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지역 이주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초동주체 형성

변성권
2017-12-21

프로젝트가 시작되어 우리가 처음 모인 것은 4월이었다. 노동조합의 필요성에 대해 다 같이 공감하며 회의도 하고 이른바 발족식과 같은 분위기로 회식도 했다. 치킨집에서 회식을 하고 나오면서 다음에 무엇을 먹을까? 하는 고민을 하던 중에 한명이 말을 꺼냈다.


“다음 주에 우리 같이 치킨 비리야니 먹으러 갑시다. 내가 살게!”


그는 네팔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던 나에게 자기나라 음식을 소개해주겠다고 나섰다. 이에 나는 기대감에 부풀어 그 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이 한마디가 그의 마지막 말이 되었다. 당시 농협에서 강도사건이 발생했는데, 인근 주민의 증언으로는 범인이 외국인 같이 보였다고 한다. 이 증언을 바탕으로 출입국관리소는 지역일대를 집중단속하였다. 그는 오전 일을 마치고 점심을 먹던 중 체포되었고, 미등록이주노동자였던 그는 그대로 강제추방되었다. (후에 정작 잡힌 범인은 한국인이었다.)  이 사건은 나에게 어마어마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동네 친구처럼 “야, 우리 다음 주에 밥 먹자”하고 헤어졌는데 다시는 볼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비일상의 일상화 속에 생활하는 미등록이주노동자들, 이주노동자들을 범죄자화 하고 있는 한국인들의 내면이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는 우리가 쟁취하고자 하는 것들이 지극히 상식적인 것, 정말로 평범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사장님이 싫어해요”


이러한 체류의 불안정은 고용허가제라는 제도 속에 있는 구성원들에게도 나타났다. 주6일 일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토요일 저녁에 주로 모였는데, 모임시간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전화가 왔다. “오늘 잔업 해야 해요.”, “일요일 랠리(Rally, 집회) 못가요, 사장님이 일하래요.” 그렇게 말을 하면 나는 “그럼 나 하기 싫다! 오늘 일 쉰다 하고 나오면 되지!”하고 다그쳤다. 그러나 이내 말문이 막히고 만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들을 일주일에 채 하루도 쉬지 못한 채 사장의 명령에 따를 수 밖에 없는 일하는 기계로 만들고 있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엔 나에게 이주노동자와 나 사이를 분리시키는 벽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온갖 부조리한 현실에 상처받은 자들의 모임. 상식을 요구하는 사람들. 정작 나는 이들이 겪는 차별과 부조리에 대한 걱정이 없으면서 과연 이들을 진정으로 대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쌓이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만남이 거듭되어 같이 밥도 먹고, 공부도 하고, 집회도 하면서 우리를 변화하게 하였다. 우리는 다르지 않다.



아는 것이 힘, 그런데 알기만 하고 실천을 하지 않으면?


교육은 먼저 ‘당신이 지금 누리는 것이 수많은 선배들이 투쟁해서 쌓아온 결과물이다’라는 생각을 나누기 위해 이주노동자운동의 역사를 시작으로 했다. 강의 내내 한국말에 서툰 동지들을 위해 한마디라도 더 잘 전달하고자 한국말에 더 능숙한 동지들이 통역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언어의 장벽이 우리의 방해물이 될 수 없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더욱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자기나라말로 된 교재, 자기나라말을 하는 가르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다섯 차례의 실내교육이 끝나고 직접 노동조합이 활동하는 곳을 방문하여 몸으로 느끼기도 했다.  특히 자기나라에서 노동조합이나 운동을 경험해본 적 없는 동지들에게서 ‘이들은 무엇을 위해 싸우나?’ ‘무엇이 문제인가?’ ‘결국 그들과 우리는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도록 함으로써 연대의식과 투쟁의식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세계 노동절 대회’에서 인터내셔널가도 부르고,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에서는 장애인 노동자들과 연대해 단 위에 서서 고용허가제 폐지를 외쳤다. 또 이주노동자 집회인 ‘전국이주노동자 결의대회’,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대회‘에서는 ‘Anti-E.P.S, Achieve Labor Rights!’, ‘퇴직금은 어디에서? - 한국에서! 한국에서!’ 구호를 외쳤다. 집회의 마지막 순서인 행진을 알리는 노래는 언제나 ‘Labor is the one!’이었다.

 

공부도 하고 체험활동도 했으면 이제 놀러갈 때도 되었다! 7월 말 뜨거운 태양 아래 포항 바다로 나갔다. 파도를 가르며 바나나 보트도 타고, 모래사장에서 배구도 하고, 저녁에는 ‘치맥’도 먹으면서 여름을 보냈다. 마침 경주이주노동자센터에서도 여름수련회를 보내러 왔었다. 경주지역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하며 다 같이 모여 네팔 노래인 ‘레썸 피리리’ 도 부르고 춤도 췄다.



가을에는 성주 소성리 근처에 있는 원불교 센터에서 1박 2일 수련회도 가졌다. 특히 이 날은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토론과 새로운 구성원과의 친목을 쌓고 그간 공부했던 내용을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날은 성서공단노동조합에서 활동했던 ‘시리’동지도 함께 해서 활동했던 경험을 공유하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투쟁한다.


한창 언론을 달구었던 사드배치 반대 농성장,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지회 농성장도 방문하였다. 먼저 소성리로 들어서는 길에는 경찰버스가 배치되어있고, 농성장 철거 흔적들도 모여 있었다. 산속의 밤은 일찍 찾아왔고 유난히 추웠다. 우리들의 방문이 어르신들의 마음에 따듯한 온기가 전해졌으면 했다. 다음으로 대구 지방검찰청 앞 아사히 농성장에서는 시내라서 그런지 지나가는 분들이 응원하기도 했다. 노조탄압은 서울경기 인천 이주노조 합법화 과정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법원에서 10년동안 시간을 끌면 출입국에서 표적단속해가고, 검찰이 2년동안 시간을 끌면 회사에서 퇴직금 비슷하게 얹어서 유인하는 차이이다. 대한민국의 노동권은 어디에 있는가? 모두 현실로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수련회에서 “이 세상은 사람 사는 세상 아니다”라던 동지가 한 말이 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만들려면 어려워, 그래도 해야지. 될 때까지 해야지!” 그렇다. 우리가 여태껏 공부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선배들이 싸워서 얻어낸 기반 위에서 다시 새로운 투쟁을 하는 것.  이런 마음을 모아 비록 적은 숫자이지만 ‘전태일열사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에도 참석하고, 12월 17일 이주노동자의 날을 기념하기 위한 ‘대구 경북 이주노동자 결의대회’에 참가하여 마음을 다졌다.



글 | 변성권 (경산이주노동자센터 노동상담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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