뱁새가 황새까진 아니어도
“그룹 PT는 1:1 PT보다 더 어려우실 텐데 지금처럼 하시면 안 돼요. 잘하시는 분들이 엄청 많거든요.”
여러 번 배운 동작도 낑낑대며 ‘저 좀 살려주세요’라는 눈빛을 보내던 내게 담당 강사가 말했다. 이날 수업을 끝으로 나는 필라테스 그룹 PT로 넘어갈 예정이었다. 으아악! 지금까지도 어려웠는데 더 어려워지면 어쩌란 말이야. 10회기 개인 지도에도 별 진전이 없는 제자가 한심했는지 아니면 걱정되었는지, 선생은 작정한 듯 그룹 PT에서 자주 쓰이는 도구의 작동법과 자세를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쏟아진 훈련 내용을 단숨에 익히기엔 뇌의 용량도, 빈약한 몸뚱어리도 따라주지 못했다.
안식년을 맞아 모처럼 여유가 생긴 나는 만성 목‧어깨 통증에서 벗어나 보겠다며 필라테스 수업을 신청했다. 1:1 PT는 내 소득 수준에 견줘 출혈이 심한 고액 강좌였다. <인권재단사람>의 지원이 없었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시작 전만 해도 이왕 큰돈 들이는 거 제대로 해보자며 1:1 PT에 이어 그룹 PT, 홈 트레이닝 병행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정해 두었다. 계획대로라면 통증 완화는 물론 몸짱까지도 충분히 되고도 남을 정도였다. 웬걸. 운동과 거리가 먼 생활습관이 비싼 수업료마저 가뿐히 이겨버렸다. 일주일에 단 2번, 수업시간에만 간신히 참석할 뿐 따로 시간을 내어 공부하고 열심히 연습하질 않으니 반복되는 동작도 버벅대기 일쑤였고, 근육과 코어의 힘도 붙지 않았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었다.

며칠 후 그룹 PT 시작일이 되었다. 이제부터는 진짜 제대로 해보리라 단단히 마음을 고쳐먹고 수업에 나갔다. 경고받은 대로 그룹 PT의 속도도 강도도 대단했다. 다행히 이전 수업에서 배웠던 동작이 주를 이루어서인지 그럭저럭 따라갈 만했다. 후.후.후.후. 호흡은 부지런히, 엉덩이와 배에도 바짝 더 힘을 줘가면서 몸을 폈다 접었다 올렸다 내렸다를 이어갔다. 두 번째 수업부터는 사정이 달랐다.
“런지 동작 할 거예요. 자세 잡으세요.”
대체 어쩌라는 건지 몰라 옆을 힐끔 보았더니 다른 수강생들은 강사의 시범 없이도 척척 자세를 취했다. 펜싱 선수가 칼을 뻗어 상대를 찌르는 자세 같았다. 옆을 훔쳐보며 어리버리 동작을 취했다. 이후에도 티저니 뭐니 낯설고도 어려운 동작들이 주문되었고, 내전근이니 장요근이니 광배근이니 하는 듣도 보도 못한 근육의 이름들도 쏟아져 나왔다. 수업시간 내내 사람을 꽉꽉 채운 채 막 출발하려는 엘리베이터를 쫓아와 굳이 열림 버튼을 누르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아무래도 월수금 9시 수업은 필라테스에 능숙한 수강생들이 많이 모이는 반인가 보다. 학원에서 미리 알려주었다면 좋았으련만.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질 형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낑낑대는 가련한 학생을 모른 척한 강사가 괘씸하기도 했다. 이럴 땐 무작정 가던 길을 고수하기보단 돌아가는 길을 택하는 편이 낫다. 결국엔 수업을 옮기기로 했다.
다행히 새로 만난 강사는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어설픈 동작을 취하거나 어려운 동작을 해내느라 낑낑대는 나에게 다가와 틈틈이 격려해주었다.
“초기엔 다들 어려워하세요.”
