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2023-10-12

‘일단 멈추고’ 남쪽으로 튀어!

올 한해 크고 작은 일이 많았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인권교육온다’(이하 온다)에서 큰 덩어리의 교육활동이 진행되고 있고, 온다가 1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교육활동을 하면서 느낀 건 해마다 들어오는 교육 요청이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해는 교육 횟수가 적어서 ‘아 어디서 교육의뢰가 뚝 떨어졌으면 좋겠다.’ 하며 전전긍긍할 때도 있고 또 어떤 해는 넘쳐나는 교육 요청을 소화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올해는 후자에 가까웠는데, 게다가 올해 상임활동가가 3명에서 2명으로 축소되었다. 두 명이서 온다 10주년이라는 큰 고개와 생각보다 많은 교육 일정을 소화하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바쁘다는 것이, 몸도 그렇지만 마음도 함께 따라간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상황인데도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며 조급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몸보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무거웠다.



<일단, 쉬고>라는 말을 마주하는 순간 <일단, 멈춤>이 함께 떠올랐다. ‘그래, 일단 멈춤이 필요해.’ 그리고 그 멈춤의 시간 동안 가장 멀리 있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바로 제주도이고, 일단 '남쪽으로 튀기'로 했다. 초등학년 시기를 보내는 어린이와 함께 동반하는 여행이다 보니 내 맘대로 스케줄을 짤 수가 없었다. 대한민국 사람들의 대다수가 여름휴가를 보내는 8월 첫째 주 극성수기 일주일을 보내야만 했다. 비행기 티켓팅을 하고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삼달다방 지기님에게도 연락을 드렸다. 그때 사람들이 많이 머물기는 하지만 괜찮으니 마음 놓고 오라는 답변을 받았다.


사람을 잇는 공간, 삼달다방

무사히 숙소에 도착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인사하며 반겨주셨다. 한상 가득 저녁을 차려주셨고, 식사를 하면서 한 분 한분 인사도 나누었다. 놀이로 예술 활동을 하시는 분, 장애인권운동을 하시는 분, 시민사회 활동을 하시는 분, 가족과 여름휴가를 오신 분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아 삼도, 한라, 팡이 댕댕이도 함께 했다. 저녁을 먹고나서 삼달지기 무심이 갑자기 달을 보러가자고 제안해 주셨다. 우리는 노란봉고차에 낑겨앉아 가는 내내 수다를 떨며 멋진 달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산책을 하며 파도소리와 바다에 비친 달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함께 동행한 사람들과 달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을 찍었는데 그 모습이 우주의 신비로움을 담아낸 듯했다. 지금보아도 너무나 멋진 사진이다. 그 이후로도 달구경은 밤마다 이어졌다. 삼달에서 만난 분들과 인연으로 새로운 경험도 했다. 삼달다방에 어린이 손님이 찾아왔고 또래 형아 들을 만난 함께한 어린이도 신나했다. 어린이들 덕분에 어쩌다 서핑도 배우게 되었다. 몸이 제대로 따라주지 않아 속상한 마음도 있었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경험이 또 다른 에너지가 되었다. 


(△ 제주 세화 해수욕장에서 서핑을 배웠다.)


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는 포도뮤지엄을 방문했다. 천천히 작품을 구경하려는데 어린이는 별로 재미가 없었는지 빠른 속도로 걸어가면서 쓰윽 훑고만 나왔다. 여기저기 있던 삐에로 작품은 살아있는 것만 같아, 아이가 무섭다며 걸음을 더 재촉했다. 작품을 충분히 여유롭게 즐기는 못했으나 순간순간 포착되는 장면은 남아있고, 아이와 함께 있는 그 시간이 좋았다.

(△ 포도뮤지엄의 삐에로.)


삼달다방은 편안하면서도 서로서로 돕고 챙겨주는 것이 익숙한 공간이다. 아이들의 식사를 함께 챙겨주시고 여행안내와 팁도 공유한다. 늦은 저녁 함께 모여 맥주한잔과 삶에 대한 이야기부터 사회이슈난상토론까지 이어진다. 그 속에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삼달다방의 이야기가 묶여진 ‘사람을 잇다, 사람이 있다’ 책이 얼마 전에 발간되었다. 삼달의 공간은 말 그대로 사람을 잇는 곳이었고 이번 여행의 재충전은 사람들에게 받았다. 부디 이 충전이 빨리 방전되지 않도록 지금의 일상도 잘 돌봐야겠다.


글 | 그린 (인권교육온다)

편집 | 황서영 (인권재단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