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온]인권기록활동 경험에서 건져올린 물음표와 느낌표를 나누다

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소리’
2017-12-21

인권현장에서 구술기록의 중요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구술기록’이라는 구체적 형태를 띠지 않았더라도 인권활동가들은 인권침해현장에서 ‘당사자의 목소리’에 주목해왔다. 사회적으로 존재가 지워진 이들의 말할 권리를 되찾아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최근 수년간 인권현장에서는 증언모음을 넘어 다양한 구술기록들이 시도되었고 이는 국가와 사회가 야기한 차별과 폭력의 실상을 밝히거나, 사회적으로 배제되어왔던 이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 구술기록들은 구호와 사건 너머 감춰진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고 주류 담론이 왜곡한 진실을 다시 구성하면서 사건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우리 사회에 던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인권기록활동’이라는 말은 우리사회에 아직 낯설다. 인권현장과 당사자 중심의 기록활동 속에서 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소리’가 가진 문제의식을 통해 만들어진 말이며 우리는 이 말의 내용이 보다 섬세하게 채워지고 사회적으로 공유될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인권기록활동의 현재를 살펴보면 <여기 사람이 있다> <밀양을 살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처럼 용산 참사나, 비정규직 싸움, 탈시설, 세월호 참사 등 특정 사안 관련해 인권활동가와 기록자들이 모여 구술기록집이나 르포집을 낸 예들이 많다. 그러나 그 성과들이 연속되어 쌓이지 못하고 개별 프로젝트가 끝나면 구성원들의 해산과 함께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물론 기록자 개인의 경험은 깊어지고 문제의식도 성장했겠지만, 그것이 협업을 통해 발전되고 공유될 수 있을 때 더 풍성해지리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근거해 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는 2014년 6월 형제복지원 생존자 구술기록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결성되었다. 


‘소리’가 결성된 까닭은 무엇보다 우선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삶, 폭력과 인권침해에 노출된 이들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기획성 있게 기록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개별 프로젝트가 끝나면 구성원이 해산되는 반복을 피하고 활동가들이 좀 더 안정적인 환경에서 구술기록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도 큰 몫을 차지했다. 안정적 재정과 환경 마련의 과제는 조직 결성 후에도 아직도 요원한 것이지만, 다른 한편 활동가들이 제각각 흩어짐으로써 활동가들이 그 동안 일구어온 구술기록의 성과를 공유하고, 그 과정에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을 나누며 함께 성장하는 것마저 사그라드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공동으로 기획하고 인터뷰의 질문을 뽑고, 구술자를 선정하고 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어려움을 나누고 공유하고 함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기록활동의 ‘각자도생’에서 벗어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그리고 활동 4년차를 맞으며 ‘소리’는 지난시간 동안 축적된 경험을 앞으로 인권기록활동을 하고자 하는 이들과 나누기 위해 <인권기록활동을 위한 안내서>(이하 <안내서>로 칭함)를 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소리’의 바램을 담은 <안내서>에 수록된 서문
인권의 사각지대를 비추고 말할 권리를 박탈당한 사회적 소수자의 삶이 ‘들리는 소리’가 되도록 긴 호흡으로 기록활동을 하고픈 이들이 2014년 10월 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의 이름으로 모였습니다.
슬픔과 아픔을 품었으나 인간됨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는 세상의 한 조각이 아니라, 세상을 담은 전체입니다. 글이 된 목소리는 우리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게 하며사유하고 행동하게 합니다.
우리는 기록활동을 시작하는 당신과 우리의 경험을 나누며 함께 성장하고 싶습니다. 기록자의 빛깔이 다채로울수록 꺼내질 이야기도 풍성해질테니까요. 그만큼 우리는 더 다른 세상을 보게 될 겁니다. 이 안내서는 당신에게 우리가 드리는 작은 초대장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기록을 기다립니다.


이에 ‘소리’는 <인권프로젝트-온>에 사업을 공모하고 지원을 받아 2017년 4월부터 9개월 동안 사업을 진행하였고 그간의 결과를 바탕으로 12월 5일에 <안내서> 원고의 초안을 마련하고 감수와 편집의 절차를 거치고 있다. 이 사업에는 인권기록활동가 다수의 경험을 나누는 세미나 자리와 구술기록을 기획한 단체 활동가 및 연구자와의 간담회 등이 있어서 서로의 축척된 경험을 나누는 자리를 통해 목차를 완성하고 세부적인 내용들을 채워갔다. 많은 이들이 기록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에 알려나갈 필요하다고 보았기에 이 <안내서>에는 인권기록활동의 과정을 상세히 소개하는 경험나눔의 자리를 너머 인권기록활동의 의미를 정리해보고자 하였다. 이 글에서는 기록활동의 의미를 중심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대부분의 인권기록활동이 공동작업인 것처럼 이 안내서 작업도 기록활동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공통의 지혜를 모으는 작업이었다. 그렇기에 <안내서>의 내용을 채우는 과정에서 협업이 어떤 식으로 펼쳐쳤는지도 정리해보고자 한다.  



왜 ‘인권기록활동’인가?


