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우리에게 필요한 건 백신만이 아니다

명숙
2021-05-12


‘띠리리...’

 핸드폰의 메일 알림이 울린다. 중수본 대외협력팀 담당 주무관이 보낸 메일이 왔다. 우리가 보낸‘백신접종 관련 인권시민사회 의견서와 보고서’를 담당자에게 전달했다는 참조 메일이 온 것이다. 우리가 백신과 관련한 인권의 원칙을 확인하고 정부가 백신배분에서 고려할 사항을 전달하자고 모인 지 4개월 만이다. 드디어 활동이 마무리되는가?

 처음 백신인권팀을 만들게 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언론에서 나오는 백신 관련 쟁점은 집단면역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물량확보 문제가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물량만 확보하면 다 해결될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었다. 자원이 부족할수록 인권에 기반 한 배분은 사회적 논의가 더 활발해야 한다. 무엇보다 백신접종의 목표가 ‘국가살리기’가 아니라 ‘인권’이 되려면, 개인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그러나 언론보도나 정부 발표 속에서는 백신접종의 배분에 관한 인권적 접근을 찾기 어려웠다.

 다른 하나는 코로나19 기간 동안 더욱 주변화 되고 차별받는 사회적 소수자 집단에 대한 정부 정책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1년 동안 달라진 게 별로 없으니, 장애인이나 홈리스, 이주민, 비정규직 특수고용 노동자 등도 차별 없이 백신접종을 받을 수 있을지 믿을 수 없었다. 장애인이나 이주민, 홈리스들은 정부의 방역조치에서 빠져 무방비 상태로 감염되거나 감염의 위협에 처했다. 심지어 얼마 안 되는 재난지원금조차 정부는 이주민이나 홈리스들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렇다보니 백신접종에서 정작 당사자의 목소리는 없고 일부 의료전문가들의 목소리만 들려왔기에 우리는 모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먼저 코로나19 백신보급과 접종에서 지켜져야 할 인권의 원칙에 관한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모아 정리하기로 했다. 그러려면 다양한 집단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연속 집담회를 기획했다. 그리고 정부가 정책을 바꿀 수 있도록 여러 집단의 목소리를 전달하기로 했다.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

 

집담회는 총 여섯차례 진행됐다. 먼저 백신접종을 둘러싼 시민사회의 쟁점과 인권의 원칙에 대해 나눴다. 백신 배분은 과학기술적(의료적) 가치만이 아니라 접근성과 형평성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공공보건의료 강화와 시민의 민주적 참여가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공공보건의료체계가 약한 한국 현실에서 백신접종도 민간위탁으로 해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경우 백신배분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기에 시민들의 참여는 더욱 중요하다. 또한 집단면역 자체가 목표인 듯 진행되는 백신접종과 배분은 인간을 수단화하고 인간존엄의 원칙에 반하기 쉽다. 공공성의 가치가 아니라 ‘국가 또는 주류집단으로 상정된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사회적 소수자나 주변화 된 존재’들은 내버려두는 방향으로 가지 않으려면 평등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나아가 인권의 상호의존성, 상호불가분성의 측면에서 백신 접종의 우선순위를 바라보고, 연결의 권리와 연대의 원칙에서 백신 우선순위가 논의되고 합의 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 후 장애인, 홈리스, 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필수대면 돌봄노동자, HIV감염인과 간병노동자와 같은 접종 목표 숫자 뒤에 숨겨진 사람들 등의 이야기를 들었다. 6회에 걸친 집담회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코로나19 백신접종을 둘러싼 논점과 과제 - ‘사람중심’관점에서>, <코로나19를 마주한 장애인, 그리고 백신이야기>, <권리로서의 홈리스 백신 접종이 가능하려면>, < 이주노동자와 특수고용노동자 : 백신접종 우선 필수대면노동자는 어디까지인지 묻는다>,< HIV감염인과 간병노동자 : 백신접종 임박, 접종목표 숫자 뒤에 숨겨진 사람들>,<백신을 넘어 감염병 대응을 넘어, 공공보건의료 강화>

장애인활동가들로부터 코호트 격리로 인한 고통과 자가 격리와 확진으로 활동지원이 배제 되고 고립과 생존 위협으로 이어진 경험을 듣고, 홈리스인권활동가로부터 홈리스 거주시설의 집단 감염의 책임이 홈리스 개인들에게 향하면서 코로나 검사에서도 홈리스들이 차별받는 현실에 대해 들었다. 이주노동자와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는 감염의 위협 속에서 최소한의 안전장비도 없이 일했던 경험과 정부의 임시방편적 대응에 대해 들었다. HIV감염인을 향한 혐오가 코로나19 확진자를 향한 혐오가 재현되는 것을 보면서 감염인들은 백신접종으로 인해 HIV감염 사실이 유출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겪어야 했던 속내를 말해주었다. 게다가 아플 때에 치료받을 수 있는 필수의료는 비어 있어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다고 했다. 간병노동자로부터는 잦은 코로나19 검사로 힘들었을 뿐 아니라 백신접종 동의서 취합 대상자에서는 제외되는 차별의 경험을 들을 수 있었다. 코로나19의 대응 과정 전체는 차별을 완화하는 것이 아닌 강화하고 있었다.

