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충전][인터뷰] "재충전보다 중요한 건 방전되지 않게 하는 거잖아요"

오정민
2021-08-24


[인권활동을 이어가기 위한 조건 ①]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인터뷰


순서

1. '음악 미술 체육 안식년'을 준비했지만... 코로나를 만났다

2. "재충전보다 중요한 건 방전되지 않게 하는 거잖아요"

3. 활동가와 활동가가 만드는 회복



'음악 미술 체육 안식년'을 준비했지만... 코로나를 만났다

 

올해로 16년째 ‘인권운동사랑방’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류 상임활동가.  


 

올해로 16년째 '인권운동사랑방'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류 활동가는 2020년에 두 번째 안식년을 보냈다. 인권운동사랑방은 2008년부터 6년 활동하면 1년 쉬는 안식년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2020년 그의 안식년 '주제'는 분명했었다. 활동하면서는 긴 시간을 낼 수 없어 하지 못한 음악, 미술, 체육 등을 배우는 '음미체 안식년'을 갖는 것이었다.


"활동하면서도 즐길 수 있는 뭔가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었어요. 안식년 끝나고 복귀한 후에도 할 수 있게 몸에 '습'을 들이고 싶었죠. 유화처럼 물감도 필요하고 별도의 독립 공간이 필요한 건 활동하면서 계속 못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악기가 필요 없는 판소리, 다른 도구가 필요 없는 색연필 미술, 맨몸으로 가능한 체육 등을 배우려 했죠.


첫 번째 안식년이 끝나고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일반인 대상으로 저렴한 현대무용 강좌를 발견했어요. 예술의전당에 매주 가야 하는데 활동 중에는 도저히 못 하니 안식년에는 기필코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죠. 근데 코로나 때문에 모든 강좌가 폐강되었어요. 아무것도 못 하다 폐강하지 않은 마카로 하는 드로잉 강좌를 들을 수 있었죠."


2020년 2월 20일 국내 코로나 확진자가 처음 200명을 넘었다. 2월부터 시작된 그의 안식년은 뜻하지 않게 코로나와 함께 시작되었다. 그는 쉴 때도 산책이든 뭐든 몸을 움직여야 마음이 가벼워졌다. 하지만 코로나 상황에서 외부 활동을 자제할 수밖에 없어서 갇힌 기분이었다. 게다가 안식년을 시작할 때 그의 오른쪽 어깨는 평소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집에서 왕복 2시간 걸리는 재활운동치료소에서 주 2회 50분씩 치료에 전념했다. 2월에 시작한 운동치료는 12월까지 이어졌다.


"정말 스트레스가 컸어요. 내 어깨가 그렇게 된 상황을 용납하기 힘들었죠. 2018년에 약한 통증이 시작되었는데 2019년 겨울에 갑자기 악화됐어요. 오른쪽 어깨의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제한되었어요. 예상했던 수준 이상의 통증이라 좀 놀랐죠.


근데 또 그게 다행이기도 했어요. 제가 정신을 차렸잖아요. 부담으로 비급여 약물 주사를 피했는데 돈 써서 병원에서 주사 맞고 MRI 찍고 재활 운동을 하게 됐죠. 치료 중간에 '진짜 이제 다 나은 것 같다'라고 느낀 때가 있었거든요. 가을쯤에 또 안 좋아져서 '아, 이거 자만하면 안 되는구나' 하면서 연말까지 했어요."


지금은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무리 없이 어깨를 사용하고 있다. 집에서 운동도 하고 있다. 거의 1년 동안 비급여 약물 주사와 재활 운동 치료를 받은 만큼 치료비가 만만치 않았다.


"일상 생활비로는 감당이 되지는 않았어요. '인권재단 사람'의 지원을 받고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의 의료비 지원을 받았어요. 저축한 적금도 사용하고요. 그래도 이렇게라도 쓸 수 있어서 다행이었죠.


활동가의 소득이 월 소득으로 치면 하위 1분위일 테지만 이렇게 지원해주는 네트워크 속에 있잖아요. 이런 네트워크가 있어서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 됐을 때 어떻게든 된 거죠. 그런데 열악한 한국의 사회보장 상황에서 저와 같은 수준의 소득자들이 이런 어깨 통증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면 이런 지원을 받을 수 있을까 싶었어요."

