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충전]파도에서 빠져나오는 법은 파도를 타는 것밖에 없어!

피아
2022-12-12


파도는 강했다. 그래도 괜찮아. 


작년 겨울, 나는 활동 종료(안식년)를 앞둔 연초가 가까워질수록 ‘파도에 휩쓸리기’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어쩐지 굉장히 재밌고 신나는 일일 것 같은 표현이지만 다른 평범한 말로는 공황 상태에 빠지는 것을 말한다. 어쩔 줄 모를 만큼 강력하고, 일정하지 않게 갑자기 찾아온다는 점에서 파도가 연상되어 그렇게 말을 붙였다. 나는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도 속수무책으로 허우적거렸다. 파도가 나를 끌고 향하는 곳은 항상 깊은 자의식과 피해의식의 심해였는데, 숨을 잃고 정신없이 휩쓸리고 있을 때면 곧장 나는 내 작은 역량이 너무 부끄럽고, 모두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는 것 같다는 고통스러운 생각 속에서 허우적대곤 했다. 너무 잦은 파도에 두려워할 때마다 내가 찾았던 가장 간단한 방법은 ‘또 파도에 빠졌잖아! 빠져나와야지, 나와야지’ 하고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이었다. 필사적으로 붙잡았던 그 생각 때문이었을까? 첫 안식년을 맞아 내가 정한 첫 번째 포부는 다름 아닌 서핑이었다.


누가 들으면 황당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공황 장애를 파도에 휩쓸렸다고 비유하는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그걸 극복하겠다고 진짜 보드를 들고 바다로 간다니? 사실 이 사고의 흐름에 제일 황당해하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인 듯하다. 모든 프로그램을 마치고 돌아보는 지금으로선, 내가 했던 생각에 절로 쯧쯧 혀가 차지는 것이다. 나는 그저 치료를 받았어야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꿋꿋이 서핑을 고수했다. 그냥 그게 훨씬 더 재밌을 것 같고, 멋져보이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제로 파도 위에 올라타 단련된 몸으로 정신건강까지 다스려보겠다는 나의 시도는 장렬한 실패를 맞이했다.



서핑은 내가 생각한 것과 아주 다른 활동이었다. 나는 그냥 타이밍만 잘 맞춰 파도 위에 착 하고 올라 균형을 잡으면 되는 일인 줄 알았다. 나름 운동신경도 있고, 균형감각도 있는 몸이라고 자부해온 터라 왠지 쉽게, 재밌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 타본 서핑은 내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달랐다. 우선 적절한 파도가 있는 곳까지 팔로 보드를 저어 나아가야했는데(이걸 패들링이라고 한다), 나를 밀어내는 파도를 이겨가며 앞으로 나아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체력을 갈아넣어 겨우 자리를 잡고 나면 파도를 끊임없이 관찰하며 내가 탈 좋은 파도가 있는지를 찾아야한다. 그리고 좋은 파도를 찾았다면 그 쪽으로 죽어라 패들링을 해야 한다. 강사 선생님 말을 빌려서, 서핑은 평화로운 운동이 아닌 경쟁 스포츠다. 좋은 파도를 다른 서퍼에게 뺏기지 않게끔 부지런히 단련해서 쟁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튼 이렇게 살벌한 도입부를 거쳐 파도를 찾았다 해도, 파도의 피크(파도의 가장 높은 부분)에 딱 들어맞게 보드를 위치하지 않거나, 파도가 밀려오는 적절한 타이밍에 맞춰 패들링을 강하게 해주지 않으면 파도는 보드 밑으로 낼롱 허무하게 가버리고 만다. 그럼 또다시 좋은 파도를 찾아 패들링의 여정을 떠나고, 다른 서퍼들의 눈치를 살피고, 파도를 찾고.... 그렇다. 그렇게 나는 4주차가 될 때까지도 혼자 제대로 파도를 잡지도, 보드 위에 서보지도 못했다. 여러 의미에서 제법 자괴감이 컸다. 뭔가를 제대로 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재미도 없었다. 근육이 붙지도 않아 딱히 단련이 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강사 선생님은 너무 강경하고 압박스러워서 제대로 못해내는 나를 한심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왠지 또 주눅이 들어서 속상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파도를 타는 것이나 내 정신적 파도의 해답을 찾는 것에 대해 포기하고 그냥 그 날 그 날 보이고 느끼는 것에만 정신을 쏟기로 했다. 다른 말로는 그냥 포기하고 바다나 실컷 본다는 생각으로 돌입했다. 그런 느낌으로 하루 하루를 기록했다.


