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기억을 마주하기

신재욱
2020-11-30



기억을 마주한다는 게 과연 무엇일까. 작년부터 용산 전쟁기념관의 한국전쟁 전시 내용을 변화시키기 위한활동을 하고 있다. 용산 전쟁기념관은 일종의 기억공간이다. 전쟁기념관으로 들어가기 전 지나는 회랑에는 전사자의 이름이 가득한 비석들이 늘어서 있다. 한국전쟁 전시실은 매우 호전적이고 애국주의적이긴 하지만, 전투에서 죽거나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과연 전쟁기념관의 한국전쟁 기억에 대해서도 ‘마주하다’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까?


‘마주하다’의 사전적 정의는 ‘서로 똑바로 향하여 대하다’이다. 수지 린필드는 책 『무정한 빛』에서 끔찍한 정치폭력을 담은 사진을 바라보는 행위가 단순히 폭력의 피해를 목격하는 것을 넘어서 그 폭력의 피해자가 어떻게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가를 보는 행위여야 한다고 말한다. 학살 현장을 찍은 사진 앞에 서면 일상과는 동떨어진 잔학한 폭력의 현장이 실제 벌어진(졌)다는 사실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이러한 사건에 대해 어떤 개입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찾아올 때, 거기에서 쉽사리 나의 ‘도덕적 무능’을 회피하려 하지 말고 그 충격을 감내하면서 폭력을 이해하려 시도하는 것. 이러한 태도가 바로 사진을 마주하는 행위일 것이다.


사실 전쟁기념관이 보여주는 한국전쟁 이야기는 꽤 익숙하다. 꼭 매년 6월에 치러지는 6.25전쟁 기념행사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어렸을 때부터 호국보훈(이 말의 정확한 의미는 몰랐을지라도)의 정서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다. 왜 그랬나 생각해볼 필요도 없다. 어떤 기억은 지속적으로 재현될 기회를 얻었고, 어떤 기억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주하다’라는 표현은 익숙지 않은 것을 굳이 고개를 돌려 ‘똑바로’ 바라보는 행위에 대하여, 또한 마주한 대상 앞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않으려는 마음에 대하여 쓰는 것이 더 알맞지 않을까.


연속강좌의 제목 ‘기억을 마주하다’를 설명하려던 게 이야기가 길어졌다. 강좌를 통해 마주하려던 기억은 ‘허락되지 않은 기억’(강좌와 연계해 진행되는 한국전쟁 70년 기억 사진전의 제목)이다. 전시에서 담은 것은 70년 동안 제대로 재현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전쟁피해자의 이야기다. 강좌는 총 4강으로,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1강)과 전시에서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2,3강), 마지막으로 곧 출범할 진실화해위원회의 한국전쟁 과거청산 활동(4강)을 다뤘다.


총 4강의 강좌에서 많은 주제를 다뤘지만, 특히 와 닿았던 것은 구체적인 전쟁 경험에 대한 이야기였다. 파주 지역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그동안 꺼내지 못했던 자료들을 가져오면서, 그 자료를 통해 전시를 만들었다는 이야기. 월남한 피난민, 그야말로 갈 곳이 없었던 피난민들이 동원과 정착의 과정에서 겪었던 이야기. 유족회 내에서도 양민학살과 부역혐의 학살 피해자 간의 위계가 생긴다는 이야기. 권위주의 정권 시기 동안 연좌제로 고통 받았던 유족들이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싶어 진실규명을 신청하지 않았다는 이야기 등등.


우리가 한국전쟁의 기억을 마주한다고 했을 때 결국 마주하게 되는 것은 국가폭력과 국가의 전쟁책임을 넘어선, 전쟁을 겪었던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일 것이다. 특히 진실화해위원회와 유족의 이야기를 담았던 4강 〈허락되지 않은 기억의 연대자들〉에서 전쟁의 기억을 마주한다는 것에 대해 더 고민해볼 수 있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 활동은 개개인이 먼저 피해사실을 규명해달라고 신청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렇게 조사관은 그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진실규명은 피해자들의 증언과 여러 자료들을 통해 이뤄진다. 하지만 진실규명 이후, 피해자들의 삶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물론 몇몇 사람은 진실규명을 기초로 국가에 직접 민사소송을 해 배·보상을 받았다. 하지만 국가는 이들을 민원인 이상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새로 출범할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이 단순히 진실규명으로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억을 마주한다는 것은 단순히 누군가의 기억을 듣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을 이해하고 반응하려는 시도로까지 이어져야 한다. 1기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 과정은 편집된 문서로서 대중에게 공개되긴 했지만, 거기에 관심이 있는 학자나 활동가 등 몇몇 사람들만이 이용했을 뿐이다. 피해자가 자신의 기억을 증언한 대상은 조사관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결국 국가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만약 국가가 제대로 그 기억에 반응했다면, 단순한 배·보상으로 자신의 책무를 끝내지 않고, 현재 심각한 불균형 상태에 있는 전쟁기억의 재현 방식 재정립을 통해 전쟁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각 지역에서의 유해발굴과 기억재단 설립 등의 제대로 된 후속조치를 시행했을 것이다.


4강에서는 국가기관인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에 시민사회가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이현옥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사무국장은 왜 중앙에서의 인권운동이나 평화운동에 전쟁피해자들이 빠져 있는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하면서, 활동가들이 실제 조사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을 권했다. 활동가들이 실제 조사 과정에 참여하면, 진실화해위원회 활동 기간이 끝나더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인권·평화운동의 방식으로 전쟁피해자를 끌어안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뜻에서였다. 실제 조사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에는 현실적인 제약이 있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그 취지만큼은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시민운동의 의제가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처럼, 전쟁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게 될 때에야 과거청산 운동의 현장을 모색하게 되지 않을까.


토론회 장면


현장은 당사자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듣고 기록한 이야기가 다시 흘러가게 하는 것도 현장의 일이다. 사실 전쟁은 전쟁의 범위 안에 있는 모든 시공간을 현장으로 만든다. 전쟁 피해가 단순히 개개인의 민원 소재로만 남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이 전쟁의 기억을 마주하도록, 그 기억을 자신의 이야기로 느끼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이번에 인권재단 사람의 지원을 통해 온라인 영상 송출과 수어통역을 함께 진행하게 되면서 새삼 들었던 생각을 덧붙여 본다. 온라인 공간을 이용하거나 수어통역을 병행하는 것은 단순히 더 많은 사람에게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이야기의 대상에서 배제되는 사람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전자와 후자의 이유가 동일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분명 다른 이야기다. 이와 비슷한 관점에서, 허락되지 않았던 수많은 전쟁피해의 기억들 중에서도 위계가 작동했을 것이다. 가령 전쟁피해의 기억은 대부분 비장애인의 기억이고, 한국전쟁 당시 ‘위안부’의 증언은 거의 전무한 것처럼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우선 질문으로만 남겨둔다.


글 | 신재욱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