 

 2020년 안식년 동안 주 2회 50분씩 어깨재활 치료를 병했했다. 2월에 시작한 운동치료는 12월까지 이어졌다.




활동가 개인의 희생과 헌신이 아닌, 
시민들의 힘으로 인권운동이 지속될 수 있도록




"재충전보다 중요한 건 방전되지 않게 하는 거잖아요"


지금은 안식년을 잘 사용하고 있지만 인권운동사랑방도 안식년 제도가 안착하는 데 시간이 들었다. 내가 쉬면 동료가 더 일하게 될 거라는 걱정이 마음 편히 쉬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의존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나 쉬어서 미안해'가 아니라 '내가 쉬어도 동료가 잘하겠지'하는 마음이요. 자립심이 강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이 활동을 하다 보니까 의존하는 걸 더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남에게 일종의 폐를 끼치는 걸 잘 못하는 거죠. 하지만 우리가 인권운동을 하면서 만들고 싶은 사회가 서로 잘 의존할 수 있는 사회이기도 한 거잖아요. 그렇다면 우리부터 좀 노력하자.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해요."

  

지금도 여전히 '더 잘 쉬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그러면서 안식년에 대한 생각들도 자리잡혀갔다. 


"안식년도 하나의 활동이라는 인정이기도 한 거잖아요. 이 쉬는 기간이 조직적으로 보면 우리의 활동이기도 하다라는 인정이라고 생각해요. 재충전보다 중요한 건 방전되지 않게 하는 거잖아요.


'몇 년 동안 활동으로 소진되었으니 다시 채워서 와' 이런 식은 안식년일 수 없는 것 같아요. 평소에 방전되거나 소진되지 않기 위해 휴식 휴가 제도는 그 자체로 필요하고요. 뭔가 빈 거를 채우는 게 아니라 자기가 가진 것에서 더 채우는 혹은 이제 새로운 거를 만나는 이런 시간이 안식년이면 좋겠어요."



활동가와 활동가가 만드는 회복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평등행진 때 동료 인권활동가들과 함께 찍은 사진



인권재단 사람은 인권활동가들의 쉼과 재충전을 지원하고 있다. 지원금으로 활동가들은 여행과 운동, 휴식 등을 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활동가들이 서로서로 힘이 될 수 있는 작은 모임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미류 활동가는 이런 지원이 '허들 하나를 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그런 장벽 있잖아요. 내가 이거를 꾸준히 하게 될까, 이 돈이면 다른 곳에 쓸 수 있을 텐데. 몇만 원이더라도 활동가들한테는 작은 돈이 아닌 거잖아요. 그럴 때 뭔가 약간 허들 하나 넘게 해주는 그런 효과는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마주해야 되는 일이라는 게 사회적 부정의, 억압과 폭력으로 인한 어떤 참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제 심리적으로도 되게 어렵죠. 근데 저는 활동가들이 놓여 있는 조건이 회복하기에도 좋은 조건에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어깨 치료가 필요했을 때 지원 받을 수 있는 네트워크가 있었던 것처럼, 심리적 외상이 있을 때 이 얘기를 너무 잘 들어줄 동료들이 주위에 있는 거죠. 힘들다고 했을 때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해주고, 그 잘못된 조건을 바꾸기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는 사람들.


외상이 끔찍한 일을 겪은 것 자체뿐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는 상태에서도 오게 되잖아요. 그럴 때 할 수 있는 걸 계속 찾아내는 게 활동이고, 이걸 같이 해주는 동료들이 있는 거죠. 남들보다 더 지치기도 쉽지만 쉼과 회복 방법을 찾는 데도 좋은 조건에 있는 것 같아요."


미류 활동가는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행동하는 동료 인권활동가들이 곧 회복의 조건이자 회복의 네트워크라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자신부터 더 잘 쉬기 위해 연습하고, 자신만의 활동 리듬을 만들려 애쓰고 있었다. 그 연습으로 만들어질 방법이 동료 활동가들에게 전해져 조금이라도 더 나은 쉼과 재충전의 시간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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