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충전][인터뷰] 어렵고, 서툰 인권활동.. 계속 할 수 있을까?

차지애
2021-09-06


[인권활동을 이어가기 위한 조건 ③] 연잎, 지나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가


순서

1. "내실을 쌓을 시간이 필요해요, 근데 그럴 기회가 없어요"

2. "인권활동가라는 정체성을 찾았어요"

3. "안정적인 활동의 기반이 필요해요"



인권활동가들은 저마다 다른 계기로 인권을 지키기 위한 일을 시작한다. 그러나 소규모로 운영되는 인권단체에서 별도 교육 없이 업무에 투입되어 다급한 현안에 쫓기는 경우가 많다. 신입 활동가들은 서로 다른 위치와 환경에서 인권활동가로서 성장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사회적 소수자가 존중받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인권활동가는 인권피해상담부터 정책 대응까지 다양한 일을 한다. 그러나 활동의 역량과 전문성을 쌓을 기회는 단체 외부에서도 찾기 어렵다. 한편, '지속가능한 인권운동을 위한 활동가조사'(2019)에서는 활동가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과 네트워크 지원을 지속가능한 운동을 위한 핵심적인 요소로 주목하고 있다.


2020년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 활동 시작을 계기로 '신입 활동가 공동교육'(이하 공동교육)에 참여한 연잎, 지나 활동가를 단체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 교육은 '평등과 연대로! 인권운동더하기', '재단법인 인권재단 사람'에서 공동진행하였다. 두 활동가는 현재 교육활동, 활동회원 팀활동, 연구활동, 인권단체 연대활동, 후원회원 관리 등의 일을 하고 있다.


"내실을 쌓을 시간이 필요해요, 근데 그럴 기회가 없어요"

지나(왼쪽), 연잎 활동가는 인권교육센터 ‘들’에서 2020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 두 분이 인권단체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지나 - "오래전부터 청소년의 곁에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소위 '문제 청소년'에 대한 관점이 해결되지 않아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었죠. 그러다 '들'에서 진행하는 '청소년인권' 교육을 듣게 되었는데, 새로운 충격이었어요.


그 후 '들'에서 활동회원을 시작하게 됐고 인권에 대해 알아가면서 청소년을 바라보는 관점이 해결되었어요. 그래서 그런가 학교 앞에서 편의점을 했었거든요? 어느덧 제가 청소년들 사이에 '인싸 어른'이 되어 있더라구요(웃음). 이후 더 많은 청소년을 교육의 자리를 통해 만나고 싶어 상임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연잎 - "제가 인권 감수성이 부족했을 때 다그치지 않고 '함께 토론해보자'고 대화를 걸었던 친구들이 있었어요. 덕분에 저는 인권에 대해 질문하고 공부하는 일에 재미를 붙였고, 그 과정에서 변화하는 우리가 너무 좋았어요. 그 경험이 저에게는 큰 계기가 되었어요.


한 번은 재학 중이던 학교에서 5분짜리 인권교육을 요청받았어요. 짧은 시간이라 큰 기대 없이 교육을 마쳤는데, 어떤 나이가 많은 분이 '인생에서 이런 말은 처음 들어봤다'면서 저를 찾아왔어요. 계속 공부하고 싶다고,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셨어요. 5분이라는 시간 동안 한 명이 제 이야기를 듣고, 인권에 관심이 생겼다는 게 신기하고 매력적이더라고요. 제 마음을 잘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 같았어요. 이후에 '들' 교육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 먼저 찾아갔어요(웃음)."


- 첫 인권 활동은 어땠나요? 신입 활동가로서 갖게 된 고민이 있기도 했을 것 같은데요.


연잎 - "아직 고민이 많고 모르는 것도 많은데, 교육활동을 소화해야 하는 것이 힘들었어요. 인권교육에 대한 내실을 쌓을 시간이 필요했는데, 바쁜 단체 일정으로 충분히 공부하지 못하고 교육에 나가야 하니까 '제발 질문하지 마라' 마음속으로 빌기도 했어요.


글쓰기, 교육활동, 연대활동 모두 척척 해내는 다른 '들' 상임활동가들에 비해 저는 모든 게 다 어렵고, 서툴고, 보잘것없어 보였죠. 초반 두어 달은 집에 가면서 엄마한테 전화하며 울었던 날도 있었어요. 1년이 지난 지금은 기존 활동가들이랑 저는 다른 거니까, 비교하지 않고 지금 저의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지나 - "스스로 '들' 상임활동가라는 '동경심' 같은 그림이 있었는데, 저에게 상임활동가라는 타이틀이 붙는 순간 너무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연대활동을 갔을 때도, 어떤 역할을 맡아달라고 하면 제가 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아서 부담되었어요. 내부적으로는 기존 활동가들에게 매일같이 신세를 져야 하는 상황이 많아 늘 미안했어요. 하루빨리 성장해서 나도 도움을 줄 날이 올 때까지 버텨내자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 어려움이 많았던 활동 초기에 공동교육에 참여했는데, 당시 어떤 기대가 있었나요? 


지나 - "신입 활동가 교육을 일주일 정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들'에서는 두 달 정도 상임활동가들이 신입 활동가 교육을 제공해주었어요. 새로운 활동가를 위한 제도 덕분에 단체를 신뢰하고, 언제든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어요.


