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에 평화를’ 금요평화촛불

2022년에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전면전으로 치닫겠어?’라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지구촌 어딘가는 늘 전쟁 중이었다. 예멘에서, 시리아에서, 미얀마에서, 내전이 일어나고 있었고 군부가 시민들에게 총을 쏴대고 있었다. 그렇더라도 유럽 대륙에서, 국가와 국가가 전면전을 펼치는 전통적인 의미의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미리 예측했다면 준비할 수 있었을까? 러시아가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급하게 몇몇 평화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조직했다. 러시아 대사관 인근에서 열린 기자회견은 겨우 하루 이틀 보도자료를 발송하고 각 단체의 소셜미디어에 기자회견 개최 소식을 알렸을 뿐인데 수많은 시민들과 기자들로 북적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피켓과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상징하는 다양한 조형물을 만들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기자들이 이후 계획을 물었지만 기자회견도 급하게 겨우 준비한 까닭에 이후 액션 계획을 미처 준비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기자회견장에 모인 사람들의 열망과, 언론 보도와 소셜미디어의 반응을 타고 오는 사람들의 관심을 확인하면서 확신할 수 있었다. 전쟁 반대의 목소리를 낼 공간만 마련된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할 사람들이 충분하다는 것을. 


기자회견을 함께 조직한 단체들이 급하게 회의를 했다. 우선 3월 한 달 동안 매주 금요일마다 러시아 대사고나 인근에서 촛불집회를 하기로 했다. 인권재단 사람이 긴급한 액션을 지원해준다고 하여 지원금을 신청해서 촛불집회를 진행할 종자돈을 마련했다. 음향을 빌리고, 공연팀과 발언자를 섭외했다. 걸개 디자인과 발전기, 무대 트러스 대여까지 기꺼이 자신의 마음과 노동을 내어준 이들의 도움으로 이틀 만에 첫 번째 촛불집회를 뚝딱 준비했다. 첫 번째 촛불집회 전, 전쟁없는세상 사무실 전화기는 쉼 없이 울려댔다.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도 가본 적 없는데, 저 같은 사람도 가도 되나요?” “시민단체 회원 아니어도 참석할 수 있나요?”

 


날씨는 아직 3월초라 제법 쌀쌀했고,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일기예보는 틀렸지만 과연 비오는 날처럼 스산했다. 오미크론 확산이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상황도 사람들이 모이기에 좋지는 않았다. 쏟아지는 전화와 이메일 문의에 ‘너무 많이 오면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마음 반, 날씨와 코로나에 ‘사람들이 안 오면 어쩌나’ 걱정하는 마음 반, 정 반대의 마음이 심장을 쿵쾅거렸다. 그렇지만 역시 걱정은 사치였다. 추운 날씨와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촛불집회 장소인 정동서울교회 앞 인도는 촛불집회 참가자와 취재진으로 가득 찼다. 인도가 부족해 건너편 인도 화단 난간에 올라가 촛불을 들고 집회를 지켜보는 인파도 제법 되었다. 수백 명이 모였던 첫 번째 촛불 집회는 “푸틴은 평화를 이길 수 없다!”를 함께 외치며 끝났다. 흥겨운 공연,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염원하는 깊고 진지한 발언들이 이어졌다.



촛불집회는 그렇게 네 번의 금요일 밤 동안 이어졌다. 이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자신이 왜 이 전쟁을 반대하는지,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보내는 뜨거운 연대의 발언들이 이어졌고, 평화를 염원하고 전쟁에 반대하는 공연도 이어졌다. 한국에 거주하는 러시아인, 핀란드인, 벨라루스인도 각자의 위치에서 전쟁 반대를 이야기했고, 우크라이나인들은 슬픔과 분노와 염원을 담아 전쟁이 하루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발언을 했다. 촛불은 은은하게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 촛불집회를 기획할 때, 전쟁이 하루 빨리 끝나서 우리가 준비한 네 번의 촛불집회를 다 할 수 없게 되기를 바랐지만 모두의 바람과는 달리 전쟁은 장기전으로 흘러가고 있다. 전쟁 피해는 늘어만 가는데 평화협정은 도무지 진정이 없어 보인다. 촛불집회의 참가자는 회차를 거듭할수록 줄어들었다. 사람들의 마음이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전쟁이 길어지면 이슈에 대한 감정 이입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무기력한 생각이 스멀스멀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테다. 고작 촛불만 들어서 전쟁이 끝나겠어?



전쟁에 저항하는 일은 어쩌면 이 거대한 무력감과 싸우는 일일지도 모른다. 복잡한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 일어나는 전쟁이 촛불집회 몇 번 했다고 끝나진 않을 거다. 애시당초 촛불집회는 전쟁이 일어난 급박한 상황에서 뭐라도 하고 싶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아내기 위해 기획한 액션이었다. 우크라이나 평화행동은 이제는 다음 단계의 액션을 고민하고 있다. 4월에는 내부 집담회를 통해 이 전쟁에서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야하는지를 살펴봤고  4월 16일에는 서울 도심에서 전쟁을 반대하는 시민들과 평화 행진을 했다. 


무력감이야 말로 전쟁을 지속하고 싶은 이들이 가장 반기는 것이다. 전쟁은 너무 거대해서 보통 사람들의 의지가 통하지 않을 거라는 통념과는 달리, 현대의 전쟁은 사람들의 동의 혹은 최소한의 묵인이나 방조가 없다면 지속되기 힘들다. 시민들이 권력을 통제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독재국가라고 하더라도 국가의 모든 재원을 끌어다 써야 하는 현대의 총력전에서 시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쟁을 치를 수는 없다. 노동조합을 적대시했던 히틀러조차도 전쟁이 길어지자 노동자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기업이 법인세를 인상했다.



우리가 반대한다면 전쟁은 끝난다. 물론 촛불집회 몇 번 했다고, 평화 행진 몇 번 했다고 전쟁이 하루 아침에 중단되지는 않지만 우리의 액션은 세계 곳곳의 액션들과 만난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의 침략에 맞서 비폭력 시민 저항을 이어가는 우크라이나 시민들과 만나고, 러시아에서 전쟁 반대 집회에 참여하는 시민들과 만나고, 푸틴의 전쟁을 중단시키기 위해 병역을 거부하는 러시아의 병역거부자들과 만난다. 전쟁 반대를 외치는 홍콩의 시민들과, 미얀마의 시민들과 만나고 합쳐진다. 우리가 몇 차례 촛불집회에서 든 몇 백 개의 촛불이 모이고, 전쟁에 저항하는 세계 시민들의 염원과 행동이 모인다면, 그만큼 전쟁은 더 빨리 끝날 것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건 정치인들이고, 전투를 수행하는 것은 군인이지만, 전쟁을 끝내는 힘은 시민에게서 나온다.


글 |이용석(전쟁없는세상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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