“유연성도 좋고 근육의 힘이 없지 않으세요. 유지하는 힘을 좀 더 가져보세요.”
지금 하는 동작이 몸의 어디를 어떻게 강화하는 훈련인지를 상세히 알려주었고, 시범을 보일 때는 어떤 근육을 써야 하는지와 주의해야 할 틀린 자세가 무엇인지도 꼼꼼히 안내했다. 잘못된 자세를 취하는 사람이 있으면 조용히 다가가 바로잡을 곳을 손으로 짚어주었다. 잘하든 못하든 수강생들에게 골고루 다가가는 지도 방식 덕분에 나처럼 뒤처진 사람만 도드라져 보이는 낙인 효과도 줄었다. 내 옆구리가 이렇게 길었나 싶게 몸을 옆으로 기울여 펼 때도, 앉기와 눕기의 중간쯤에서 내가 이렇게 오래 멈춰 있을 수 있다니 하고 자만하고 있을 때도, 선생은 유연성과 힘을 더 시험해보도록 자극해주었다.
“더 내려갈 수 있어요. 조금만 더! 더!”
좋은 안내자를 만나 운동을 이어가다 보니 마침내 그룹의 꼴찌에서 벗어나는 날이 찾아왔다. 말 안장 모양의 바렐 기구 위에 등 위쪽을 대고 맞은편 사다리 위에 두 발을 올리고선 엉덩이를 내렸다 평행으로 다시 들어 올렸다를 반복하는 ‘힙 브릿지’ 자세를 취할 때였다. 예전 같으면 바들거리며 서너 번만 해도 배와 엉덩이 힘이 풀려 에구구구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을 터였다. 그럴 때면 지구가 온 힘을 끌어모아 중력을 거스르려는 나에게 사망선고를 내리는 기분이었다.
“다 와 가요. 여러분.”
이젠 도저히 못 하겠다 숨을 헐떡이다가도 곧이어 정상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등반을 이어갈 힘이 솟기도 한다. 강사의 격려를 위로 삼아 다시 한번 남은 힘을 쥐어짰다.
“여덟, 아홉, 열!”
내가 열 카운트까지 버티다니! 뱁새가 황새까진 아니어도 중간쯤은 되는 기적 같은 일이 기어코 일어나고야 말았다.
봄부터 시작한 필라테스를 겨울까지 이어가고 있다. 그새 내 빈약한 몸에도 상당한 변화가 찾아왔다. 굽었던 어깨와 등이 제자리로 많이 돌아갔다. 고관절을 접었다 폈다 올렸다 내렸다 반복하는 반경이 넓어졌다. 리포머 기구 위에서 플랭크 자세를 취한 뒤 한쪽 다리는 들고 다른 한쪽 다리의 힘으로만 위아래를 오가는 동작을 큰 어려움 없이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알아듣게 된 동작과 근육의 이름이 사뭇 늘었다. 운동하는 재미도 생겼다. 아침에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설 때면 미적대지 않고 즐겁게 움직인다. 무엇보다 몸에 달라붙어 떠날 줄 몰랐던 어깨의 만성 통증이 상당히 줄었다. 안식년이라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줄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운동을 이어간 결실이 없지는 않을 테다.
최근 수업에선 강사의 칭찬마저 들었다.
“경내님, 정말 많이 느셨는데요!”
“이힛. 그런가요? 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모처럼 낯선 과업에 도전하는 신출내기가 되고 나니 좋은 그룹 안내자의 역할과 자질이 뭘까를 되짚게 된다. 초심자의 어려움을 읽는 다정함과 경험도 실력도 다른 사람들의 형편을 고루 살피는 사려 깊음. 내가 일하는 단체에서 동료들에게, 내가 이끄는 인권교육에서 참여자들에게 나도 그런 안내자였을까. 필라테스를 배우며 삶과 인권운동을 비추는 거울도 다시 닦는다.
