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추모의 공간 KISS & CRY

지난 2월 25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2022 성소수자 추모의 공간  KISS & CRY(이하 키스 앤드 크라이)”를 진행하였습니다. 키스 앤드 크라이는 우리 곁을 떠난 성소수자 동료들을 온전히 추모하고 애도하는 한 편, 더불어 주위 동료들의 안부를 물으며 함께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습니다.


키스 앤드 크라이는 추모를 할 수 있는 공간과 전시, 그리고 공연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추모를 할 수 있는 공간에서는 특정인만이 아닌, 각자가 떠올리는 떠나간 이를 그리며 초, 꽃 등으로 추모할 수 있도록 준비하였습니다.

전시 공간은 우리 곁을 먼저 떠난 성소수자 동료들에게 쓰는 편지들, 회원 단체들의 단체 부스, 기록활동가 민수님의 2021년 우리들의 순간들을 담은 사진 전시로 이루어졌습니다.


 


공연은 <1부. 추모와 애도의 시간>과 <2부. 위로와 용기의 시간>으로 나누어 진행하여 추모하고 애도하면서도 서로에게 힘을 주고 힘을 낼 수 있도록 제안하는 시간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 공연은 무지개행동 유튜브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rm4pcnsKiZQ

 


그리고 전시와 공연 관람을 마치고 나가는 이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포토월 그리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담단체들의 리플렛과 기념 굿즈들을 비치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번 행사를 통해 많은 분들이 온전히 추모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를,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 대한 격려와 위로의 시간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이번 행사의 취지를 잘 드러내는, 타리님의 힘을 내는 발언을 공유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멤버인 타리(나영정)입니다. 나누리+가 무지개행동 가입단체인데 유령회원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드릴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저는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가족구성권연구소,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연구모임POP 등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힘을 내는 발언을 하는 역할을 맡았는데요, 죽음과 반대편에 서있는 삶을 상정하고서 힘을 내자고 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실 그것은 불가능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오래전에 부당한 폭압에 맞선 무명용사의 탑 앞에서 큰 숭고함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인권의 역사 뿐만 아니라 역사 자체가 이름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온 것, 결국 이름을 남기지 않고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의 것입니다. 그것을 기억하려고 애쓰는 것이 가진 의미는 인권활동을 하면서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돌아보면 제가 계속 인권활동을 할 수 있게 했던 가장 큰 힘 중에 하나는 ‘죽음 사건’에 대한 것입니다. 사건이 된 죽음들은 평범한 죽음이 아니라 비범한 죽음, 너무 큰 의미를 가진 죽음, 너무 억울한 죽음, 그래서 꼭 잊지 않고 작은 무언가라도 하도록 추동한 죽음입니다. 게다가 성소수자로서 죽음을 경험한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평범하지 않은 기억을 남겨왔습니다. 애도와 추모의 공간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를 계속 가늠하고 시험했습니다. 유언장을 남기자는 가족구성권 운동의 공동체적 노력은 분명히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출발했습니다. 소수자들이 이름을 가지기 위해서 개인적인 차원에서, 운동적인 차원에서 고군분투했던 삶의 역사가 제대로 기록되고 기억되었으면 좋겠다는 열망을 여전히 품고 있습니다. 

2014년 요양병원에서 사회적인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사망한 에이즈 환자 김무명님의 추모제가 저에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은 길거리에서 빈 영정을 전시하고 분노를 쏟아내었습니다. 에이즈환자 건강권 보장과 국립요양병원 마련을 위한 대책위원회에서는 환자들이 인권침해와 죽음에 노출되도록 만든 수동연세병원과 싸우고, 에이즈 환자가 갈 수 있는 요양병원을 마련하라고 요구하면서도, 왜 에이즈 환자가 요양병원에 가야하는지를 물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장애인 탈시설 운동과 만났고 한번 들어가면 퇴원하는 것이 어려운, 그저 삶을 마감하는 장소가 되어버린 요양병원에서 어떻게 퇴원할 수 있는지, 어떻게 우리가 함께 삶의 장소를 마련하고 관계를 만들 수 있을것인지를 고민해왔습니다. 이제는 한국감염인연합회 KNP+가 지역사회에서 서로 돌봄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 일련의 과정을 곁에서 보면서 저는 삶과 죽음에 대해서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것을 배웠던 것 같습니다. 우리의 몸은 연약하고 취약해서 쉽게 상처받고 훼손될 수 있지만 우리가 결국에 함께 해낼 수 있는 것은 요양병원 문을 열고 나와서 함께 사는 것, 시설폐쇄를 위해서 함께 싸우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에이즈 환자가 갈 수 있는 쉼터를 운영하는 수녀님은 쉼터와 인연이 있는 사망한 에이즈 환자들을 위해서 매년 위령 미사를 지내는데, 몇해전에 그 미사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미사중에 놓여져있던 영정 사진을 통해서 제가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얼굴들을 마주했습니다.  살아있을때는 만나지 못했지만 사망한 이후에 우리에게 알려진 이들을 만날 수 있는 그 추모의 공간이 설명할 수 없이 큰 힘을 주었습니다. 오늘 여기에 놓여있는 이 얼굴들도요. 그들이 존재했었다는 것, 그것을 누군가 기억하고 있었고, 조금씩 더 많은 사람들이 관계를 맺으면서 그곳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이 또한 저에게는 사건이 된 죽음들이었습니다. 저는 무명의 죽음, 사망한 이후에 우리에게 당도한 얼굴들을 기억하면서, 지금 누군가의 삶을 은폐하고, 마치 죽은 것처럼 살도록 만들고, 죽어서도 기억되지 못하게 만드는 권력에 저항하면서 힘을 내자고 하고 싶습니다. 

