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힝야 집단학살의 기록

김기남
2018-12-14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누군가의 죽음과 고통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연대의 동물이니까.  가해자가 중화기로 무장한 군대라면 그것은 국가폭력이 된다.  우리의 분노에 충분한 근거가 생긴다.  어느 누구도 그 이유를 막론하고 사람을 죽일 권한은 없으므로.  90년대에 내가 기억하는 80년 5월의 광주가 그랬다.  ‘아무리 권력을 좋다고 한들 사람을 죽여서야....’  나아가 국가폭력의 희생자, 즉 피해자 가족이라면 이건 감정이입이 되는 아주 ‘개인적인 일’이 된다.  로힝야 집단학살 피해자가 내게는 그런 존재인가 보다.  


로힝야를 처음 접한 건 ‘불교도 테러리스트’ 위라두의 존재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다양한’ 미얀마.  인종도, 언어도, 문화도 다양한 그 자체가 신기했던, 그리고 평화를 위한 비폭력 민주화 운동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NLD와 아웅산 수치가 있는 내가 사랑한 나라.  그런 곳에 위라두의 존재는 충격이었다.  불교 승려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혐오와 차별의 언어.  불교 성직자의 사회적 지위가 절대적인 그 곳에서 그의 언어는 그야말로 폭력을 선동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치밀었던 분노는 이내 내 마음의 작은 동요로 그치고 말았다.  마치 방어기제가 완벽하게 작동한 듯이 그러나 호기심과 마음의 빚을 ‘너무’ 깊숙이 간직한 채로.



아디에서 상근하면서 내가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이 인권기록이었다.  누군가의 아픔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다.  과거를 되돌아보는 작업은 고통이 뒤따른다.  고통스런 경험을 다시 증언하는 것으로도 2차 피해가 발생한다.  이들 증언을 기록하는 활동가들도 트라우마를 입는다.  그러나 아픈 과거를 기록하지 않는다면 피해자들에게 정의로운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누군가는 진실을 덮고 왜곡하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건 기억만이 아니다.  학살의 증거도 사라진다.  진실규명은 그만큼 더 어려워지고 피해자들의 고통은 치유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국가폭력 또는 인권유린 피해자들에게 인권기록은 미래를 살아내기 위한 과정이다. 


로힝야 박해를 종식하겠다고 선언하며 집에서 쓰는 칼과 새총 등으로 ‘무장’한 로힝야 일부가 ‘조직화되고 준비’된 경찰초소 공격(1차 2016년 10월, 2차 2017년 8월)을 감행한 것을 미얀마 군부와 정부는 테러리스트 공격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수행한다.  군대와 경찰력은 마을을 에워싸고 집집마다 수색했다.  로힝야가 사는 마을에 기관총으로 무차별 난사를 하고 근거리에서 총을 발사해 로힝야 민간인들을 살해했다.  잡히는 대로 구타하고 칼로 찔러 죽였다.  살아있는 채로 집에 가두어 불태웠고, 어린아이들은 땅에 내려찍거나 불구덩이에 던져 살해하거나 총을 쏴 살해하기도 했다.  군인들은 여성들을 끌고 가서 또는 집에서 집단 강간했다. 그리고 칼로 또는 총을 쏴 죽인 후 불태웠다.  로힝야들의 재산을 훔쳐가고 모든 집들을 불태워 없앴다.  군인들은 매질을 하며 ”너희는 이 나라 국민이 아니다. 방글라데시로 떠나라.”라고 했다.  미얀마 군총사령관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완수하지 못한 일’이라고 표현했다.


2016년과 2017년의 토벌작전으로 로힝야 80만명이 국경을 넘었다.  방글라데시에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 캠프가 생겼다.  역사상 단기간에 가장 많은 난민이 발생했다.  내가 만난 피해자 하나는 이번이 세 번째 피난행이다.  1979년과 1991년에도 방글라데시로 피난왔다가 미얀마로 되돌아 갔단다.  사실 로힝야 박해의 역사는 길다.  미얀마가 해방 후 로힝야는 미얀마의 시민이었다.  시민권도 향유했다.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다.  로힝야 언어로 된 방송이 전국에서 방영됐다.  미얀마 법원은 어느 판결문에서 로힝야는 미얀마의 소수민족이라고 확인했다.  미얀마의 어느 군사령관도 미얀마에 사는 로힝야는 미얀마 사람이라는 유명한 연설을 남겼다.  그러나 62년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자들은 로힝야를 국가의 적으로 간주했다.  82년에는 시민권이 박탈됐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국적자로 전락했다.  2012년 이후에는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박해가 제도화됐다.  이웃마을을 가려도 해도 수수료를 내고 군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이동의 자유가 심각하게 제약됐다.  정부는 로힝야에게 결혼도 비용을 내고 허가받기를 강제했고 자녀도 둘 내지 셋 이상을 낳지 않겠다는 서약을 강요했다.  정부는 이들의 종교의 자유도 심각하게 제약했다.  로힝야는 강제노동에 동원되고 아파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  로힝야가 이러한 일상적 제약을 어길 때에는 군인들은 구타하고 엄청난 벌금을 부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저항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상식적으로 보일 정도다.  혹자는 이때도 이미 서서히 진행된(slow burning) 집단학살이 발생했다고 표현했다.



