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충전]긴장 풀고 이완 경험하기

난다
2020-10-14

이 정도면 오래 버텼다쉬어야겠다이런 생각이 든 건 온갖 감정의 파도에 빠져 허우적대다 겨우 조금 고개를 들고 숨을 몰아쉬던 때였다. 2017년에서 2018년으로 넘어가던 때활동한 지 10년째 되던 해였다.

 

나는 청소년인권운동을 하고 있다. 2008년에 본격적으로 시작해서 어쩌다 보니 이만큼 왔다하지만 그 때부터 제대로 쉰 적이 없었다청소년운동에는 그동안 상근활동가와 같은 자리를 가진 단체가 많지 않았고공식적으로 활동가가 쉬었다가 복귀한다는 절차와 체계가 마련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그러다 보니 다른 단체/운동에서 실행하고 있는 안식년(일 년 동안 유급 휴가)’이라는 개념이 없기도 했고 활동가가 쉬었다가 복귀한 경험도 거의 없었다개인들이 각자의 상황에 따라 알아서 휴식이나 복귀를 결정하곤 했다나 또한 몇 년 정도 다른 단체에서 상근활동을 했을 때를 제외하면 생계를 위한 일과 청소년운동을 같이 해오다 보니 오히려 언제쯤 쉼을 가져야 할지 떠올리기 어려웠던 것 같다.


새로운 운동을 만들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버겁고지금까지의 내 삶과 운동에 대해 좌절감이나 무력감이 커진 건 그만큼 내가 지쳤기 때문인 것 같았다저임금과로불규칙한 생활미래를 전망하기 어려운 현실들... 많은 활동가들이 처해 있는 어려움을 나도 겪고 있었던 것이다그래서 일단 쉬기로 했다당장은 어려웠기에 2020년에는 쉬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면서도 운동의 상황과 새로 제안받은 일들을 떠올리며 그래도 아직은 쉴 때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하지만 언젠가 쉬기에 괜찮은 시기가 오기를 기다리기보다 내가 그 시기를 만들어서 스스로에게 선물해주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또 청소년운동 안에서 비교적 오래 활동해 온 사람인 내가 쉼을 갖고재충전해서 다시 돌아오는 사례를 만들고 경험하고 싶었다비록 우리 단체의 상황상 유급 휴가도 아니고 일 년 동안 휴식도 어려워지긴 했지만, <일단쉬고지원사업이 있어 걱정을 덜 수 있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휴가를 맞아 3월에는 한 달 동안 제주도에서 지냈고 4월부터는 요가를 배웠다요가를 하기로 마음먹은 건 몇 년 전부터 심해진 목과 어깨 통증 때문이다. <일단쉬고프로젝트의 사업명을 긴장 풀고 이완 경험하기로 지은 이유이기도 하다.


요가가 처음은 아니지만 오래전에 한 달쯤 배운 경험과 일주일에 한 번씩 몇 회 해본 경험뿐이었다이번에 쉬면서 매일 매일 요가를 하니까 제대로 배우는 느낌도 들고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전에는 요가가 몸을 유연하게 하고 자세를 교정해주는 운동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이번 요가 수업에서는 몸 동작과 어디에 좋은 자세를 익히기도 하지만요가가 지금여기의 나를 알아차리고 움직임을 통해 몸마음의 기반과 균형을 잡는 연습이라는 느낌을 받았다느린 속도의 동작을 하기도 하고때로는 한 자세에 머무른 채 호흡을 느껴보고 골반과 어깨옆구리 등 특정 부위의 긴장을 천천히 느껴보기도 했다그런데 이게 어떤 동작보다도 어려웠던 것 같다조금 정적인 움직임 속에 머무를 때면 지금여기보다는 과거로미래로 가버리는 것이다자꾸 딴생각이 들어서 집중이 잘 안 되기도 했다.


하루는 명상을 통해 깊은 내면을 만났을 때. “내 어깨가 이대로 나아지지 않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발견했다요가를 시작한 지 한 달 조금 넘었을 때였다나의 목표는 고질적인 통증을 치료하는 것이었다나는 매일 규칙적으로 운동도 하고그 어느 때보다 건강하고 여유롭게 지내는 것 같은데왜 안 나아지지싶었던 것이다.


지난 세월 동안 뭉친 몸과 마음이 단번에 풀리지 않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데 서둘러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또 열심히 하는 만큼 빨리 나아질 거라고 기대했다그러니 마음만큼 몸이 안 따라올 때는 자꾸 초조해졌다.