서서히 사라지는, 서서히 죽어가는 우리의 동료들을 미처 발견하지 못할까봐, 알았는데 잊어버릴까봐, 포기할까봐 걱정이 됩니다. 우리가 그린 국경은 아니지만 국경안에서 보호받는 우리들이 미처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국경을 넘다가 다치거나 죽음을 맞이한 이주민의 존재들이 있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문에 양쪽 나라 모두에서 평화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성소수자를 포함한 시민들이 위험해 처해있습니다. 러시아가 감금하고 살해할 목적으로 작성하는 명단에 있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중에는 반체제 인사들과 소수종교, 성소수자도 언급되고 있다고 합니다. 

허가받지 못한 성노동을 한다는 이유로 위험에 처하고, 허가받지 않은 약물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함정수사에 걸리고 감옥에 갇히는 성소수자들의 존재와 목소리는 여전히 우리에게 잘 들리지 않습니다. 건강의 위협을 받고,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데 보호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사회가, 혹은 스스로 생각하는 이들을 어떻게 잘 만날 수 있을까요? 

물론 우리 주변에는 이런 일들을 묵묵하게 하는 동료들이 있습니다. 회의때 약속하지 않아도, 누가 알지 않아도 스스로 돌봄의 책임을 감당하고, 관계의 끈을 지속하기 위해서 고군분투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동료들이 번아웃되고 많은 상처를 받고 힘들어하는 것도 알게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동료들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요? 

기후위기 시대는 이미 왔고, 되돌릴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가져야 하는 감각은 먼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고통을 견디는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성소수자의 이름으로 어떤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가에 대한 우리의 답은 여전히 막연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특정한 법으로 수렴될 수 없는데, 그저 차별이 사라지고 평등이 쟁취된 세상이라고만 표현하기도 막막합니다. 

이럴때 일수록 우리 스스로 삶의 이유와 방식을 결정하고 실행한다는 감각을 더 선명하게 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국가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 사는게 아니다라는 자각, 우리 스스로, 서로를 살아있는 삶으로 인식하자는 의지, 죽은듯 살게하는 권력에 저항하자는 분노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감각이요. 이 감각은 단지 사랑과 우정의 관계를 통해서만 가능할 것입니다. 

무언가 멋지고 엄청난 성과를 내지 못한다고 해도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을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내고, 차별과 폭력을 멈추라고 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차별과 폭력에 대항하면서 그것을 대체하는 것이 성공이 아니라 돌봄이 되는 것을 상상합니다. 그저 반복적인 요구인것 처럼 지겹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차별과 폭력을 없애기 위해서 지금의 질서와 구조에 정면으로 도전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것도 우리는 잘 압니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새로운 동료들을 알아보고 이 질서와 체제를 흔드는 일을 함께 함으로써 비로소 보다 퀴어한 삶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도 우리는 잘 압니다. 이 과정 자체가 우리를 살아있다고 느끼고, 좀더 살만한 삶으로 만드는 과정이라는 것을 감각할 수 있다면 이것이 가장 존중받아야 하는 우리의 삶이 아닐까요. 

이미 여러 연구로 드러난 것처럼 성소수자 특히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 사람들에게 너무나 가까이 와있는 죽음의 문제를 삶의 문제로 가져오기 위해서 노력합시다. 그동안 역사를 만들어왔던 무명의 죽음들, 그리고 도처에 존재해왔고, 우리의 삶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슬픔을 인식하고, 우리의 삶이 이전과 좀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고 싶습니다. 그것은 더글라스 클림프가 [애도와 투쟁]에서 말했던 문란한 섹스의 방법론입니다. 에이즈 위기 시대에서 서로를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 발명할 수 밖에 없었던 가능한 섹스의 방법들. 지금 고립과 외로움의 시대를 통과하기 위해서 더 케어 콜렉티브는 클림프의 방법을 받아 안아서 문란한 돌봄을 하자고 제안합니다. 우리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고, 우리의 관계를 단절시키려고 하고, 우리의 일터를 파괴하려고 하고, 우리를 조롱거리로 던져놓으려고 하고, 우리의 존재를 쓸모없다고 여기는 사회에 대항하는 방법은 저도 여전히 문란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회는 닥치고 소비함으로써 살아있는 감각을 느끼라고만 강요합니다. 퀴어를 배제함으로써 돌아가는 이 질서를 두드리고 문란하게 합시다. 싸우는 존재들 곁에 서고, 힘든 사람들을 돌보는 사람들 곁에 있고,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사과하고, 슬픔을 표현하고 분노를 조직하는 것을 통해서 인간 혹은 동물다워지는 것이 지금 가장 퀴어해지는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행복할수록 눈물이 나고, 슬플수록 남을 존중한다” 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 이야기를 담은 <다시 봄이 올거에요>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오늘은 행복해서 눈물이 나는 날이기도 합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37년만에 복직하고 퇴직하는 날입니다. 동료들의 죽음을 멈추기 위해서 부당한 해고에 대한 저항을 멈추지 않았던 세월이었습니다. 어제 김진숙 지도위원님이 나영님의 축하멘션에 답을 하면서 “퀴어버스가 만들어낸 힘이예요^^” 라고 하였습니다. 퀴어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이런 순간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람과 사회 사이에 사이에 차곡차곡 쌓여서 더 넓은 해방을 감각하고 기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추모가 또다른 벽을 두드리고 담장을 넘는 힘으로 이어질 거라고 믿습니다.




글 | 김용민(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


인권재단 사람의 뉴스레터 '읽는사람'을 구독하고

인권의 관점으로 세상을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