인권운동에서 기록활동이란 의미는 오랫동안 익숙해진 말이다. 역사는 늘 힘있는 자들이 점유하고 가기에 소수자, 약자의 목소리는 가리워지고 존재했던 흔적마저 지워져왔다. 엄혹한 반민주, 반인권의 시대에는 부당한 권력과 싸우기에 바빠서 기록을 남길 새도 없이 투쟁으로 점철되었으나, 역사의 기록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점차 확대되면서 인권운동에서도 인권침해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책으로 전하는 활동이 활발해졌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인권’의 의미는 피해자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사실만 있을 뿐 ‘기록’의 형식만으로 담겨진 글들도 많았다. 그렇다면 ‘인권’과 ‘기록’이 만난다는 것의 의미는 뭘까? 갸우뚱해지는 대목이다. 인권침해당사자 혹은 인권침해가 일어난 현장을 기록한다고 해서 모두 ‘인권기록’인 것은 아니다. ‘인권기록’은 인권의 관점으로 기록에 접근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존엄성이 훼손당한 인간의 몸과 마음을 드러내고, 차별과 폭력의 현장을 폭로하는 역할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인권기록’이라 하기엔 너무 작은 조각일 뿐이다.  


‘인권기록’은 인간사회에 폭력과 차별을 낳는 마음과 구조를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좀 더 나은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사유하고 행동할 힘을 주는 작업까지를 포괄한다. 공존할 수밖에 없는 인간조건에서 서로를 보이고 들리는 존재로 환대할 수 있는 성찰의 역량을 증대하는 것을 포함한다. 따라서 ‘인권기록’ 뒤에 ‘소리’가 ‘활동’이라 이름붙인 것은 바로 ‘인권기록’ 뒤에는 반드시 ‘활동’이 오기 때문이었다. ‘인권기록활동’이란 말은 소리의 활동 경험에서 건져올렸지만, 다양한 작업에 참여한 인권기록활동가들과의 글이나 토론 속에서도 ‘활동’의 의미가 더욱 강조되었다. 그렇다면 ‘활동’의 의미는 무엇일까?


“피해생존자들이 말하고 그것을 기록했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것을 읽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진행형인 416 세월호 참사와 같은 성격의 기록은 사람들이 기록한 것을 읽게 하고 듣게 하고 말하게 하고 이 사건과 자신의 삶을 잇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까지 이어져야 한다. 지금 우리는 책 속에서 나와 사람들과 만나는 과정, 기억을 공유하는 과정을 만들고 있다. 그럴 때 아픈 기억을 불러와 말을 시작한 피해생존자와 그 말을 듣고 기록한 사람 각각이 말하고 기록한 것의 사회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기록 그 자체가 집합적 기억, 사회적 기억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기에 기록과정은 여기까지를 포함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기록단의 일은 자연스럽게 기록에서 기록 활동으로 이어졌다. ‘어떤’ 기록은 기록 그 자체만큼이나 살아있는 기록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전후 과정과 활동이 필요하다.” -호연, “시간 속에 담긴 진실과 살아있는 기록을 향한 발걸음” 중에서


각자의 기록활동 참여의 동기와 활동들을 모아보니 인권기록 참여 자체가 바로 ‘인권활동’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활동’인 이유는 기록물이 나온 이후에 그것을 ‘널리 읽히도록 하는 활동’, ‘함께 읽도록 하는 활동’이 최근 더욱 강조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과거의 인권기록들이 ‘기록’으로 남기는데 주목했다면 위에 인용된 글에서처럼 2014년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시발점으로 해서 기록을 나누고 사회적 기억으로 만드는 활동이 기록작업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매뉴얼 작업을 통해 ‘인권’+‘기록’+‘활동’의 의미를 낱개에서 일련의 연결된 것으로 정리해 낼 수 있었다.


 

세미나 + 간담회는 어떻게 ‘인권기록활동 안내서’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나 


왜 하필 이 사안을 기록하는가, 기록의 목적은 무엇인가, 누구를 만나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 인터뷰를 할 때 어떻게 질문하고 들을 것인가. 어떤 형태의 글로 기록을 담을 것인가, 출판을 한다면 누구와 어떻게 할 것인가, 기록 이후에 어떤 활동을 펼칠 것인가. 인권기록의 바다에는 무수한 질문들이 쏟아진다.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려면 어떤 목차를 가지고 <안내서>를 구성해야 할까? 


