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충전]말이 통하지 않는 자유: 베를린에서 3주살기

윤지선
2020-01-30

‘첫 여행은 무조건 베를린이다.’ 성인이 되고, 해외여행을 꿈꾸게 되면서, 언젠가부터 막연히 생각했던 나만의 꿈의 여행지는 베를린이다. 베를린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있었다. 환상은 손잡고라는 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하게 되면서 더 깊어졌다. 손배가압류를 하지 않는 나라, 노동법원이 있는 나라, ‘손잡고’라는 단체가 필요없는 나라! 심지어 통일도 했고, 독재청산도 한 나라! 매일같이 대책없는 문제들의 대책을 고민하면서, 태극기부대들의 타깃이 되는 노동자들과 함께하면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끓어 안고 무력함을 느끼면서 많이 지쳐가던 차였다. 그런 의미에서 베를린은 발걸음 닿는 곳마다 숨통이 트이는 도시다. 

    

<일단, 쉬고>여서 가능했던 활동가 재충전


원래 계획은 9월부터 한 달 쉬기였다. 시작부터 쌓여가는 일정, 끼어드는 일정에 밀려 10월로 옮겼다. 한 달에서 3주로 휴가기간도 변경됐다. 대신 베를린에서의 2주를 3주로 변경했다. 숙소를 잡고, 비행기를 예약하고 난 후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았다. ‘비행기를 탈 때까지 모르는 거 아니냐’고 놀리는 운영위원에게 취소 수수료를 물어줄 게 아니면 농담도 하지 말라고 했다. 비행기 타는 날 새벽까지 일을 하고, 무계획으로 떠났다. 그나마도 <일단, 쉬고>의 지원금을 받았기에 가능했다. <일단, 쉬고>는 무를 수 없음이 최고 장점이라 하겠다.   


계획은 12시간 비행동안 충분했다. 잘 쓰여진 여행책 하나를 바이블 삼았다. ‘딱 이대로만 놀테다’. 결정하고나니 계획없어도 할 일이 많았다. 일단 떠나고 볼 일이다. 교훈을 얻고 나니 이제는 틈만 나면 여행적금을 부어서라도 나갈 용기가 생겼다. 


<일단, 쉬고>에 밝힌 나의 여행 계획은 ‘무계획’이다. 계획없이 동네구경, 사진찍기, 그림그리기를 하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모두 이루었다. 3주 동안, 첫 주는 관광객처럼 관광지 구경을, 둘째 주는 좋아하는 미술관 투어를, 셋째 주는 구석구석 베를린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람 사는 구경을 했다. 주말 사이사이 포츠담과 드레스덴 같은 근교여행도 다녔다. 여행의 가장 행복했던 부분은 그림일기를 그린 순간이다. 하루의 마무리를 그날 찍은 사진들을 들여다보며,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을 골라(그릴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그림일기를 그렸다. 


빛 축제, 독일통일 30주년을 준비하는 베를린을 보다


첫 주를 관광객이 되기로 결심하고 보니 마침 운좋게도, 베를린 빛 축제와 시기가 딱 겹쳤다. 브란덴부르크 문, 국회의사당, 시청, TV타워, 베를린돔, 홈볼트 광장 등 운터 덴 린덴 거리를 가로지르는 주요 건물에 밤마다 빛의 향연이 펼쳐졌다. 올해 빛 축제의 주제는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진 지 30주년을 기념하는 것이다. 분단국가에서 태어나 빨갱이 소리 들으며 일하고 있는 입장에서, 통일된 나라의 국민들이 통일을 기념하는 방식을 지켜본다고 생각하니,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이 몽글몽글 솟았다. 


건물에 비춰진 빛들은 각 이스트사이드갤러리에 그려진 베를린 장벽의 그림들을 형상화했다. 축제가 시작되면 TV타워부터 홈볼트대학 앞까지 찻길을 막는다. 베를린 시민들과 각지에서 나온 여행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자유롭게 활보했다. 그 안에 내가 함께 있었다. 하이라이트는 브란덴부르크 문, 케네디 대통령이 ‘Ich bin Berliner’라고 말하면, 벽이 만들어지고 차가 돌진해 그 벽을 부순다. 영상이 끝나면 광장에 모여 있던 모두 너나할 것 없이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우리도 그럴 수 있을까? 