그렇지만 또 저연차 활동가끼리만 공유하는 어려움도 있잖아요. 저와 같은 신입 활동가를 만난다고 생각하니 그 고충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생기려나?(웃음) 그리고 중요한 건 인권의 역사 속에 활동가들이 있는 거잖아요. 그 흐름 속에 우리도 뛰어들게 된 거구요. 그 큰 인권의 흐름을 들을 수 있는 자리가 될 것 같아 기대가 되었죠."


연잎 - "당시 저는 '인권활동가인가 인권강사인가'라는 정체성 혼란의 시기였어요. 그냥 교육만 하는 사람이 아닌 현장과 연대하고 주체적으로 의제를 찾는 '인권 교육 활동가'로 성장하고 싶었는데, 단체 내 팀 활동만으로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공동교육에서 다양한 현장의 활동가들을 만나며 활동가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어요. 나중에 보니 저와 같은 이유로 교육을 신청한 분들이 많았어요. 규모가 작은 단체일수록 다른 영역 활동가와 교류하는 장이 더 필요했던 것 같아요."


"인권활동가라는 정체성을 찾았어요"


인권활동가 역량강화 공동교육은 경력 3년 이하 인권활동가들이 참여하는 교육이었다.


 

- 7주간의 공동교육을 돌아보면, 어떤 점이 가장 도움이 되었나요?


연잎 - "활동하면서 '들'의 연잎으로서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관계를 가지고 싶었어요. 그래야 끙끙 앓다가 터지지 않고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죠. 공동교육은 제게 이런 관계들을 주었어요.


교육에서 처음 만났지만, 같은 활동가라서 그런지 빠르게 친해진 분들이랑 지금도 만나요. 매우 가까이 있는 '들' 활동가에게는 얘기하기 어려운 고민이나 속상한 것들을 얘기할 수 있으니까 좋아요. 다른 활동가의 의견을 들어보고, 다른 단체의 상황을 참고할 수도 있더라고요.


교육 내용은 아직 소화를 못 한 것도 있고, 어떤 건 제 교육활동에 써먹은 것도 있어요(웃음). 무엇보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강연이라 인권운동의 고민을 이어받는 느낌이었어요. 서로의 고민을 더 하고, 함께 운동의 전망을 찾는 과정에서 '나 이제 인권활동가인 것 같아' 이런 마음이 더 생겼어요."


지나 - "다른 영역의 활동가들을 잘 알지 못했는데, 교육 때 '마니또'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는 분들이 생겼어요. 연대활동으로 도움 요청할 일이 있으면 마니또에게 연락하게 되더라고요. 인권운동의 동료들을 더 알게 되어서 좋았죠. 


강연도 좋았지만, 성소수자, 장애, 여성 등 다양한 분야의 활동가들과 모둠 안에서 나눈 이야기들이 기억에 남아요. 당시 서로를 통해 배운 관점과 생각이 활동에 도움이 되었어요. 그때처럼 인권 주제별, 이슈별로 활동가들이 모여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어요. 활동가에게 신입 활동가 공동교육 같은 기회가 지속적으로 필요한 것 같아요." 



"안정적인 활동의 기반이 필요해요"

 

 '지속가능한 인권운동을 위한 활동가조사'(2019)에서는 활동가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과 네트워크 지원을 지속가능한 운동을 위한 핵심적인 요소로 주목하고 있다.



- 활동가가 인권운동을 지속하기 위해 또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요?


지나 -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지원이 있었으면 해요. 바쁜 일정을 쪼개 뭔가 숨통을 트이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근데 제 돈으로 취미활동을 배울 여유는 되지 않아서요. 지원이 있다면 다른 활동가들과 문화나 예술을 공유하고 싶기도 해요. 인권 투쟁 현장에서 같이 밴드를 연주하는 상상도 해봤어요. 그럼 전 키보드를 하려고요(웃음)."


연잎 - "맞아요. 저연차 활동가들에게 교육만 필요한 건 아니에요. 저도 참여하는 인권재단 사람의 '인권활동가 작은모임 지원사업 : 반상회'도 그런 면에서 좋아요. 제 주위에서도 동료와 취미활동을 함께하려고 신청하더라고요. 이렇게 사업이 아니면 활동가들은 문화생활하기도 어려운 환경인 것 같아요.


경제적인 어려움이 해소되는 것도 중요하죠. 낮은 활동비로 그만두는 활동가도 있는데, 20~30대 신입 활동가는 첫 사회생활을 인권활동으로 시작한다는 점에서 부담이 커요. 예를 들어, 주택청약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거조건이 불안정하고, 모아둔 돈은 없고, 임금은 낮아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면이 있어요. 미등록단체 소속 활동가인 경우 청년이라도 정부 지원을 받기 어렵고요, 불안정한 수입으로는 대출받기도, 신용등급 올리기도 어려워요. 제가 요새 집을 구하기 너무 힘이 들어 이런 얘기를 하게 되네요.


인권운동 안에서 신입 활동가가 활동 초반에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면 좋겠어요. 일정 수준 이상의 수입을 보장하거나, 일시적으로 주거공간을 제공하는 등의 지원이 가능한 날이 언젠가는 오면 좋겠어요. 활동가를 위한 안전망이 더 확대된다면 활동을 지속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활동가 개개인이, 서로에게 이러한 안전망이 되어주면 더 좋겠죠. 서로의 활동을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관계망이 무엇보다 튼튼한 활동의 기반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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