 났다. 지친 마음이 모두 해결되진 않지만 그래도 숨 쉴 정도의 힘은 생겼다.
‘인권활동가 재충전 프로젝트 <일단, 쉬고>’의 지원으로 13회기의 상담을 받았다. 여전히 나는 죽고 싶고 지치는 날이 더 많다. 하지만 지친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법을 이제는 조금 알 거 같다. 그 마음을 안고 닻을 내려 쉬어가고 싶다.
글 | 고어야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편집 | 황서영 (인권재단 사람)
상담 활동을 하게 될 줄은
택시를 타고 가던 길이었다. “사고 다발 지역입니다. 주의하세요.” 내비게이션에서 안내가 나왔다. 그 순간 ‘아, 사고가 나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죽음을 일상적으로 떠올렸다. 이대로 죽고 싶단 생각을 늘 품고 살았다.
“넌 상담을 해야 돼” 점쟁이는 확신하듯 말했다. 상담이라니,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진로였다. 전공이나 그간 경력엔 상담과 관련한 일은 전무했다. 그냥 ‘돌팔이네’ 생각하고 그 말을 넘겼다.
그해 7월, 나는 디지털 성폭력 피해경험자를 지원하는 시민단체의 활동가가 되었다. 영화를 전공하고 디자인 공부를 한 나는 영상을 제작하고, 카드 뉴스를 만드는 등 디자인 작업을 주로 했다. 그러다 피해지원팀 인력이 집단 퇴사를 하면서 내가 피해경험자 상담을 하게 됐다. 피해지원은 피해경험자와 상담하고 단체에서 어떤 지원을 할 수 있을지 모색해, 피해경험자가 일상을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상담’을 하게 된 것이다. 돌팔이라고 생각했던 그 점쟁이는 사실 꽤나 용한 사람이었을지도.
나에게도 상담이 필요해
피해경험자의 회복이 나의 성적표같이 느껴졌다. 피해경험자가 힘들어하면 그게 다 내 책임 같았다. 내가 상담을 잘 못해서 회복되지 않는 거 같은 느낌은 나를 옥죄었다. 피해경험자가 하필 나에게 전화를 걸어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하면 어쩌지? 라는 고민이 늘 맴돌았다. 상담 전화를 받기 싫었다. 선배 활동가의 노련한 상담을 보며 두려웠다.
나는 ‘삭제 지원’도 담당했었는데, 사이버상에 유포된 불법 촬영물을 찾아 지우는 일이었다. 법률 지원과 달리 삭제 지원에는 종결이 없었다. 삭제해도 제목만 바뀌어 다시 올라오는 일이 다반사였다. 삭제하는 것보다 유포는 늘 더 빨랐고 불법 촬영물은 검색만 하면 유명 포털 사이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끝이 있긴 한 걸까. 내가 퇴근한 후에도 유포는 계속됐다. 퇴근하는 것이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삭제 지원을 담당하는 활동가인데 퇴근하면, 그동안 유포되는 불법 촬영물은 어쩌지?’ 퇴근길에 항상 피해경험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유포는 쉽게 막아지지 않았다. 나는 구렁텅이로 빠지는 일이 많았다. 최초로 유포한 가해자와 재유포자들이 미웠다. 그렇다고 삭제를 멈출 수도 없었다. (이제는 국가에서 삭제 지원을 한다. 또한 ‘N번방 방지법’ 통과 후 불법촬영물을 시청·소지한 자를 처벌한다.)
두려움을 안은 채로 상담 활동을 계속할 순 없었다. ‘나에게도 상담이 필요해.’ 지친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방법이 내겐 절실했다. 그렇게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지친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법
“죽고 싶어요”
나는 짧게 말했다. 상담 선생님은 잠은 몇 시간이나 잤는지, 약은 먹었는지, 요가는 다녀왔는지, 강아지 산책은 시켰는지 길게 물었다. 상담은 보통 1시간 30분쯤 한다. 그중 30분은 내 상태를 체크한다. 자살 도구를 샀는지, 지금 불편감을 1점에서 10점으로 표현하면 어느 정도인지, 출퇴근은 잘하고 있는 지 등. 선생님은 질문하고 나는 대답하는 형식의 상태 체크가 끝나면, 이슈 진술을 한다. 일주일을 살며 어떤 일을 겪고 느꼈는지, 힘들었던 일은 없었는지, 가장 나답게 살았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였는지 등을 이야기한다.
(△ 상담받으러 가는 길에 보았던 무지개)
상담을 받으면 죽고 싶은 마음이 싹 없어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난 여전히 죽고 싶다. 죽고 싶은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법, 그걸 나는 상담에서 배운다. 상담 초기에 배운 기법(?)은 ‘냉동복근’이라는 행동 요법이었다. 죽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 때 사용하는 방법인데, 냉: 차가운 물로 세수한다, 동: 동적이게 움직인다, 복: 복식호흡을 한다, 근: 근력운동을 한다. 아니, 죽고 싶은 마당에 세수를 하라니? 심지어 근력운동? 정말 이름도 이상하지만 하고 싶지 않았다. 하겠다고 대충 뭉뚱그려 대답했지만 마음은 시큰둥했다.
그날도 지칠 대로 지쳐 집에 돌아왔다. 죽어야 끝날 거 같은 압박이 느껴졌다. 아무것도 막지 못한다는 무력감, 가해자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침대에 누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웃기게도 ‘냉동복근’이 떠올랐다. ‘힘드니까 근력운동은 못하겠고, 일단 찬물로 세수나 해볼까?’ 나는 싱크대로 가서 가장 찬 물을 틀고 한참이나 세수를 했다. 정신이 좀 드는 것 같기도 하고? 기분이 확실히 나아진 건 아니지만 조금은 힘이 났다. 지친 마음이 모두 해결되진 않지만 그래도 숨 쉴 정도의 힘은 생겼다.
‘인권활동가 재충전 프로젝트 <일단, 쉬고>’의 지원으로 13회기의 상담을 받았다. 여전히 나는 죽고 싶고 지치는 날이 더 많다. 하지만 지친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법을 이제는 조금 알 거 같다. 그 마음을 안고 닻을 내려 쉬어가고 싶다.
글 | 고어야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편집 | 황서영 (인권재단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