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병역거부자의 날 자전거 행진 참가기

박상욱
2016-06-21

 5월 15일. 스승의 날로 지정된 공휴일이지만, 누군가한테는 스승의 날보다 세계병역거부자의 날로 기억되기도 한다. 14일 날 함께 자전거 행진을 한 사람들이 그랬다. 그리고 올해 처음 나에게도 15일은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이 되었다. 전쟁없는세상에서 주최한 행진의 참여자는 다양했다. 나 같은 개인 참여자부터 국제엠네스티, 기지촌 여성 보호상담소, 녹색당, 국제 선교사 단체 등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이날 모인 장소가 헌법재판소 정문 앞인 것은 이유가 있다. 2004년과 2011년에 이어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도록 한 병역법 88조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 판결이 곧 내려지기 때문이다. 앞서 두 차례는 병역법 88조가 합헌으로 인정됐지만, 최근 들어 병역거부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변화하면서 이전과 다른 결정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자전거 행진 출발 전 헌법재판소 앞 기자회견> 


 우리는 자전거 출발에 앞서 병역거부가 새겨진 노란색 티를 입고 퍼포먼스를 했다. 광장보다 밀실이 익숙한 나에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퍼포먼스를 하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전에도 주위 친구들에 이끌려 집회에 참여한 적은 여럿 있었다. 하지만 문제의식 없이 누군가에게 이끌려 참여한 집회에선 소외감이 들고는 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구호와 함성이 가슴에 닿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나는 타인의 문제에 공감하기 힘들었고, 즉각적으로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일에는 무관심했다. 이번 참여에 다른 점이 있다면, 누구의 강요와 권유에 의해서가 아닌 스스로 참여했다는 데 있었다. 


 지난 4월. 5월 2일 날 입영하라는 영장이 갑작스레 날아왔다. 막연히 병역거부를 고민한지 1년이 넘었으나,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압박을 견뎌내기 힘들었다. 아직 정리하지 못한 일이 너무 많았고, 절차에 대해 제대로 파악한 것이 없었다. 무엇보다 막연함을 벗어나, 병역을 거부하려는 이유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급히 연기를 하고 전쟁없는세상을 찾게 됐다. 첫 모임에서 같은 고민을 ‘다른 이유’에서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군대를 제대했지만 심경의 변화로 예비군 거부를 실천하고 있거나, 이중 국적을 갖고 있지만 국적포기 시기를 놓쳐 병역을 고민하거나……. ‘병역거부’라는 목적에 있어서 같지만, 개인마다 하나로 묶을 수 없는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을 만나면서 추상적이기만 했던 병역거부의 다양한 층위를 느낄 수 있었다. 병역거부의 문제는,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유지하는 것에서부터 소수자 차별을 포함해 많은 문제들과 연관되어 있었다. 처음으로 삶과 맞닿은 고민에서 연대를 만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개별적으로 보면 고립된 섬처럼 보였던 문제들이 실은 아주 내밀한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40여명의 참가자들이 서울 시내 한복판을 자전거로 행진했다>


 국회의사당을 향한 사람들의 자전거 행진은 새의 날갯짓 같았다. 나처럼 바닥에 내려앉아 미동하지 않던 깃털, 그리고 각자 하늘을 떠다니던 수많은 깃털들이 모여 이룬 날개였다. 이 날개는 바위 같은 헌법재판소의 철문과 다르다. 도심의 신호등이 바뀌어 대열이 흐트러질 때마다, 페달의 호흡을 늦추고 함께 갔다. 뜨거운 햇볕과 복잡한 교통 때문에 지속적인 대화를 나누기 힘들었지만, 이미 몸과 마음으로 많은 말을 나누고 있었다. 우리의 행진을 지켜본 시민들도 날갯짓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불편함에 얼굴을 찌푸렸을 것이며, 또 누군가는 호기심에 스마트폰 검색창을 들여다봤을지 모른다. 운동의 시작은 한 번에 모든 걸 바꾸려는 데 있지 않다. 불편함이든 호기심이든 끊임없이 문제를 환기시키는데서 운동은 비로소 시작한다. 병역거부 운동은 그렇게 오십년의 침묵을 깨고 시작되었던 것이다.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일정을 마치고 카프카의 우화 <법 앞에서>를 떠올렸다. 시골에서 올라온 한 남자가 법에 청원하러 가는데, 문지기가 문 앞을 막아선다. ‘그렇게 마음이 끌리면 내가 금지해도 들어가려고 애써보시오. 그러나 내가 막강하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나는 최말단의 문지기에 불과하지. 하지만 방을 지날 때마다 문지기가 서 있는데 점점 더 막강한 자들이지.’ 시골 남자는 차마 문지기의 말을 어기지 못하고 기다리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숨이 넘어가려는 순간, 그는 문지기에게 그동안 하지 못한 하나의 질문을 꺼냈다. 법에는 호소할 일이 많을 텐데, 왜 나 말고는 이 문 앞에 청원하러 오는 자가 없느냐고. 문지기는 답한다. ‘이 입구는 오직 당신만을 위해 지정된 것이기 때문이지. 여기서는 어느 누구도 입장허가를 받을 수 없소. 이제 나는 가야하니 문을 닫겠소.’


<이날 자전거 행진은 헌법재판소에서 출발해 국회에서 마무리되었다> 


 법 앞에서 구원을 받으려다 법 앞에서 죽게 되는 시골남자의 일화는 왠지 낯설지 않다. 카프카가 우화에서 묘사한 부조리는 이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 있다지만 들어가는 문이 폐쇄되었으며 ‘법 앞에’만 서 있어야할 뿐,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법은 과연 법이라 할 수 있을까? 2007년 한국정부는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제도를 도입, 추진하겠다고 발표하였다. 2000년대 들어 시작된 운동의 성과가 제도적으로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정권 교체와 더불어 정책은 원점으로 돌아가버렸다. 어쩌면 이번 헌법재판소의 판결도 지난 두 번의 판결과 비슷하게 귀결될지 모른다. 그러나 법의 문턱에서 망연히 기다리는 것이 아닌, 실천하는 병역거부의 역사는 더 강한 문지기가 나올수록 성장해왔다. 평화의 페달은 멈추지 않는다.


글 | 박상욱 (예비병역거부자)

사진 | 전쟁없는 세상 


#양심적병역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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