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지원]혐오가 아닌 환호와 환대가 넘쳐나는 퀴어퍼레이드를 꿈꾸며

양선우
2023-04-10


2001년 2월에 시드니 마디그라 프라이드 퍼레이드에 참가했던 몇몇 기획단들은 한국에 들어와서 지금의 서울의 프라이드퍼레이드를 상상했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2023 시드니 월드프라이드가 기대되었던 이유는 여러 이유들이 있었지만, 시드니 월드프라이드를 보고 앞으로의 한국에서의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성장할 수 있도록 영감을 얻고 덧붙여 한국의 인권 현실에 대한 회의감과 좌절감을 극복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였다. 월드프라이드의 행사들을 참여하기 위해 홈페이지를 방문했을 때 너무 많은 행사들에 깜짝 놀랐다. 월드프라이드 퍼레이드, 마디그라 퍼레이드, 마디그라 영화제, 파티, 드랙쇼, 호주의 곳곳에서 열리는 다양한 행사들과 주립도서관, 시드니 현대미술관, 심지어 오페라하우스에서까지 퀴어관련 예술 행사들이 가득했다. 한국과는 너무 다른 현실이다. 한국은 공공기업과 공공시설에서 성소수자 관련 행사를 열고자 하면 대관 문제부터 부딪혀야 한다. 이는 서울퀴어퍼레이드의 행사 장소를 찾는 것과도 연결된다. 24회를 준비하고 있는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여전히 퍼레이드 장소를 확보하기 위해 힘들게 밀당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호주는 공공장소를 비롯 시드니 곳곳에서 퀴어행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또한 홈페이지에서 눈에 띈 지점은 월드프라이드 컨퍼런스를 예약하려고 들어갔을 때 선주민 할인이 있다는 거였다. 그 배경은 호주를 영국이 지배하기 전에 원래 있었던 선주민에 대한 존중의 의미일 것이다. 홈페이지 맨 아래의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Acknowledgement of country

Sydney WorldPride will take place on the lands of the Gadigal, Cammeraygal, Bidjigal, Darug, Dharawal people who are the Traditional Custodians of the Sydney Basin.
We pay our Respects to their Elders past and present. Always was Always will be Aboriginal Land.

Aboriginal & Torres Strait Islander people come from many different clans and communities across Australia & in 2023 will come together as one, to celebrate with our global LGBTQIA+ community.

시드니 월드프라이드는 Sydney Basin의 전통적인 관리인인 Gadigal, Cammeraygal, Bidjigal, Darug, Dharawal 사람들의 땅에서 열립니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장로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항상 그랬습니다. 항상 원주민 땅이 될 것입니다.
원주민 및 토레스 해협 섬 주민은 호주 전역의 다양한 클랜과 커뮤니티에서 왔으며 2023년에는 글로벌 LGBTQIA+ 커뮤니티와 함께 축하하기 위해 하나로 뭉칠 것입니다.



시드니월드프라이드 참가를 위해 몇몇 프로그램의 사전 예약을 마치고 인생에서 가장 긴 출장 겸 여행길에 대한 기대감으로 열심히 일을 하며 시드니 출국 날을 기다렸다. 시드니 공항에 발을 딛는 순간 한국과 반대되는 날씨에 움츠려 있던 몸과 마음이 녹았다. 무엇보다 반갑게 맞아 준 것은 SYD 공항의 커다란 로고였다. 시드니 공항로고가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6색 무지개 로고와 인종의 포용까지 상징하는 갈색과 흰색이 들어가 있는 프로그레시브 색깔로 되어있었다. 공항을 벗어난 순간 공항버스, 정류장 간판, 수영장 가는 공원의 인도길, 대형마트 (coles),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시드니 박물관, 주립도서관 심지어 거리의 우체통까지.. 레인보우 천국을 경험한 듯했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열리는 공연 “Opera Up Late” 은 호주의 유명한 작가이자 코미디언인 루벤 케이 (Reuben Kaye) 가 호스트로 나와 쉴 새 없이 관객을 들어다 놨다 하며 유명한 오페라 곡과 뮤지컬 넘버들에 맞춰서 드랙 무대를 선사하였다. 옷을 잘 차려입고, 또는 잘 벗어두고, 또는 잘 드러내고 또는 잘 변신하는 여러 아티스트들이 꾸민 무대는 오페라를 퀴어하게 즐길 수 있었다. 특히 오페라 하우스라는 호주 시드니의 랜드마크인 곳에서 이런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감동이었고 놀라웠다. 월드프라이드퍼레이드 기간 중 하루 동안 오페라하우스가 무지개 조명을 비춘다는 소식을 나중에 들어서 그것을 놓쳤지만, 서울의 남산타워가 무지개빛으로 퀴어해 질 그날을 기대해 본다.