우선 <안내서>제작에 앞서 목차를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하며 ‘소리’는 그동안 소속된 활동가들이 참여했던 기록작업물을 분석하거나, 기존에 ‘소리’가 진행한 ‘구술기록입문 공개강좌’ 및 워크숍 등의 내용을 정리하고 검토하면서 기록활동에 참여하려는 활동가들이 가장 고민하게 되는 점들을 뽑아보고, 이를 기초조사를 진행할 인터뷰의 질문으로 뽑아보았다. ► 이 주제를 지금 주목하게 된 (개인적/운동 혹은 조직적/정치사회적)이유 ► 구술자를 어떻게 선정하고 발굴했는지 ► 공동작업이라면 어떤 방식으로 기획을 도모하고 구술자와 기록자를 매칭했는지 ► 인터뷰를 하는 나만의 노하우는 무엇인지 ►전체 작업 중 어떤 것이 어려움이 컸는지 ►인터뷰를 통해 발견한 새로운 사실들은 무엇이고 이것을 어떤식으로 글에 다루었는지 ►구술자와는 작업 이후 어떤 관계를 맺는지 ►기록 이후의 활동은 무엇이었는지. 이렇게 뽑고 세부적 질문을 각 항마다 덧붙여 인권기록활동가들의 경험을 정리하였다. 하지만 인터뷰는 <안내서>제작을 위한 사전 조사 같은 것이어서 이를 통해 목차를 정리하는데 도움도 되었지만, 이 작업을 위해 무엇이 더 필요한지 빈 부분을 알려주는 기회로서 더욱 큰 기여를 했다. 이어진 9차례에 걸친 세미나들은 기록활동을 위해 물음표로 남은 경험들을 나누고 쟁점을 잡아 토론해 볼 수 있어서 이를 통해 <안내서>에 어느 정도 정리된 내용을 모아낼 수 있었고, 동시에 꼭 나누어주고 싶은 느낌표의 경험들도 모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부족한 내용은 집필과정에서 두 차례의 간담회를 통해서 또다시 보완하는 작업을 거쳐 안내서에 포함시켰다.  


▲ <인권기록활동안내서>를 위한 세미나


 ▲ <인권기록활동안내서> 간담회


무엇보다 인권기록활동의 경우 공동작업으로 많이 진행되는데, 이들 다양한 기록활동가들과의 세미나를 통해서 공동작업을 이루어가는 과정과 원칙, 그리고 이것을 통한 이후 활동의 힘이 어떻게 가능한지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다.  인권기록에선 개성이 다른 여러 기록자가 쓴 여러 개의 글을 모아 한권을 책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를 전할 때가 많다, 그렇다보니 공통의 문제의식을 벼리고 글에 대한 감각을 맞춰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 과정이 어렵기에 어떤 책들은 각자의 스타일로 인터뷰한 것을 묶어내는 것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도 원자료가 의미있는 것이기에 기록으로서 중요하지만 결국 목소리를 들을 사람들, 즉 책으로 이야기를 만날 사람들을 위해서는 구술내용이 가독성있는 글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글을 다듬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세미나에 왔던 이호연, 박현진, 홍은전, 정주연 활동가들은 대체로 ‘인권활동’으로서 공동의 기록작업을 기획하고 참여하게 된 배경을 바탕으로 글쓰기는 결국 기획과 인터뷰부터 충분히 공통의 논의를 통해 이루어져 갈 때 가능하다는 의견들을 주었다. 기획과 구술자 매칭 및 인터뷰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협의되지 않으면 나중에 나온 인터뷰 내용으로 글을 조율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초반부터 원칙을 세워 함께 진행하고, 때론 서로의 관점을 맞추어가기 위한 세미나 등도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야 글쓰기에 대해서도 서로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글에 대한 지적을 개인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도 각자에게 요구된다는 강조했다. 타인의 글에 대해 보완점을 지적하는 것은 능력의 차이라기보다 위치의 차이로 인해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조금 떨어져서 볼 때 더 잘 보이는 것들이 있으므로. 기록자 수가 많은 경우 기획과 진행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그 안에서도 보다 집중해서 일을 맡을 팀을 꾸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늘 좋은 방법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발제자들은 의견을 내놓았다. 효율성을 추구하다 보면 놓치는 것이 생기기도 하기 때문이란다. 일테면  몇 사람에게 일이 몰리는 문제도 생겼다고 한다. <다시 봄이 올 거예요> 같은 작업은 준비는 길었지만 인터뷰와 책 제작의 시간이 짧았기에 편집팀을 한 사람들이 거의 혹사의 수준으로 일을 감내해야 했다고도 한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공동작업의 원칙 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안내서>에 담을 수 있었다. 만일 ‘소리’활동가만의 경험으로 이 안내서가 제작되었다면 다 품기 어려운 문제의식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사업을 마무리하며


긴 시간 동안의 세미나를 통해 인권기록활동가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정리하여 이번 <인권기록활동안내서>에 담으려고 했으나, 방대한 논의에 비하면 각 사례별 특징이 너무 다양하고 다른 배경에서 출발하여 충분한 분석을 통해 담아내기엔 어려웠다. 또한 여전히 ‘인권기록’에 대한 상이 각기 다르고 무엇이 인권기록이라고 딱 정의할 수 없다보니 우리가 분석한 책이나 만나서 이야기를 청한 활동가의 경험도 ‘소리’주변의 인권기록활동가로 한정되는 점이 내용면에서 다양한 사례를 담기 어려운 한계를 남겼다. 그럼에도 한 해가 지나 우리 속에 들어온 한 권의 <안내서>를 보니 마음속에 뿌듯함이 차오른다. 인권재단 사람의 <인권프로젝트 온>이 있어 어려운 작업을 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앞으로도 인권기록활동에 계속 관심 가져주시길 부탁드린다.


글 | 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