글 | 배경내(인권교육센터 들)
뱁새가 황새까진 아니어도
“그룹 PT는 1:1 PT보다 더 어려우실 텐데 지금처럼 하시면 안 돼요. 잘하시는 분들이 엄청 많거든요.”
여러 번 배운 동작도 낑낑대며 ‘저 좀 살려주세요’라는 눈빛을 보내던 내게 담당 강사가 말했다. 이날 수업을 끝으로 나는 필라테스 그룹 PT로 넘어갈 예정이었다. 으아악! 지금까지도 어려웠는데 더 어려워지면 어쩌란 말이야. 10회기 개인 지도에도 별 진전이 없는 제자가 한심했는지 아니면 걱정되었는지, 선생은 작정한 듯 그룹 PT에서 자주 쓰이는 도구의 작동법과 자세를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쏟아진 훈련 내용을 단숨에 익히기엔 뇌의 용량도, 빈약한 몸뚱어리도 따라주지 못했다.
안식년을 맞아 모처럼 여유가 생긴 나는 만성 목‧어깨 통증에서 벗어나 보겠다며 필라테스 수업을 신청했다. 1:1 PT는 내 소득 수준에 견줘 출혈이 심한 고액 강좌였다. <인권재단사람>의 지원이 없었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시작 전만 해도 이왕 큰돈 들이는 거 제대로 해보자며 1:1 PT에 이어 그룹 PT, 홈 트레이닝 병행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정해 두었다. 계획대로라면 통증 완화는 물론 몸짱까지도 충분히 되고도 남을 정도였다. 웬걸. 운동과 거리가 먼 생활습관이 비싼 수업료마저 가뿐히 이겨버렸다. 일주일에 단 2번, 수업시간에만 간신히 참석할 뿐 따로 시간을 내어 공부하고 열심히 연습하질 않으니 반복되는 동작도 버벅대기 일쑤였고, 근육과 코어의 힘도 붙지 않았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었다.
며칠 후 그룹 PT 시작일이 되었다. 이제부터는 진짜 제대로 해보리라 단단히 마음을 고쳐먹고 수업에 나갔다. 경고받은 대로 그룹 PT의 속도도 강도도 대단했다. 다행히 이전 수업에서 배웠던 동작이 주를 이루어서인지 그럭저럭 따라갈 만했다. 후.후.후.후. 호흡은 부지런히, 엉덩이와 배에도 바짝 더 힘을 줘가면서 몸을 폈다 접었다 올렸다 내렸다를 이어갔다. 두 번째 수업부터는 사정이 달랐다.
“런지 동작 할 거예요. 자세 잡으세요.”
대체 어쩌라는 건지 몰라 옆을 힐끔 보았더니 다른 수강생들은 강사의 시범 없이도 척척 자세를 취했다. 펜싱 선수가 칼을 뻗어 상대를 찌르는 자세 같았다. 옆을 훔쳐보며 어리버리 동작을 취했다. 이후에도 티저니 뭐니 낯설고도 어려운 동작들이 주문되었고, 내전근이니 장요근이니 광배근이니 하는 듣도 보도 못한 근육의 이름들도 쏟아져 나왔다. 수업시간 내내 사람을 꽉꽉 채운 채 막 출발하려는 엘리베이터를 쫓아와 굳이 열림 버튼을 누르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아무래도 월수금 9시 수업은 필라테스에 능숙한 수강생들이 많이 모이는 반인가 보다. 학원에서 미리 알려주었다면 좋았으련만.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질 형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낑낑대는 가련한 학생을 모른 척한 강사가 괘씸하기도 했다. 이럴 땐 무작정 가던 길을 고수하기보단 돌아가는 길을 택하는 편이 낫다. 결국엔 수업을 옮기기로 했다.
다행히 새로 만난 강사는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어설픈 동작을 취하거나 어려운 동작을 해내느라 낑낑대는 나에게 다가와 틈틈이 격려해주었다.
“초기엔 다들 어려워하세요.”