관광하는 내내 전쟁을 기억하는 독일 시민들의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베를린 곳곳에 남겨져 있는 2차세계대전의 흔적들은 근교도시인 드레스덴과 포츠담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시민들이 직접 무너진 건물의 벽돌을 모아 숫자를 매기고, 이후 재건할 때 모아놓은 벽돌을 그대로 사용했다고 한다. 전범국가임을 기억하고 반성하고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끊임없는 노력들이 있었다. 


▲ 히틀러가 마지막을 보낸 지하벙커 자리, 지금은 표지판 하나만 있다.


희생자를 기리고, 독재자를 청산하는 방식도 명확했다. 베를린 여행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된 지인이 홀로코스트추모비를 지나면 근처에 있으니 꼭 가보라고 추천해준 곳이 바로 히틀러가 마지막을 보낸 지하벙커다. 말로 들었을 때만 해도 지하벙커에 들어갈 수 있는 건가, 기대를 했었다. 거대한 규모의 홀로코스트추모비, 작은 규모의 희생된 집시들의 추모비를 이미 본 뒤라 독재자의 말로는 어떻게 보존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독재자의 말로는 가차 없이 지워졌다. 자칫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칠 뻔했던 히틀러의 지하벙커는 흔적도 없이 매워졌다. 베를린시는 지하벙커부지에 대규모 주택단지를 지어 시민들에게 돌려주었다. 2006년까지 표식하나 없었다고 한다. 이유는 신나치주의자들이 지하벙커를 성지화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고, 독재자를 추앙하는 무리가 정당을 만들고, 생가까지 보존해 기념관을 만드는 한국에서 고통 받는 일상이 관광 내내 머릿속을 스쳐갔다. 아, 우리는 친일 청산도 못했지. 그런 생각, 부러움, 대리만족. 


예술의 도시, 베를린! 


두 번째 주는 베를린 곳곳에서 볼 수 있다고 알려진 박물관과 미술관들을 돌았다. 뮤지엄패스 하나 끊어놓고 도장깨기를 벌였다. 페르가몬 박물관, 구 국립박물관, 신 국립박물관, 구 국립회화관, 구 국립미술관, 신 국립미술관, 베를린돔, 유대인박물관, 샤를로테부르크 성 등등 알차게 사용했다. 뮤지엄패스도 만능은 아니다. 케테콜비츠 전시관 같이 별도의 돈을 내야 하는 곳도 있다. 케테콜비츠니까 괜찮다. 


▲ 유명한 박물관부터, 벽화, 거리의 건물, 소규모 갤러리까지 곳곳에서 예술작품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꼭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가야만 예술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베를린은 곳곳이 그림 천국이다. ‘저 낙서는 뭐야?’싶다가도 자꾸 보면 익숙해져서 튀지 않는다. 동베를린 쪽에는 예술가들이 밀집해 살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벽 그림들도 좀 더 섬세하다 미테지구를 가로지르면 작은 갤러리들이 즐비한 거리도 있다. 작은 상점 크기에 그림 서너개 걸려있는 식의 갤러리들도 인상적이다. 


올해 본격적으로 그림일기를 그리게 되면서 나에 대해 발견한 게 있다면, 그림보는 걸 꽤 좋아한다는 거다. 시간이 없을 뿐. 베를린에서는 원 없이 그림을 보면서 그림 취향도 알게 됐다. 난 성화나 고대 박물관 쪽은 영 취향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맥주를 좋아하는 지인들은 9월에 하는 옥토버페스트를 놓쳐서 아쉽지 않냐고들 묻는다.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가을이 절정인 10월에 베를린을 방문한 것에 마냥 행복했다. 베를린은 산이 별로 없다. 대신 크고 작은 공원이 많은데, 큰 공원에는 나무도 빼곡이 있어 숲의 느낌을 준다. 


