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온]소수자의 시선으로 보는 일의 세계

유경
2020-12-16


평등정책 보고서 <노동/일의 세계> 열람하기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평등정책TF는 2020년 반차별운동과 노동/일의 세계를 잇는 다리를 지어보고자 했습니다. 소수자의 관점으로 일의 세계를 파헤쳐보고 필요한 변화가 무엇인지 정리하고 제안하는 일은 정책적인 작업인 동시에 정책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보고서 집필을 위한 수차례의 내부워크숍과 그 보고서를 평등정책TF 바깥의 여러 활동가들과 함께 읽는 간담회를 진행하면서 거듭 확인하게 되는 것은 노동현장과 그 곁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이야기하는 방법이 참 다양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다양하게, 하지만 또 함께,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우리는 크게 두 가지 방향에 주목했습니다. 첫 번째는 정책 영역이 종종 부문별로 이해하고 관리하게 되는 소수자운동의 역사를 새롭게 이해하기 위한 노력, 두 번째는 일의 세계에서 차별 받지 않을 권리가 주로 현재 임금노동이 일어나는 현장만을 중심으로 이야기되어온 지금까지의 경향을 조금이나마 극복해보고자 하는 노력이었습니다. 십수명의 활동가가 함께 집필하고 검토한 <평등정책-노동/일의 세계> 보고서의 목차가 여러 번 바뀌고 그 보고서를 함께 읽고 토론한 내용의 스펙트럼이 광활해진 것은 어쩌면 위 두 가지 방향이 가져온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보고서 함께읽기 간담회 모습. 5명의 패널이 앞에 앉아있고, 약 20명의 참여자가 듣고 있다.

간담회에 참여한 약 20명의 참여자의 모습이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거리두기하고 앉아있는 모습이다.△  평등정책보고서 함께읽기 간담회 모습


7월 1일부터 3주 동안 총 3차로 진행된 함께읽기 간담회에서는 다양한 영역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일의 세계에서 지켜져야 할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는 활동가들을 초대하여 이야기를 듣고 나누었습니다. 사실 간담회 기획단계에서, 보고서를 집필하기 위한 작업을 하며 수개월 간 머리를 싸맸던 평등정책TF 활동가들은 '쉽지 않은 주제에 대한 간담회이니, 발제자와 토론자가 너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무거운 토론회보다는 이 보고서를 같이 읽어보며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연속 행사를 기획해보자'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래서 기존에 "간담회"라고만 붙였던 이름도 "함께읽기"로 바꾸어보고 토론문 분량도 상한선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간담회가 다가오자 발제자와 토론자, 청중으로 참여한 활동가들 모두가 참 할 이야기가 많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특히 흔히 정책 영역에서 협소하게 정의하는 일의 세계 뿐만 아니라 그 곁과 바깥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나눌 이야기는 무궁무진했습니다.


△  평등정책보고서 함께읽기 간담회 모습


1차 간담회에서는 소수자의 관점으로 일의 세계에서 모두가 존중받아야 할 권리를 꼽아보는 것이 왜 중요하며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해 토론하기 위해, 보고서의 총론 <모두의 존엄한 노동, 그리고 모든 일하는 사람의 존엄>과 보론 <일의 경계>를 함께 읽었습니다. 2차 간담회에서는 특히 노동현장과 그에 진입하기 위한 과정에서 사회적 소수자가 맞닥뜨리는 차별적인 조건에 무엇이 있으며 이를 바꾸기 위해 어떤 평등정책이 필요할지에 대해 토론하기 위해, 보고서의 1장 <원하는 일을 찾을 권리>와 3장 <일하며 자신을 지킬 권리>를 함께 읽었습니다. 3차 간담회에서는 2장 <임금과 노동시간에 대한 권리>, 4장 <미래를 기대할 권리>, 5장 <동료를 구할 권리>를 함께 읽으며, 점점 더 심화되고 복잡해지는 불안정노동 중심의 일의 세계에서 노동자들이 미래를 기대하고 동료를 얻을 수 있게 하기 위해 노동운동 영역에서 반차별운동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난 뒤 숨고르기를 하다가 올해를 마무리하기 위한 하반기 전체토론회는 질병과 노동에 대한 특별 토론회로 열었습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소수자의 시선으로 일의 세계를 다시 보는 이유를 종합적으로 정리하며 앞선 7월 연속 간담회의 결과를 모아서 제시하는 토론회를 진행했어야 하지만, 2020년을 마무리하는 12월에 일의 세계와 인권을 논하는데 질병과 병력에 대한 차별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은 해고나 계약해지 같은 고용불안정 심화와 휴가 및 병가와 관련된 차별, 사회적 낙인과 직장 내 괴롭힘 등 여러 노동권 문제를 증폭시켰습니다. 이에 평등정책TF는 일터에서의 병력차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이것이 현재 국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차별금지법 논의에 어떻게 반영되어야 하는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긴급하게 바로 당일에 토론회를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전환되어야 했는데, 이는 어쩌면 너무나 상징적인 사건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시국에 불안정성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이 쉽게 나오는 때이지만, 동시에 우리는 다양한 불안정성에 대응하는 방법을 알고 있고 새로 개발하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코로나19가 전무후무한 위기이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운동과 반차별운동의 역사를 살펴봤을 때 이런 방식의 불안정성과 그를 핑계로 한 차별이 우리에게 새롭지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차별적인 정치경제가 어떻게 누군가에게만 더 불안정성을 만들거나 증폭시킬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차별로 인해 다치거나 질병을 얻게 되는 경우도, 질병이 있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경우도 많은 일의 세계에서는 아플 권리도, 회복할 권리도, 건강할 권리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습니다. 이 토론회는 이러한 현실에 대항하는 운동과 정책적 개입이 왜 시급한지 성토하고 촉구하는 자리이자, 병력차별과 노동이 법의 영역에 많은 영향을 받는 동시에 법을 넘어선 인식과 사회구조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  노동X병력차별 온라인 토론회 모습


평등정책TF의 <노동/일의 세계> 사업은 반차별 운동의 과제와 전망을 위한 '찾아가는 간담회'를 여는 것을 골자로 한 계획이었습니다. 최대한 다양한 현장의 활동가들을 찾아가는 간담회를 열고자 했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다시 돌아보면 많은 분들이 이 문제의식에 '찾아와준' 자리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풍부하게 채워주신 패널들은 물론이고 함께 공부하고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며 참석하신 분들도 귀중한 생각을 많이 나눠주셨습니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인권운동이 더욱 어려워지고 일에 세계에서 권리를 찾고 자신과 동료를 지키며 살기 위한 운동이 더욱 어려워지는 요즘, 여러 개별 의제들이 모두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역설적으로 더 강하게 느끼게 됩니다. 차별이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어떻게 여러 운동의 끈끈한 연결로 이에 대항할 것인지는 2020년 사업이 마무리된 이후에도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실행할 부분입니다. 그런 점에서 다리를 짓는 일은 많은 현장에서 앞으로도 쭉 계속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운동이 어떻게 다리를 지어왔는지, 지금 어떤 다리가 필요한지, 앞으로 어떻게 그 다리를 지으면 좋을지를 고민하는 작업을 든든하게 지지해준 인권재단 사람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글 |유경 (평등정책TF,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