“유연성도 좋고 근육의 힘이 없지 않으세요. 유지하는 힘을 좀 더 가져보세요.”
지금 하는 동작이 몸의 어디를 어떻게 강화하는 훈련인지를 상세히 알려주었고, 시범을 보일 때는 어떤 근육을 써야 하는지와 주의해야 할 틀린 자세가 무엇인지도 꼼꼼히 안내했다. 잘못된 자세를 취하는 사람이 있으면 조용히 다가가 바로잡을 곳을 손으로 짚어주었다. 잘하든 못하든 수강생들에게 골고루 다가가는 지도 방식 덕분에 나처럼 뒤처진 사람만 도드라져 보이는 낙인 효과도 줄었다. 내 옆구리가 이렇게 길었나 싶게 몸을 옆으로 기울여 펼 때도, 앉기와 눕기의 중간쯤에서 내가 이렇게 오래 멈춰 있을 수 있다니 하고 자만하고 있을 때도, 선생은 유연성과 힘을 더 시험해보도록 자극해주었다.
“더 내려갈 수 있어요. 조금만 더! 더!”
좋은 안내자를 만나 운동을 이어가다 보니 마침내 그룹의 꼴찌에서 벗어나는 날이 찾아왔다. 말 안장 모양의 바렐 기구 위에 등 위쪽을 대고 맞은편 사다리 위에 두 발을 올리고선 엉덩이를 내렸다 평행으로 다시 들어 올렸다를 반복하는 ‘힙 브릿지’ 자세를 취할 때였다. 예전 같으면 바들거리며 서너 번만 해도 배와 엉덩이 힘이 풀려 에구구구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을 터였다. 그럴 때면 지구가 온 힘을 끌어모아 중력을 거스르려는 나에게 사망선고를 내리는 기분이었다.
“다 와 가요. 여러분.”
이젠 도저히 못 하겠다 숨을 헐떡이다가도 곧이어 정상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등반을 이어갈 힘이 솟기도 한다. 강사의 격려를 위로 삼아 다시 한번 남은 힘을 쥐어짰다.
“여덟, 아홉, 열!”
내가 열 카운트까지 버티다니! 뱁새가 황새까진 아니어도 중간쯤은 되는 기적 같은 일이 기어코 일어나고야 말았다.
봄부터 시작한 필라테스를 겨울까지 이어가고 있다. 그새 내 빈약한 몸에도 상당한 변화가 찾아왔다. 굽었던 어깨와 등이 제자리로 많이 돌아갔다. 고관절을 접었다 폈다 올렸다 내렸다 반복하는 반경이 넓어졌다. 리포머 기구 위에서 플랭크 자세를 취한 뒤 한쪽 다리는 들고 다른 한쪽 다리의 힘으로만 위아래를 오가는 동작을 큰 어려움 없이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알아듣게 된 동작과 근육의 이름이 사뭇 늘었다. 운동하는 재미도 생겼다. 아침에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설 때면 미적대지 않고 즐겁게 움직인다. 무엇보다 몸에 달라붙어 떠날 줄 몰랐던 어깨의 만성 통증이 상당히 줄었다. 안식년이라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줄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운동을 이어간 결실이 없지는 않을 테다.
최근 수업에선 강사의 칭찬마저 들었다.
“경내님, 정말 많이 느셨는데요!”
“이힛. 그런가요? 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모처럼 낯선 과업에 도전하는 신출내기가 되고 나니 좋은 그룹 안내자의 역할과 자질이 뭘까를 되짚게 된다. 초심자의 어려움을 읽는 다정함과 경험도 실력도 다른 사람들의 형편을 고루 살피는 사려 깊음. 내가 일하는 단체에서 동료들에게, 내가 이끄는 인권교육에서 참여자들에게 나도 그런 안내자였을까. 필라테스를 배우며 삶과 인권운동을 비추는 거울도 다시 닦는다.
글 | 배경내(인권교육센터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