“파도는 타는 것보다 탈 파도를 기다리는 시간이 훨씬 길다. 보드 위에서 하염없이 파도를 응시할 때면 담궈진 다리의 감각말고는 떠오르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그 시간이 그냥 편안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파도에 오르면 대체로 모두 얼굴에 웃음이 번지는 것 같다. 어제 글라이딩 중에 경로가 겹친 다른 서퍼분과 부딪혔는데, “죄송해요! 다친덴 없으세요?” 하고 외치시는 분도 환하게 웃고 계셨고, “네! 괜찮으세요?” 하는 나도 활짝 웃고 있었다. 잔뜩 신나서 생판 모르는 사이에도 환하게 웃으면서 마주한 그 순간이 웃기고 신기해서 왠지 기억에 남는다.“


“어제는 보드에서 떨어지면서 물살에 얼굴을 몇 번을 처박았는지 모르겠다. 정말 정면으로 파도를 받아내서, 나중엔 얼굴이 얼얼하기까지 했는데(코피가 나는 줄 알고 코를 만져봤을 정도..) 순간이나마 파도를 탔다는 사실이 너무 뿌듯해서 그냥 방실방실 웃기만 했다.”


“나는 다른 참여자들에 비해 파도를 놓칠 때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그 모습을 보던 다른 참여자분들이 어제는 처음으로 바다에서 먼저 말을 걸어주셨다. “밀어줄까요?” 나중에 고맙다고 인사를 하면서 왜 밀어주셨냐 물어보니 내 눈에 점점 생기가 없어져가는게 보였다더라. 얼굴에 ‘지루함’이 대놓고 써져있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빵 터졌다. 피곤한건 티가 잘나는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같이 즐겁게 탔으면 해서 밀어주고 싶었다는 말에 왕감동도 받음.“



그렇게.. 정신없이 허덕인 8주를 돌아보는 지금, 파도에 휩쓸리는 것과 같은 무거운 마음은 바다나 보드 위가 아닌 정신과와 상담사 선생님 앞을 찾아가야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서핑은 근육이 빵빵하거나 돈이 짱 많은 사람이 아닌 이상 즐기기 어려운 스포츠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제외한 모든 다른 참여자들은 평일에도 개인 PT나 헬스와 같은 다른 운동을 꾸준히 다니며 단련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충격은 차마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도 정신적인 파도에 휩쓸리는 것과, 진짜 파도에 휩쓸리는 것 사이에는 그래도 나름 공통점이 있다는 것은 발견했다. 진짜 파도에 휘말려서 통돌이 당하는 것(파도에 온몸이 휘말려 물 속에서 구르게 되는 것을 뜻함)은 정신적인 파도에 휩쓸리는 것과 비슷하게 아주 고통스럽고 몸이 종이조각 마냥 저항없이 구른다는 점에서 그렇다. 바닷물을 한바가지 정도 들이마셨을 때쯤 체득한 것은, 휘몰아치는 파도 속에서 중간에 벗어나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억지로 일어나려고 하다간 날아오는 내 보드에 맞을 수도 있고, 더 큰 파도에 다시 덮쳐져 더 심하게 구를 수도 있다. 그럴 땐 그저 몸에 힘을 빼고 파도가 나를 얕은 물가로 밀어보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최선의 상책인데, 이러한 대처가 감정적 파도에 휩쓸렸을 때와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밀려오는 수치감과 불안의 파도에 저항하기보다 잔잔한 상태가 되기까지 밀려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감정적 파도 위에서 균형을 잡는 방법은 (내가 보드를 끝까지 끝내주게 탈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못 찾았지만, 때로는 정신없이 몰아치는 파도에 잠시 고통을 참고 기다려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파도를 떠나보내고자 한 도전은 아쉬운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 경험이 아쉽진 않다. 나는 앞으로도 내 마음의 파도에서 벗어나고자 다양한 방면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해볼 것이고, 그럴 때마다 또 새로운 실패를 기록해나가며 결국엔 나만의 파도 잡는 방법을 찾을테니까. 생각으로만 품어 왔던 나의 황당무계한 쉼의 도전을 누릴 수 있게 도와준 <인권재단사람>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글 | 피아(투명가방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