 

 

마지막 집담회는 ‘공공보건의료’ 강화의 방향이었다. 감염병 대응뿐만 아니라 백신 접종에서도 공공의료는 중요하다. 공공의료기관 노동자들의 부족, 공공병상 수의 부족, 공공의료기관 수의 부족 등만으로 단순화할 수 없다. 의료서비스 제공 기관이 매우 적은 한국의 공중보건체계에서 보건과 복지와 의료를 넘는 대응체계가 필요하다. 경계를 허물고 사람중심의 관점에서 협력과 조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장애인을 포함한 이동약자, 미등록 이주민, 고령자, 의료기관 노동자, 필수직종 노동자 등이 접종과정에서 배제되지 않을 수 있다. 백신 접종을 위해 중앙정부도 부처 칸막이를 제거했듯이 지역과 마을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런데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었다. 백신 접종 신청서를 직접 제출해야 하는 신청주의는 상황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칸막이는 여전히 단단해서 노인들이 신청도 못하고 있다는 언론보도를 접한다. 씁쓸하다.

 

차별의 사회구조를 바꾸어야

 

집담회에서 다시 확인한 것은 이들이 코로나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이미 기본적인 권리가 박탈되거나 차별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장애인들에게는 시설중심의 제도와 활동지원시간의 부족문제가, 홈리스들에게는 불안정한 주거문제와 복지제도가, 이주노동자에게는 고용허가제도가,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는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은데다가 산재보험조차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제도가, HIV감염인에 대한 혐오가, 돌봄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차별이 문제였다. 이러한 일상적인 구조적 차별이 개선되지 않는 한 백신배분에서의 차별도 바꿀 수 없다. 차별의 사회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새로운 감염병 위험은 사회적 소수집단의 삶을 더 위협할 것이다. 이는 백신으로 해결할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백신만이 아니라 인권과 시민들의 참여 보장이다.

 

온라인집담회의 장점

 

이번 집담회는 온라인으로 이루어졌다. 처음에 줌으로 집담회를 하면 환경의 제약으로 인해 많은 이야기가 안 나올까 우려했는데 기우였다. 미리 발표문만이 아니라 질문들을 참여자들로부터 받았기에 진행은 원활했다. 무엇보다 온라인으로 하다 보니 서울수도권 중심을 벗어날 수 있어 좋았다. 일례로 홈리스나 이주노동자의 경험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날수밖에 없는데, 여러 지역의 활동가로부터 각각의 현장 상황과 경험, 그에 따른 고민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인권활동가나 연구자들만이 아니라 여러 보건의료 종사자들도 백신접종에 대한 고민이 많음을 알 수 있었다. 열심히 경청하며 참여한 보건소장과 공공병원 병원장도 있었다. 집담회를 통해 차별의 사회를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다양한 주체들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은 또 하나의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그 외에도 수어통역과 문자통역을 해서 다양한 유형의 청각장애인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해서 좋았다. 이는 장애인접근권 보장만이 아니라 참여자들이 다양한 언어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정책을 바꾸어가는 힘에 대해

 

우리는 집담회 외에도 백신접종이나 코로나검사 과정에서 발생한 차별에 대한 즉각적인 입장표명을 했다. 그리고 가능한 경우 정부관계자를 만나 의견을 전달하거나 토론회에 참여했다.

 그래서일까. 정부는 비판의 목소리가 들리면 소수자 배제적인 정책을 조금 바꾸기도 했다. 예를 들어 3월 12일 ‘코로나바이러스-19 예방접종사업 지침 - 지자체용- 1판’에서는 예비명단이 등장했다. 청소노동자나 환자 이송업무 종사자, 진료 보조 종사자 등 병원에서 일하는 비의료인력은 예비명단으로 두겠다는 안이었다. 의료인과 다르게 비의료인력은 백신접종을 하고 남은 것을 접종시키켔다니! 필수노동자들임에도 비의료인이라고 차별한 것이었다.

 

이에 우리는 < 의료기관 필수노동자는‘예비존재’가 아니다 >라는 성명을 통해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비의료인들도 필수노동자들이며, 이들은 백신 폐기량을 줄이고, 백신을 소진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며, 이러한 사고가 얼마나 비과학적이고 비윤리적인 정책 결정인지 비판했다. 다행히 나중에 의료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 모두를 접종대상자로 하는 것으로 수정됐다.

 

백신인권팀, 쭉?

 

앞에서 말했듯이 최근에 우리가 나눴던 얘기를 바탕으로 의견서와 보고서를 중수본에 전달했다. 어떤 답이 나올지, 아니 답변이나 올지 모르겠다.

 집담회는 끝났으나 활동은 계속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여전히 백신을 둘러싼 인권문제가 남아있어서다. 특히 백신여권이나 국제적인 백신불평등과 같은 코로나 국가주의의 벽과 차별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과 대응이 필요한 때다.


글 |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바람 상임활동가 / 코로나19인권대응네트워크 백신인권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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