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충전]코로나 펜데믹이 나의 쉼 계획에 끼친 영향

훈창
2021-01-13


활동을 하다 가을 즈음이 되면 여행을 가고 싶었다. 한적한 곳에 불어오는 바람과 햇살이 좋았다. 혼자 앉아 먹는 밥과 걷는 길, 눈에 담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좋았다. 확인하지 않아 쌓인 메일과 부재중 전화도 좋았다. 걸어가다 보이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아무 곳에나 앉아 멍을 때렸다. 빠른 길을 피해 버스를 타고 크게 한 바퀴를 돌기도 했다.


꽤 오랜 기간 그런 여행을 가지 못했다. 활동을 하다 휴식이 필요한 시기를 놓쳤고 놓친 시기는 긴 시간의 휴가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휴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땐 긴 여행을 떠날 물리적 여건이 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돈이 없었다. 우상향인 물가는 한적한 여행을 빼앗았다.


올해는 그런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거 같았다. 인권재단 사람의 “인권활동가재충전프로젝트 <일단, 쉬고>”가 보였다. 혼자 떠나는 여행을 갈까 하다 이번엔 친구와 함께 여행을 가고 싶었다. 21살부터 지금까지 15년이 넘게 아무 말을 하며 같은 시간을 보내온 친구가 있었다. 둘이 함께 여행을 가면 아무 말이나 하며 푹 쉬다 올 수 있을 거 같았다. 랜선 으로 계획을 세워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린 ‘아무 말’ 여행을 가기로 했다. 장소는 전남 신안이었다. 아무 말을 하려면 맛있는 먹거리와 충분히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신안은 최적화 된 곳이었다. 작은 섬들은 버스와 배를 타고 이동하며 아무 말을 하고 풍족한 해산물을 먹으며 배를 채우면 모든 게 즐거울 거 같았다. 이 모든 계획은 ‘일단, 쉬고’ 에도 딱 들어맞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코로나 펜데믹에 무너졌다. 쉬기 위한 계획은 어느 순간 휴식을 위해 떠날 수 있을까? 지금 이 상황에 여행을 가는 게 맞는 걸까? 라는 스트레스로 이어졌다. 펜데믹 사태는 코로나에 걸린 환자를 환자가 아닌 확진자로, 그리고 전이자로 만들었다. 이 와중에 인권활동가 2인이 여행을 갔다가 코로나에 걸렸었거나, 걸렸다면 나만 욕을 먹을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잠잠해진 듯 보였던 코로나19는 우리가 여행을 떠나기로 한 10월에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지금 보면 너무나 적어보이는 숫자이지만 100명대로 증가하는 코로나19에 온갖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우린 비상회의를 가졌고 결국 여행을 취소하게 되었다.


일단, 쉬려고 했던 여행은 펜데믹 사태에 다음 계획을 어떻게 수립해야 할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결국 우리는 여행을 취소했고 각자의 방법으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친구는 재활운동을, 나는 테니스 레슨을 받기로 했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점점 처지는 마음을 운동으로나마 해결하기로 했다.



테니스는 긴 휴가에 시작한 취미였다. 정신적으로 지쳤을 때 시작한 운동은 삶에 또 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특히 테니스는 너무 많은 사람과 같이 하지도 않고(축구) 나를 이겨야 하는 스포츠(헬스, 골프)도 아니기에 사람에 지쳤던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물론 나는 나를 이기는데 정말 관심이 하나도 없다. 내가 나를 어떻게 이길 수 있나. 눕고자 하는 욕망을 이기는 사람은 나랑 맞지 않는 사람이다.


운동을 하며 나는 긴 휴가를 잘 보낼 수 있었다. 많이 지쳐있던 정신도, 늘어지기 딱 좋아진 몸도, 그리고 확연히 짧아진 폐활량도 늘어났고 몸에 에너지가 생겼다. 그리고 더 운동을 잘하기 위해, 그리고 오래하기 위해 집에서도 꾸준히 몸을 유지하기 위한 운동을 하게 되었다. 비용이 많이 드는 레슨을 받을 생각은 하지 못했지만, 언젠간 레슨을 받고 부족한 것을 채우고 싶었다. 여행은 취소되었지만, 운동은 특별히 지장 받지 않을 것 같았다.


날이 추워져 실내 테니스 레슨을 받기로 했다. 겨울엔 날이 추워 저녁시간에 밖에서 운동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매년 12월, 1월에는 운동을 쉬다 2월말 즈음부터 다시 운동을 시작하곤 했다. 두 달 동안 쉬다 다시 운동을 시작하면 치는 방법도 많이 잊어먹고 일이주간은 운동하고 돌아왔을 때 온몸이 아팠다. 그리고 늘었던 실력이 다시 퇴보해 짜증도 났다. 겨울 시기에 정말 테니스를 치고 싶었다.


레슨을 받기 위해 종로, 은평, 서대문의 테니스레슨에 대한 정보를 열심히 찾았다. 스스로가 세운 조건이 있었다. 집과 사무실에서 멀지 않은 곳, 레슨장이 환기가 잘 되는 곳, 천장이 높아 서브 연습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마침 사무실과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테니스 레슨을 찾았다. 그래도 가서 볼 필요는 있었다. 낯을 가리고 부끄러움도 많아 강사도 중요했다. 그리고 중고등학교 시절 너무 오랜 기간 노출되었던 체벌로 인해 선생님을 무서워해서 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강사랑 잘 맞을 것 같았다. 천장 높이도 높고 창문도 많았다. 사무실에서 따릉이 타고 10분이면 도착할 거리라는 것도 맘에 들었다. 레슨을 등록하고 운동을 시작했다.


첫 운동은 내가 테니스를 하는 방법을 강사가 파악하는 날이었다. 포핸드·백핸드는 어떻게 치는지, 어떤 그립을 잡고 치는지, 발리는 어떻게 하고 무엇을 중점적으로 익히고 싶은지 하나하나 보여주었다. 테니스를 하는 이유가 처음에는 막연히 운동을 하고 싶어서였다면 점점 대회에서 입상도 하고 싶고 더 잘치고 싶어서였기 때문에 강사와 이야기를 나누며 같이 계획을 세웠다. 첫 운동을 끝내고 나니 레슨을 받길 잘한 것 같았다.



그리고 뉴스에서 서울에 하루 평균 200명이 넘게 코로나에 걸다는 소식이 들렸다. 거리두기가 올라갈 거라는 이야기도 들렸다. 그리고 다음 주 정부는 거리두기 2.5단계를 발표했고 테니스장은 문을 닫았다. 망했다. 나의 <일단, 쉬고>는 다른 누구도 아닌 코로나 펜데믹과의 싸움이 되었다.


어쩔 수 없었다. 제대로 한번 쉬려고 했던 나의 2020년 계획은 코로나 펜데믹에 쉬는 것도 쉬지 않는 것도 아닌 상황이다. 여행을 가려다 코로나 `확산에 가지 못하고 그렇다면 레슨을 받아볼까 하니 확산세가 더 커져 테니스장이 문을 닫았다. 이러다 계획했던 겨울 레슨이 봄까지 미뤄질까 걱정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레슨을 시작해야지, 운동을 시작해야지 이렇게 해놓고 미룬 게 한두 번이 아닌데 <일단, 쉬고> 덕에 레슨을 시작이라도 한 게 어디인가. 집에 고이 모셔놓은 테니스 라켓과 신발에 먼지 쌓이기 전에 빨리 테니스장이 문을 열길 기다린다.


글 | 훈창 (인권연구소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