Art Gallery of NSW 주립도서관 아트겔러리에서 열린 “PRIDE (R)EVOLUTION 은 시드니 퀴어들의 투쟁의 역사를 다룬 전시이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1980년대 처음 만들어진 투쟁의 로고 티셔츠 전시되어 있었고, AIDS 에 맞서 싸운 사람들의 이야기와 1985년 시드니 마디그라 youth 포스터 전시, 시드니의 게이지도, 처음 마디그라 퍼레이드에 나갔을 때의 일기장 등 다양한 퀴어들의 역사적인 순간들을 사진, 포스터, 편지, 의류, 영화 등으로 큐레이팅 되어있었다. 시대에서 가장 소외되고 과소평가 되고 혹은 과대평가 되어진 더러운 존재로 일컬어지던 퀴어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시대의 혁명과 진화를 알 수 있었다. 지금의 화려한 시드니 마디그라 퍼레이드는 수많은 사람들의 투쟁으로 만들어졌다. 1978년 첫 마디그라 퍼레이드가 열렸을 때 참여했던 사람들은 경찰의 폭력을 겪었다. 1969년 미국뉴욕의 스톤월 항쟁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되었던 미국의 퍼레이드는 많은 나라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시드니도 함께 연대하는 의미에서 거리행진을 진행하게 되었고 최초의 시드니 마디그라는 1978년 6월 24일 시드니의 옥스퍼드 스트리트에서 게이 와 레즈비언의 권리를 지지하는 야간 거리 시위였다.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폭행을 당하고 감옥에 갇혔으며 경찰의 폭력에 지금까지도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고 78ers (78ers 는 1978년 6월 24일 원래 시드니 마디 그라에서 행진한 LGBT 활동가 그룹) 그룹활동가들은 우리에게 이야기 하였다. 당시에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이 경찰의 폭력에 맞서서 싸우는 모습을 보며 홈리스를 비롯한 성노동자,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들은 함께 연대하였고, 이 시위를 잊지 않기 위해서 매년 당시 체포되었던 달링허스트 경찰서 앞에서 시위를 하고 월드프라이드 프로그램으로 버스투어를 기획해서 당시의 투쟁의 곳곳을 설명해주는 행사를 가졌다. 1978년 20대 중반이었던 가장 나이가 어렸다는 사람은 중년이 되었고, 함께 버스투어를 설명해주는 활동가들은 머리가 희끗했다. 함께 들었던 청중의 질문과 활동가의 대답이 인상깊었다. “당시의 경찰들의 폭력에 트라우마가 있을 텐데 지금의 마디그라 프라이드 퍼레이드에서 경찰이 함께 행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괜찮은가? ” 이에 활동가는 “아직도 트라우마에 시달리지만, 성소수자인 경찰도 사회를 변화시키는 어떤 그들의 역할이 있는 거 같다.” 라고 대답하였다. 한국의 많은 다크투어 현장이 생각나기도 했다. 제주 4.3의 현장들을 돌아보던 기억도 생각이 나기도 했다.



