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성소수자에게 체육관을 열어라! - 2017 여성성소수자 궐기대회

방이슬
2017-12-11

글 | 방이슬(퀴어여성네트워크)



언니네트워크가 소속되어있는 퀴어여성네트워크(이하 퀴여네)가 10월 18일 동대문구청 앞에서 <2017 여성성소수자 궐기대회>를 열었습니다.


원래 퀴여네는 동대문구에서 궐기대회가 아닌 <제1회 퀴어여성 생활체육대회>를 개최할 예정이었습니다. 실내체육관인 동대문구체육관에서 배드민턴, 풋살 경기와 관람객을 위한 스페셜이벤트로 농구 자유투 대회가 진행될 예정이었어요.


가을은 각종 체육대회 성수기라 실내체육관 대관이 매우 어려운 시즌입니다. 이번 대회 기획단도 엄청난 탐색 끝에 적절한 규모의 장소를 겨우겨우 찾아서, 답사도 꼼꼼히 하고 비싼 대관비를 치르며 허가서를 받아둔 상태였어요. 동시에 참가팀 모집을 순조롭게 끝내고 이제 열심히 경기준비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죠. 대회 비용 모금을 위해서 ‘성적 지향, 성정체성, 성별 표현에 상관없이 누구나 즐기는 스포츠’ 라는 대회 취지를 알리며 다음 같이가치 모금함도 오픈하고요.


그런데! 대관 허가가 난지 며칠도 지나지 않아서 동대문구가 갑자기 대관을 취소해버립니다. 미룰 수 없는 중요한 공사를 꼭 우리 대회 여는 날에 해야 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를 대면서요. 정말 믿을 수 없었죠. 왜냐하면, 체육관 대관 담당자가 취소를 통보하기 하루 전날까지 언니네트워크 활동가들과 통화하면서 “항의민원이 많이 들어온다, 이럴 줄 알았으면 판단이 달라졌을 거다. 성소수자 행사는 미풍양속에 저해될 소지가 있다, 대관이 취소될 수 있다” 등등의 차별 발언을 한참이나 내뱉은 상황이었으니까요.


결국 동대문구는 ‘성소수자’라서 체육관을 내줄 수 없다고 판단한 거였어요. 실제로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인해보니, 미리 예정되었다는 그날의 공사계획은 존재하지 않았어요. 어떻게든 ‘성소수자 차별’ 이라는 딱지를 받지 않고 대관을 취소하기 위해 나중에 급조했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정말 속 터지는 일에 가만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민원’을 가장해 항의전화를 퍼붓는 성소수자혐오세력들도 문제지만, 지자체가 너무나 쉽게 이들의 편에 서고, 차라리 성소수자가 체육관 쓰지 못하게 막는 일이 속편할 거라고 생각하게 두어서는 안 되니까요. 퀴여네는 국가인권위에 차별 진정을 냈고, 한겨레 등 언론보도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도 했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했어요.


그래서 동대문구청 앞에 모였습니다. 풋살팀 FC언니네처럼 체육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팀을 꾸리고 연습하던 참가자들, 퀴어친화적인 여성 스포츠팀, 여성성소수자 생활체육이 더 활발해지기를 응원하는 많은 이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함께 웃고 떠들었어요. 언니네트워크 소모임 아는언니들이 공연으로 연대의 마음을 보태주었습니다. 그리고 페이스북에서 공모한 ‘동대문구’ 사행시를 낭송했습니다.


일찍부터 구청 광장 앞에 높은 펜스를 쳐놓고 경계하던 경찰들, 청사 문 앞에 나와 불안한 눈빛을 보내던 구청 직원들도 어느 샌가 무대 쪽으로 향해서 발언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아직까지 성소수자의 존재도 이야기도 잘 몰라서, 그간 성소수자 차별에 대해서도 공감하지 못하는 공무원들이 많았겠지요. 그래서 이 날 발언자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생생한 성소수자 인권교육이었을 겁니다.


체육대회의 올해 개최는 결국 무산되었지만, 체육대회를 여전히 기대하고 응원하는 이들과 함께 동대문구청사에 항의 손피켓을 붙이면서 마음을 조금 더 단단히 먹었습니다. 의도치 않았지만 이렇게 붐업이 되었으니, 내년 봄에는 더욱 떠들썩하고 재미있는 체육대회가 열리리라 기대해봅니다. 그때까지 언니들, 운동 미루지 말고 열심히 하자구요~!




▶ 2017 여성성소수자 궐기선언 전문보기


#성소수자 #LGBTIA #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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