내게 베를린은 회색빛 도시의 이미지가 있었는데, 웬걸, 매우 알록달록한 도시다. 건물마다 들어찬 그림들이 아니더라도, 대부분 파스텔톤의 외벽이 노랗게 빨갛게 단품이 물든 나무와, 흰구름 둥실뜬 파란하늘을 만나는 날이면 한 걸음 한 걸음 떼기 아쉽다. 대부분 건물이 낮은 편이고, 인도와 도로가 넓어, 어디에 서 있든 넓은 하늘을 볼 수 있다. 언제든 하늘이 시야에 들어온다는 게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지 새삼 깨달았다. 



바라보는 곳마다 풍경 그자체로 예술이니 뚜벅이 여행도 마냥 행복했다. 바이블로 가져갔던 여행책을 따라서 가로숲길을 지나는 218번 순환버스를 타기도 하고, 페리를 타고 클라도우라는 조용하고 예쁜 동네에 소풍을 가기도 했다. 모든 건 약8만원이면 버스, 트램, 지상철, 지하철, 그리고 페리까지 탈 수 있는 교통패스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걷다가 지루해지면 대중교통을 타고, 지나다 멋진 풍경을 만나면 다시 내려서 산책을 하고, 사진을 찍고, 멍 때리며 앉아있고, 그러다 배고프면 여행책이 추천하는 카페에 들어가 추천메뉴를 먹으며 시간을 보내길 반복했다. 

  

착하디착한 생활물가에 또 한 번 반한다


독일은 외식비는 비싼 편이다. 에너지와 인건비가 들어가는 곳은 비용이 비싼 게 당연하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대신 생활물가가 아주 저렴하다. 그래서 식비는 싱싱하고 저렴한 식료품을 사다가 숙소에서 해결했다. 당초 2주에서 3주로 여행기간이 늘어서 걱정을 했는데, 예상 식비가 남아 선물을 살 수 있었을 정도였다. 여건만 되었다면 한달 살기도 가능했을 것 같아 아쉬웠다. 3주를 보내다보니 생리기간이 겹쳐서 현지에서 구매를 했는데, 10개들이 1유로도 안하는 생리대 가격을 보고 놀랐다. 돈 없어서 생리기간마다 모멸감을 느껴야 하는 일이 이 나라에선 없겠구나 싶어 씁쓸했다. 한편으로는 여분의 트렁크를 준비하지 못해 사재기할 수 없어 아쉬웠다. 과일도 싸고, 고기도 싸다. 매일 과일과 소고기는 원없이 먹었다. 


패트병이나 병을 판매하는 경우, 환경부담금이 붙는데, 모르고 있다 나중에 알았다. 각 슈퍼마켓마다 자판기 같은 게 있어서, 페트병을 넣으면 크기와 상관없이 0.25센트씩을 돌려준다. 이후 숙소 청소날짜 전에 페트병을 모아두었다가 환급받으러 가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누렸다.       


다음에는 한 달 살기에 도전!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좋았던 곳을 한 번 더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다. 한 주만 더 있었으면 마지막 주는 3주간 관광하며, 예술을 즐기며, 소소한 일상을 보내며 좋았던 순간들을 한 번씩 더 경험하는 데 썼을 거다. 


꼭 쉼 없이 몇 년을 일해야만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겠다. 베를린에 가기 전에 느꼈던 남은 일과,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들이 결국은 나 혼자 만들어낸 일과 감정들임을 깨달았다. 한 달 없다고 세상 바뀌지 않고, 떠나 있다고 급한 일 해결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더라. 이번 여행을 통해 ‘일단 쉬지 못했던 나’를 내려놓기로 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패소와 새로운 손배가압류 소식이 이어졌다. 일상이 시작됐고, 여전히 지치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또다시 깨닫는다. 곱씹을 수 있는 기억과 추억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쉬엄쉬엄, 넘어지지 않게, 그렇게 살아야지!


글 |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



#인권활동가 #활동가의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