시드니 마디그라 퍼레이드는 옥스퍼드 거리에서 시작해서 무어파크까지 1.5Km로 저녁 7시쯤 시작해서 밤 11시가 넘은 시각까지 이어졌다. 퍼레이드를 보기 위한 행진코스 주변의 카페들은 이미 예약이 끝났고 퍼레이드 행렬을 보기 위해 아침부터 시민들은 모여들었다. 퍼레이드행진에 우연한 기회로 참여할 수 있게 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환대와 연호와 박수를 받았다. 살면서 받을 환대는 다 받은 느낌이었다. 화려했고 즐거웠고 자긍심이 넘쳤고 내가 주인공인 거 같았다. 너무나 아름다운 밤이었다. 수많은 기업과 정부가 참여하는 퍼레이드가 상업화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앞으로의 과제이기도 하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금의 프라이드퍼레이드가 있기 까지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투쟁이 바탕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퀴어문화축제는 아직도 투쟁 중이다. 그 역사를 가슴에 안고 언젠가는 한국에서도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 사람들이 “동성애는 죄이다” 라는 혐오의 소리가 아닌 환호와 환희, 기쁨과 웃음이 넘쳐나는 행진이 되기를 꿈꿔 본다.



월드프라이드의 행사 중 하나인 인권컨퍼런스는 3일간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관심 있는 주제가 많았지만 본 행사 참가비가 너무 비싸서 오픈 세션밖에 들을 수 없었다. 남아공 전 헌법재판관 에드윈 카메런의 기조연설과 종교 세션, 핑크워싱 세션 (Beyond pinkwashing)을 들었다. 에드윈 커메런은 사이먼이라는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소개하였고 HIV 감염인이고 유색인종이며 많은 차별속에서 꿋꿋하게 투쟁하는 사람이었고 그 사람은 죽었지만 우리는 그 사람의 투쟁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르지만 함께 연대해야 한다고 하였다. Stories of faith 세션에서는 호주에서 최초로 커밍아웃한 트랜스젠더 사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인상 깊었던 말은 이슬람을 믿는 알라신께서는 성소수자에 대해서 절대 죄라고 생각하지 않으신다고 신의 이름으로 이야기하였다. 많은 종교인들이 성소수자를 포용하려고 하는 변화들이 분명히 일어나고 있다고 믿을 수 있었다. 나는 크리스천으로서 성소수자의 정체성을 함께 가진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에서 부침이 매우 크다. 어릴 때 잠깐 목회자를 꿈꾸기도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한국 사회에서의 내가 믿는 종교와 적대적인 관계에 있다는 것이 때론 우울하기도 하고 때론 힘들 때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종교의 변화들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여러 국가들의 여러 종교 이야기를 들으니 세상은 그래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변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핑크워싱 세션(Beyond pinkwashing)에서는 여러 기업들의 패널들에게 노동조합 티셔츠를 입고 당당하게 기업의 로고를 무지개로 바꾼다고 퀴어 친화적냐고 일침을 가하던 그녀가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로비에서 만난 그녀와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멀리서 한참을 바라보며 존경을 표하고 돌아섰다. 



이런 자유를 느꼈던 적이 있었던가

나는 물을 별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중학교 때 교회 여름 수련회에 참석했을 때 전도사님이 나를 번쩍 들어서 물에 빠뜨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물이 무서워서 수영을 비롯한 바다에 들어가는 것은 한 번도 상상해 보지 않았다. 시드니의 본다이 비치를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밤 산책을 나갔던 날, 친구들이 바다에서 너무나 행복하고 즐겁게 파도타기를 하는 것을 보았다. 그때 아무런 준비도 없이 티셔츠를 벗고 물에 들어갔다. 물속은 밤인데도 따뜻했고 아늑했다. 밀려오는 파도가 나를 덮칠 때 물을 먹으며 허우적대기도 했다. 너무 큰 파도가 덮칠 땐 파도 아래로 머리를 집어넣고 파도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조금씩 나도 파도의 리듬을 읽으며 파도를 타며 물에 내 몸을 맡겼다. 초등학교 때부터 늘 가방이 무거웠고 무엇인가 다 들고 다니지 않으면 불안한 성격의 나는, (지금도 그렇다) 아무런 준비없이 바다에 들어갈 수 있는 경험을 했던 나는,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문득문득 그 바다의 품이 생각난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삶이 힘들고 고달프더라도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에도 혐오와 차별이 파도처럼 밀려오더라도 힘들면 파도 밑에서 숨죽이며 파도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나를 토닥이며 잘 살아가야지 다짐해 본다. 언젠가는 파도를 잘 넘는 활동가가 될 수도 있으니까. 


글 | 양선우(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