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성폭력추방-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연대의 날

글 | 채민 (차별금지법 제정과 혐오 없는 지역사회를 위한 전북공동행동)


잠깐만 밖에 서 있어도 얼어붙는 것 같이 차가웠던 12월 5일, 하지만 전주의 중부비전센터로 80여명의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였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과 혐오 없는 지역사회를 위한 전북공동행동’(약칭 차별금지법 전북공동행동)과 지역의 여성단체들이 구성한 ‘여성폭력추방주간 전북지역행사 조직위원회’가 함께 주최한 <세계 여성폭력 추방주간 전북지역행사-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연대의 날> 행사로 오는 시민들이었죠. 우연히 연대의 날 행사를 알게 된 시민부터 촛불청소년인권법 활동 중인 청소년과 고등학생, 대학생과 비정규직 노동자, 교사, 시민단체 활동가, 페미니즘 모임 회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그 곳은 어느새 훈훈한 기운이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행사의 2가지 주제인 여성폭력추방과 차별금지법. 어떤 이들은 두 가지의 주제가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차별과 폭력이 땔 수 없는 관계임이 점점 드러나고 있습니다. 단적으로 강남역 사건은 차별의식이 끔찍한 폭력으로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줬습니다. “차별의 종착점이 증오범죄”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피부로 느끼게 됩니다. 전북 지역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올해 6월에 전북 전주에서도 남성이 여성들에게 빈병과 벽돌을 집어던지고 이에 항의한 여성을 폭행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또한 전주에서 열린 ‘이슬람 테러예방 운동’이란 이름으로 열린 혐오 선동에 지역의 정치인이 버젓이 참여해 발언을 했던 사례, 총선후보 토론회에서 후보들이 성소수자 인권 옹호에 반대하는 발언들이 작년에 있었습니다. 부족하게나마 만들어진 지자체의 인권조례를 근간을 없애려는 시도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호남지역은 극우세력의 차별과 혐오의 표적이 되기도 합니다. 차별과 혐오의 공기는 지역에서도 명백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북 지역에서부터 혐오없는 사회를 만들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함께 활동해보자!’는 취지에 공감한 인권·여성단체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운동단체, 노동조합, 성소수자모임, 정당이 올해 처음으로 모였습니다. 이렇게 모인 단체들이 구성한 차별금지법 전북공동행동은 차별금지법 제정과 혐오 없는 지역사회를 위해 10월에 출범했습니다. 지역의 단체들이 개별적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활동해왔지만 연대단위를 구성한 것은 처음이었죠. 출범 후에 꾸준하게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온라인·오프라인 서명운동과 캠페인도 진행하고 단체별로 차별금지법 간담회와 토론도 진행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우리의 연대의 힘을 모으고 평등한 세상과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시민의 공감대를 더 적극적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여성단위에서 하반기 여성폭력 추방주간을 준비하고 있어서 평등과 차별금지의 목소리를 함께 낼 수 있는 대회를 공동으로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시민들과 함께 혐오 선동을 일으키는 증오 정치의 현실을 살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엄한 인간의 삶에 공감하는 자리를 위해 영화<불온한 당신> 상영회와 감독과의 대화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준비과정이 마냥 평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인권재단 사람의 <인권활동 119> 지원과 각 단체 및 활동가들의 노력 덕분에 연대의 날 행사를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3가지 섹션으로 준비한 연대의 날 행사 당일이 되어 다양한 시민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섹션1]은 차별 말하기 대회 ‘성평등한 세상, 여기 나로부터’였습니다.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시민들 각자가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차별과 폭력에 반대해야만 하는 이유를 말하며 성 평등한 세상이 왜 필요한 지를 말하는 자리였죠. 각자 다른 정체성으로 살아오는 우리가 차별과 혐오라는 폭력에 맞서는 연대가 왜 필요한지, 그 공감대를 높이고자 했습니다. 다양한 영역의 7명의 시민들은 각각 가정폭력 근절, 일터 내 성희롱 중단, 낙태죄 폐지, 성소수자 정체성 존중과 혐오 중단, 가부장제 성차별과 성착취 반대, 준강간 등 성폭력에 대한 편견 근절,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임금차별 개선 등이 필요함을 발언했습니다. 차별과 혐오라는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마음을 담은 발언자들의 이야기엔 울림이 있었습니다. 참여한 시민들이 발언자들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은 그 울림에 대한 공명이었겠죠.



이어진 [섹션2] 영화 <불온한 당신> 관람과 [섹션3] 이영 감독과의 대화를 통해 차별금지에 대한 공명을 좀 더 키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차별과 혐오의 문제, 소수자 인권의 중요성 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했고, 때론 웃음이 담긴 의견이 나오고 때론 영화의 내용에 대한 진지한 질문이 오갔습니다. 영화와 이어진 대화의 시간을 통해 최근 들어서 차별·혐오 선동이 집중되고 있는 성소수자의 삶이 오롯이 존중받아야 함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차별 선동이 성소수자 등 특정한 집단만이 아니라 세월호 유가족 등에 대한 혐오로 전환되었던 최근의 이야기들을 나누며 증오 정치가 전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되었는지, 그것을 넘기 위한 연대와 과제는 무엇인지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섹션 3까지 마친 다음의 마지막 순서는 참가자들과 함께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의 메시지를 들고 단체 인증샷을 남기는 거였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의 외침을 끝으로 연대의 날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행사 후에 새삼 이러한 외침이 소수의 단체나 활동가만이 아니라 시민들과 함께할 때 더 큰 힘을 만들 수 있음을 참여자들도 준비하는 주체들에게도 남지 않았을까하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공동의 활동, 연대의 기회를 이후에 어떻게 지속할 것인가의 과제도 남기도 했습니다.



‘차별 받아서는 안 된다.’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흔들리는 이 가치를 튼튼하게 세우기 위해 연대의 주춧돌을 지역에서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연대가 전국을 순회하며 지역 단체들을 만나고 성소수자 단체들이 행동을 각지에서 만들어 가는 것도 그러한 것이겠죠. 전북이라는 지역에서도 평등의 주춧돌이 쌓여갈 때, 더 튼튼하게 차별금지법이 자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차별금지법 전북공동행동은 그렇게 겨울의 활동 속에 2018년의 봄을 그려보고자 합니다.


#차별금지법

인권재단 사람의 뉴스레터 '읽는사람'을 구독하고

인권의 관점으로 세상을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