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19]코로나19 의료공백, 존엄과 평등으로 채우다

고운
2020-12-15


#어느 마스크를 쓰겠냐고?


서울 곳곳에 나부끼는 포스터가 무섭습니다. “어느 마스크를 쓰시겠습니까? 남이 씌워줄 땐 늦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고, 마스크를 쓰고 책을 읽는 사람과 수술대 위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누워있는 사람의 사진이 나란히 대비됩니다. 기발한 포스터라며 이목을 끌기도 했지만, 힘겹게 투병하는 이들의 존엄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코로나19 감염의 이유를 마스크를 쓰지 않은 본인 탓으로 돌려버리는 논리였으니까요.


이러한 방역의 논리의 이면에는 의료공백이 있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이 시작된 이후로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했거나, 병원에 갔어도 별 수 없이 되돌아와야 했거나, 차마 되돌아오지도 못한 이들이 많습니다. 의료공백은 멀지 않습니다. “감기라도 걸리면 안 돼, 병원도 못 가”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지 않았나요?


의료공백은 코로나19 위기가 갑자기 만들어낸 상황이 아닙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던 불안정한 의료체계의 문제와 차별과 불평등의 문제가 위기 상황을 만나 의료공백의 모습으로 터져 나온 것입니다. 어느 마스크를 쓰겠냐는 협박 이전에, 이러한 문제들을 돌아보고 재정비해야 합니다. 이미 늦었지만, 더 이상 늦어서는 안 됩니다.


#4개월의 코로나19 의료공백 인권실태조사 활동


코로나19 의료공백 실태조사단이 꾸려진 때는 지난여름이었습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의 첫 대확산 시기, 고 정유엽 씨가 의료공백으로 인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또 다른 피해 사례들이 많을 것 같았습니다. 코로나19 위기는 장기화될 것이고, 그 동안 또 다른 대확산은 몇 번이고 다시 올 수 있으며, 그 상황에서 의료공백 역시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기에 하루 빨리 이에 대응해야겠다고 마음을 모았습니다.


7월 15일 첫 모임을 진행하며 코로나19 상황에서 드러나는 공공의료의 문제점 및 의료 공백을 사회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코로나19 상황에서 겪었던 의료공백 사례를 모으기 위해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49명이 응답했고, 메일과 전화 등을 통해 의료공백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사례 설문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약 2달 동안 심층 인터뷰를 통해 피해 당사자들을 만났습니다. 피해 당사자들과 가족, 의료공백으로 인해 사망한 당사자의 유가족과, 주변 동료들 10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추가적으로, 현재 의료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의 경험을 듣고, 현재 공공의료체계 전반을 짚어보고자 3명의 의료진을 심층 인터뷰했습니다.


인권재단사람 한터홀에서 진행한 8월 회의 모습. 긴 테이블을 직사각형 모양으로 이어 붙였다. 다섯 명의 활동가들이 자리를 한 칸씩 띄어 테이블 하나에 한 명씩 앉아있다. 

조사단은 총 15차례의 온·오프라인 회의를 통해 내용을 정리하며 의료공백이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왜 발생하는지를 고민했습니다. 그 결과 의료공백은 긴급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기존의 공공의료가 갖고 있던 문제점이 위기 상황과 마주하면서 촉발된, 예견된 결과였음을 확인하였지요. 특히 이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 피해가 가중되는 것에 주목하였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인권의 원칙을 기준에 놓고, 피해 사례를 사회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초점을 맞춰 조사 보고서를 집필하기 시작했습니다.


줌 회의 화면 스크린샷. 7명의 활동가들이 직사각형 모양의 그리드 안에서 각각 웃고 있다.


첫 모임부터 지금까지 코로나19 상황이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심층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마스크 없이 마음껏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 안타까웠고, 인터뷰 공간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조사단 회의도 때로는 온라인으로 모니터를 마주 보며 진행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불편하기도, 어색하기도, 아쉽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뉴스에 연일 이어지는 ‘확진자 수’를 볼 때마다 마음은 더 단호해졌습니다. 다음 대확산이 다시 오기 전에 어서 의료공백 피해를 알리고, 다음 피해를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절실해졌기 때문입니다.