마치 활동할 때의 습관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열심히 준비하고고민하고시간을 들이고그런만큼 성과가 나오기를 기대하고내가 내 몸을 일하듯이 대하고 있었다하지만 활동도 그렇지만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늘 만족스러운 건 아니다매번 잘해야 하는 것도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언제나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해야 하는 것도늘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다완전하고 완벽한완성된 무언가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나의 오래된 통증을 그저 없애야’ 하는 걸로 여기게 했다.


물론 덜 아프면 좋을 것이다하지만 아프지 않은 상태만을 지향하다보면 그 부위만 신경 쓰게 되고 아프지 않았던 때를 그리워하게 된다요가에서 배우고자 하는 지금여기를 알아차리기보다는 과거와 미래의 힘이 더 세지는 것과 비슷하다


어느날 잘 안 되던 자세를 처음부터 끝까지 해낸 적이 있다그냥 됐다그리고 또 어느날 눈가가 떨리는 증상이 사라졌다스트레스와 긴장 때문일거라고 짐작하면서도 자꾸 왜 이러지?’ 신경쓰이던 증상이었다이것도 그냥 괜찮아졌다그 때부터 내 상태를 조금은 덜 불안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뜨거운 여름을 맞았다여름에는 다시 제주도에 갔다. 3월에 잠시 지냈던 삼달다방에 좀 더 오래 머물고 싶었고삼달다방 근처 무밭 스튜디오에서 열리는 <춤추는 섬3: 표현하는 몸워크숍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춤추는 섬>바리나모라는 댄스 아티스트 듀오가 2018년부터 제주도에서 진행하는 소매틱 댄스 프로젝트의 이름이다. 2018년에 첫 번째 워크숍이 있었고, 2019년에는 <춤추는 섬2: 시간을 품은 몸>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다내가 참여한 이번 2020년 여름 <춤추는 섬3: 표현하는 몸>82일부터 15일까지 2주 동안 춤을 통해 다양한 몸들을 새롭게 경험하는 시간이었다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참여자들이 모였다나처럼 춤을 거의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춤과 움직임에 대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2주 동안의 춤 워크숍은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매일 4시간씩 몸을 움직였다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시간들이 마치 꿈처럼 지나간 것 같았다몸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경험했고매일매일 다른 에너지를 주고받았고혼란과 안정감이 오가며 몸에 흘렀다낯설고 새롭고 생소하고 신기했다.

나는 뭐가 그리 신기했나몸이 조금씩 달라진다고 느껴지는 게 신기하고어떤 움직임을 할 때 편안함을 느끼는지 또 해방감을 느끼는지 탐구하고 몰두하는 몸이 신기했다다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인데 스튜디오에서는 모두 한 몸이 되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여러 사람들과 이렇게 몸이 가까워지는 것도거리가 한참 멀어졌다가 어떤 순간에는 한없이 섞이는 것도나의 몸과 내 공간을 감각하면서 서로를 지지하고 돕는 상태를 느낄 수 있었던 것도 그곳에서의 특별한 경험이었다



나에게 이번 휴가는 과거도 돌아보고현재에도 머물러보고미래도 조금씩 그려보는 시간이었다나를 좀 더 가깝게 느껴보기도 하고내가 몰랐던 모습을 새롭게 만나보는 시간이기도 했다목표가 꼭 이루어지지 않아도 되고아무것도 하지 않고무엇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경험할 수 있었던 날들이기도 했다특히 평소에 운동도 잘 안 하고 몸을 안 움직이다 보니몸을 쓰고몸으로 무언가를 감각하고몸의 신호에 집중해본 경험이 더 신선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온몸의 경험이 흐르고 흘러서 어떤 몸이 되고 그 몸으로 또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아마 좀 지나면 배운 건 대부분 잊어버릴 것 같지만 그래도 시간이 더 흐른 뒤의 내가 기다려진다아마 앞으로도 지치는 일도 있을 테고 바쁜 날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아무래도 참고 버티거나 붙드는 게 더 익숙해서 긴장이 남아있는 몸이지만앞으로는 긴장과 이완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지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별생각 없이 요가 동작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어깨가 풀렸다고 느껴지듯문득 마음을 일으키고 싶은 순간도 찾아올 것이다또 다른 일들 탓에 몸과 마음이 뭉치더라도 다시 이완하고 풀어줄 수도 있다는 걸 좀 더 알게 된 것 같다쉬면서 시작한 요가도 앞으로도 일상 속에서 틈틈이 이어가고 싶다.


글 | 난다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





#활동가의여행 #청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