난민캠프에서 로힝야 피해자를 만나는 일은 쉬운 과정이 아니다.  아주 뜨겁거나 비가 오거나, 예외없이 몰려온 이웃텐트의 사람들로 인해 인터뷰 중단되는 것은 일상적이다.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이들에게 ‘그 사건’을 묻는 일이다.  우리는 기록을 하기 위해 물어야 한다.  묻기 위해서는 들어야 한다.  그런데 듣고는 묻기를 머뭇거리기 일수다.  어린아이를 잃은 엄마에게 군인이 아이를 어떻게 살해했는지 자세히 묻는 것은 잔인하다.  눈치를 살피고 어렵게 말을 건네기도 하지만 못할 때도 많다.  나중에 다시 용기를 내 묻는다.  이내 담담한 피해자의 답변에 놀란다.  강인한가 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내 이들은 최선을 다해 겨우 나와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잠은 잘 자나요?” “당신이라면 잘 자겠어요? 밤에 눈을 감으면 총소리가 들려요. 내 아이의 모습이 떠오르고요. 내 가족이 그립습니다. 여기에는 친구도 없어요. 밖으로 나갈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친구를 사귈 수도 없습니다. 어떨 것 같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에게 아픔을 들려주는 이유는 한결같다.  “저는 정의를 원합니다.”  


정의를 원하는 로힝야 피해자들에게 지금의 정치 상황은 그리 녹녹치 않다. 미얀마 정부와 군부는 학살을 전면 부인해 왔다.  당사자와 유엔 및 인권단체는 반인도적 범죄와 집단학살이 발생했고 공정한 조사와 처벌 그리고 로힝야의 안전하고, 존엄한 그리고 자발적인 송환에 노력해야 한다고 압박하지만 정작 이들은 끄덕도 않는다.  무엇보다 이 이슈에 있어서 미얀마 국민은 정부를 절대적으로 지지한다.  내부에서의 변화의 흐름을 기대하기 어렵다.  유일한 대안으로 여겨지는 유엔 안보리의 국제형사재판소로의 회부도 그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중국과 러시아도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로힝야 피해자들은 긴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가깝게는 일본군성노예 피해자들이 그랬듯.  캄보디아 킬링필드와 스라랑카 내전의 피해자들이 그러하듯.  그래서 핵심은 학살을 증명하는 증거를 기록하고 보전하는 것이다.  인간의 기억은 왜곡되기도 하고 우리 몸의 상처는 없어지기 마련이다.  보유한 휴대전화의 영상과 사진은 유실되고 병원기록도 없어지기 일쑤다.  제대로 된 기록과 보전이 시급하다.  아디는 인권재단 사람, 광주인권평화재단, 한우기금의 지원을 받아 인권기록을 시작했다.  올해는 대량학살이 발생한 10개 마을에 집중했고 320여건의 인터뷰 녹취와 녹취록, 그리고 관련 영상과 사진 등의 증거를 수집했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달하기 위한 작업과 보고서 작업도 진행했다.  시작에 불과하다.  또 많이 부족하다. 



아디는 그러한 기록과 보전을 로힝야가 주도할 수 있기를 꿈꾼다.  그래서 기록활동가들은 모두 로힝야 사람들이다.  동족과 같은 아픔을 간직한 이들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기록한다.  이들은 피해자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라고 말해 준다.  로힝야 기록활동가들이 스스로 인권기록하고 인권보고서를 발간하여 유엔과 국제사회에 연대활동을 조직하는 것을 꿈꾼다.  아직은 갈길이 멀지만 한걸음 한걸음 걷다보면 가능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가해자들에 대한 형사재판이 열리는 그날, 그래서 진실규명을 위한 자리에서 로힝야 피해자들과 기록활동가들의 노력이 아픈 과거를 딛고 평화로운 미래를 열어내는 새로운 장을 열어내기를 바란다.  


글 | 김기남 (아디-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국가폭력 #증언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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