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충전]일단, 쉬고를 통해 생애 최고의 쉼을 갖다

강희석
2020-11-24


짬짬이 먹고 놀고 쉬며 오래도록 질기게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을 머리로는 늘 하지만 이를 실행하는 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쩌면 인권사람 재단의 일단, 쉬고 프로젝트에 신청할 엄두를 낸 순간부터 나의 쉼은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우연히 프로젝트 공모를 보는 순간 가슴이 콩닥이며 내 안의 뭔가 꿈틀대기 시작 했던걸 잊을 수가 없다. 접수마감을 앞두고 있었기에 신청을 결정하는데 걸린 시간은 3초도 안걸렸다. 나에게 쉼은 그만큼 간절했었나 보다.


내가 속한 나야장애인권교육센터에는 활동가 재충전 제도로 3년 상근활동에 한 달의 안식월과 6년 활동에 1년의 안식년이 보장된다. 그 어떤 조직보다 자발성에 기초한 문화를 가진 단체임에도 난 지난 5년 동안 목소리가 갈라지고 쉰 소리가 날 때까지 쉼을 선택하지 못했다. 누구하나 눈치 주는 이도 없는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한 달 쉬는 것이 왜 그리 힘들었을까 싶다. 프로젝트 신청서를 작성하며 나에게 쉼을 선물 할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섰다. 그런데 선정까지 되었으니 ‘비로서 일단, 쉬고’가 가능해졌던 것 같다. 


                                                                                               

확 트인 제주의 푸른바다를 보며 괜시리 울컥했다. 내 안의 묵은 때가 왜 그리 많았는지 속상해하며 털어냈다.


다시 생각해도 인권재단에 감사하다. 2년 전에 1년 동안 1인 사무국을 운영하며 몸과 마음이 다소 지쳤던 상태에서 장애인 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개정에 따라 정부도 교육기관도 처음하게 된 새로운 사업을 하며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기도하고, 새로운 활동가들과 합을 맞추느라 또 다른 에너지가 쓰이며 소진을 부추기기도 했던 것 같다. 몸은 쉬어달라고 계속 아우성 쳤는데 내가 모른 체 하는 동안 목 디스크도 생기고 성대결절도 수시로 왔다 갔다 하던 중의 일단, 쉬고와의 만남은 단비 자체였다.


                                                     

자연명상마을에서 일주일은 생애 최고의 시간이었다. 아침 명상, 저녁 자연요가, 2끼의 정성담은 자연밥상. 잊지 못할 것이다.


지난 4월 오대산 자연명상마을에 등록비를 낸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는 듯 했다. 코로나19로 인권교육도 소강상태를 보였으나 지역을 오가는 기획된 교육으로 일정을 몇 차례 늦추기도 했다. 많은 자매들 틈에서 자랐고,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해 결혼 후에도 가족 또는 친구들과 대부분의 여행을 함께했다. 이번 여행이 특히 의미가 있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하는 6박 7일 여행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나 쉼을 필요로 했건만, 떠나기 전날까지 늦은 귀가 후 아침에야 대충 배낭을 챙겨들고 터미널로 갔다. 


이번 여행의 컨셉은 어떤 것도 계획하지 않고 몸이 원하는 대로 살아보는 것이었다. 덕분에 코로나19로 버스 운행이 평상시에 비해 절반만 운행을 하는 등 몇 차례 당황한적도 있었으나 시간으로부터 해방되어 있었기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진부역에서 한참을 기다리다 덜컹거리는 시외버스를 타고 굽이굽이 산길을 오를 때의 벅참은 잊을 수가 없다. 이어진 또 다른 실수는 오대산자연명상마을은 당연히 월정사에 있을 줄 알았는데, 마을 초입에 있다는 것을 가서야 알았다. 6월의 한낮에 땀 흘리며 낯선 길을 걷고 걸었던 느낌은 낯섬과 설레임이었다. 내가 묵을 숙소에는 냉장고, TV가 없는 것은 물론 인터넷도 되지 않는다. 그것이 왜 그리 편안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비로소 혼자 쉬는구나하는 안도감이 좋았다.


                                                                                               

새들의 노랫소리, 물소리, 나뭇잎 소리를 들으며 선재길을 걸어 오대산 비로봉까지 올랐다. 세상을 다 품은 느낌이다.


매일 아침 6시 새소리에 깨어 아침명상을 하며 내 안의 욕심과 탐욕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난 스스로 선하고 정의로운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내 안의 묵은 때가 어찌도 그리 많았던지 낯설고 불편한 나를 마주하기도 했다. 그 부질없는 것을 떨어내는 데에는 자연명상마을의 융숭한 아침저녁 식사가 있었고, 또 선재길을 걸으며 만난 다양한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들이 그 부질없음에서 나를 깨어나게 하는 듯 했다. 


자연명상마을에서 번뇌의 숲은 지나 선재길을 걸어 상원사까지 오르면 10km는 족히 걸렸다. 걷고 또 걸으며 살아있음에 감사가 저절로 나왔다. 한걸음 씩 발걸음이 가벼워질수록 가족, 친지, 친구들, 동료들 살면서 만나 거의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한번씩은 스쳐 지나간 듯 하다. 매일 선재길을 걷다보니 점점 많은 자연의 소리가 들렸다. 그 아름다운 자연의 대합창에 반해 한동안 걸음을 멈춰선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어느 순간 자연과 나만이 존재하는 듯한 묘한 느낌의 순간도 있었다.


                                                     

비오는 날 인적이 드문 제주 머체왓 숲길을 걸었다. 자연이 주는 신비의 매력에 홀딱 빠지는 경험이었다.


제주 삼달다방에서의 머물렀던 일주일 또한 잊을 수 없는 선물이었다. 끈임없이 많은 사람들이 머물다 가는 삼달다방에서 세월호 416 합창단의 감동적인 공연도 볼 수 있었고, 노래하는 사람 이정렬님도 만나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에 한바탕 웃을 수도 있었다. 군대를 앞둔 아들과 날 좋은날 오름도 오르고, 비바람 몰아칠 때 성산일출봉도 가고, 잔잔한 한라산도 등반하며 자연과 함께하는 매력에 심취하기도 했다. 그날도 비가 억수같이 왔으나 삼달지기 무심의 안내에 따라 머체왓 숲길을 걸었다.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듯한 신비의 숲이었다. 자연명상마을에서 다 떨어내지 못한 욕심의 찌꺼기가 있었다면 머체왓을 걸으며 내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자연으로 홀연히 떠났다 도심으로 돌아오기 직전. 마지막까지 그림처럼 쉬고 싶었나 보다.


이번 일단, 쉬고를 통해 나의 몸과 마음이 내는 아우성을 더 이상 모른 채하지 않기로 했다. 가끔은 홀로 대자연 속에서 홀로 있는 즐거움을 만끽한다면 더 크게 함께 살자! 외칠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일단, 쉬고가 준 엄청난 선물에 다시한번 감사한다.


글 | 강희석 나야장애인권교육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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