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코
2020-11-30


국가보안법은 1948년 일제 시대의 치안유지법을 베껴 만들어졌습니다. 이 법은 군사독재 정권에 의해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는 도구로 이용되어 왔습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사상, 신념, 양심을 가지고 이것을 표현했다는 이유만으로 구속과 수배를 당하는 고초를 치뤄왔는데요. 2020년은 국가보안법이 제정된지 72년이 되는 해로, 여전히 폐지되지 않은 채 우리 사회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 법을 통해 누군가의 신념이 죄로 관리된다는 것은 사실상 우리 모두의 죄를 의미합니다. 생각과 양심을 재단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우리 사회의 인권과 민주주의는 언제든 훼손될 수 있으며, 과거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악용의 위험성 역시 존재합니다.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전시회 첫 기자회견 모습

△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전시회 첫 기자회견


위와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보내기 위한 첫 번째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다양한 영역의 활동가, 연구자, 변호사, 예술가 등이 모였습니다. 인권재단의 인권프로젝트 온을 통해 ‘국가보안법’이라는 의제가 낯선 젊은 세대와 시민들과의 접점을 만들고 기록을 남길 수 있도록 ‘전시회’를 기획해 진행했습니다. 전시회는 국가보안법의 연대기를 정리하고 그 동안 국가보안법의 피해 당사자로 온전하게 기록되지 못했던 여성 서사에 주목했습니다. 그렇게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이라는 주제로 전시회가 기획되었고, 과거 대공분실로 사용되었던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전시회를 꾸렸습니다. 


기획단은 먼저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전시회를 꾸리기 위해 추진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제정 70년을 넘긴 국가보안법을 이제는 역사 속으로 보내기 위해 다양한 영역의 단체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였습니다. 


나의 말이 세계를 터뜨릴 것이다 전시안내판의 모습


당초 전시회는 5월 오픈하는 일정으로 기획되었으나, 갑작스러운 코로나19 확산과 대응 단계의 격상으로 인해 전시공간인 민주인권기념관이 잠정 휴관하면서 전시회는 8월로 연기되었습니다. 그 사이 많은 고민 끝에 다양한 관람객을 만날 수 있도록 온라인 전시관과 VR 전시관을 열었습니다. 


온라인 전시관 입장하기

VR전시관 입장하기


전시회에 앞서 2019년 국가보안법 피해 여성들의 구술을 채록하는 작업이 먼저 진행되었는데요. 인권 기록 활동가들의 채록 작업을 통해 국가보안법이라는 일대의 사건이 한 인간의 존엄과 일상, 관계를 어떻게 파괴했는지 전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기록될 수 있었습니다. 여성에게 국가보안법의 피해는 역사도, 경력도 되지 못했고, 도리어 여성이기에 겪은 위험과 공포, 하지만 그럼에도 싸워온 여성들의 역사는 사회 각계각층 인사들의 목소리를 통해 <나의 말이 세계를 터뜨릴 것이다_여성 서사로 보는 국가보안법>이 전시되어 있는 전시관 5층에 모였습니다. 


 ‘국보법이 폐지되면 그 자리에서 춤을 출거야’ 정순녀 구술자

△ ‘국보법이 폐지되면 그 자리에서 춤을 출거야’ 정순녀 구술자


전시관 4층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기증한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 자료를 바탕으로 기획되었습니다. 


2부 국가보안법 연대기 안내판


200여개가 넘는 기증 사건 자료 중 총 9개의 국가보안법 사건을 분석, 정리한 내용을 통해 72년의 국가보안법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습니다.


△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 자료들


민주인권기념관 중앙 정원과 1층에는 각각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을 상징하는 12개의 문과 ‘국가보안법에 감금된 세계’를 의미하는 검은 방이 설치되었습니다. 12개의 문에 새겨진 국가, 민주주의, 자유, 평화, 정의와 법에 대한 질문과 끊임없이 국가보안법 법조항이 읊어지는 1층의 검은 방은 사상과 사람의 삶을 감금하는 국가보안법이 현재와 미래를 위한 질문과 반성으로 이어집니다.


중앙 정원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 12개의 문

△ 중앙 정원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 12개의 문


코로나19 확산세가 줄어들고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하됨에 따라 너무나 다행히 전시 종료 전 보름을 앞두고 오프라인 전시를 열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것을 예측하기 계획하기 어렵고, 각종 변수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지만, 무사히 전시 공간에서 관람객을 맞이할 수 있어서 감사한 순간이었습니다.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_여성 서사로 본 국가보안법> 전시회는 국가보안법에 맞서온 사회 운동에서 여성은 어떤 위치와 조건에 놓여 있었는지를 성찰하고 ‘지금-여기’의 여성들을 연결하는 자리를 열었습니다. 국가보안법의 폐해를 경험한 여성들의 목소리와 사유를 통해 길어 올려진 언어들이 피해 당사자 뿐 아니라 현재 우리의 존엄과 자존을 성찰하고 회복하는 기록으로 남겨지길 바랍니다. 그 기록의 자리에 든든한 후원과 지지로 함께해준 인권재단과 전시회를 무사히 열 수 있도록 기다려주신 추진위원회 분들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끝으로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_여성 서사로 본 국가보안법> 전시의 예술 감독을 맡은 권은비 작가님의 기획의 말을 전하며, 전시는 끝났지만 여전히 우리 삶의 현실에 남겨져 있는 ‘국가보안법’이라는 총체적인 국가폭력의 서사에 대한 고민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전시는 결국 ‘나의 말이 세계를 터뜨릴 것이다’라는 선언으로 귀결됩니다. 침묵을 강요하는 세계, 부당한 국가권력에 의해 생각의 자유가 감금되는 세계를 뚫고, 우리에게 전해지는 용기 있는 말들 속의 한 글자 한 글자를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전시는 국가보안법으로 감금된 세계를 터뜨릴 ‘말’들을 모아 관객들이 읽고, 보고, 듣고, 쓰고, 사유하고, 해석하도록 구성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서로에게 하찮은 타인일 뿐인 우리이지만, 아주 작은 예술적 상상력으로 타인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해봤으면 합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이 세계가 변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글 | 보코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실무담당) 





#국가보안법 #국가폭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