#의료공백은 왜 발생하는가? 왜 약자에게 더 가혹한가?


보고서를 집필하면서 계속해서 확인할 수밖에 없던 사실은 의료공백이 사회적 약자·소수자에게 더 심각한 피해를 가져온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이용하던 공공병원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동자동 쪽방촌의 윤주민 씨는 절단 부위 염증으로 긴급한 치료가 필요했으나 염증으로 인한 고열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진료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생사의 공포를 오롯이 혼자 견뎌내야 했습니다. 또 다른 HIV감염인 윤가브리엘 씨는 평소 이용하던 국립의료원이 코로나19 전담병원이 되면서 만성중이염수술이 무기한 연기되었습니다. 수술이 시급한 상황이지만 높은 비용과 차별 때문에 민간 상급병원 이용은 엄두도 못 내고 있습니다.


낙인과 차별, 배제에 의한 진료거부는 코로나19를 핑계로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의료공백 피해사례 제보자 C씨는 HIV감염인으로 일터에서 기계조작 사고로 엄지손가락이 절단되었습니다. 긴급한 봉합 수술이 필요했으나 HIV감염인이라는 이유로 20여 곳의 병원에서 진료거부를 당했습니다. 이주노동자 H씨는 심장에 심한 통증으로 인해 병원을 이용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당신들은 거짓말해서 입원할 수도 있고, 속일 수도 있다'며 코로나19 검사를 강요했습니다.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진료가 불가능하다며 약만 처방하여 돌려보냈고, 이후 H씨는 통증으로 인해 의식이 혼미해진 상황에서 주변의 다른 친구가 119를 불러 병원으로 이송하던 도중 사망했습니다.


#의료공백, 존엄과 평등으로 채우자


 코로나19 의료공백인권실태조사보고회 발표 모습. 조사단 활동가들과 수어통역사가 긴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발언하고 있다. 뒤 벽에는 ‘코로나19와 의료공백, 존엄과 평등으로 채우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붙어있다.

△  코로나19 의료공백인권실태조사보고회 발표 모습


11월 25일 열린 코로나19 의료공백 인권실태조사 보고회에서는 의료공백 피해 당사자들의 발언과 함께 의료공백 실태조사 보고서를 바탕으로 한 발표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보고서와 발표를 통해 1) 의료공백 상황이 발생한 제도적-구조적 원인이 무엇인지, 2) 이 문제가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니라 기존의 공공의료의 한계가 위기 상황에서 공백을 만 들어낸 것임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인간 존엄 존중과 평등의 원칙에 근거하여 3) 의료공백 상황이 드러낸 인권 침해의 문제점을 짚고, 4)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말아야 할 존엄하게 생존할 권리에 대해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우리의 주장과 이 보고서는 '안전이 우 선이냐 인권이 우선이냐'를 대립항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안전인지, 그 안에서 어떻게 생존할 것인지 묻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5) 공중보건위기 상황에서도 지켜져야 할 인간의 존엄과 권리가 있고 이를 보호해야 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과 의무임을 상기시키고자 했습니다.


의료공백은 위기에서 촉발된 갑작스런 일이 아니라, 의료를 이윤의 논리에 따라 등급화하고, 시장화한 지난 정책이 만들어 낸 결과입니다. 지난 정책의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비어있는 시스템을 채우는 과정이 시급합니다. 앞으로 감염병의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공백을 겪고, 누군가의 삶을 내버려 둔 채 일상의 회복을 이야기해야 할까요? 생존과 죽음의 문제에서, 인간의 존엄과 평등에 기반을 둔 시스템을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3차 대확산으로 하루 양성 확인 수가 1,000건이 넘어가는 지금도 병상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서울시의 방역 포스터가 무섭게 강조한 “남의 씌워줄” 산소마스크마저 보장되지 않는 지금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존엄과 평등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아프면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는 것은 특권이 아닙니다. 존엄하고 평등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코로나19가 드러낸 의료공백은 존엄과 평등으로 채워야 합니다.



   코로나19 의료공백 인권실태조사 보고서         코로나19 의료공백 인권실태조사 보고회




글 | 고운 (코로나19 의료공백 인권실태조사단, 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