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 이주민도 건강할 권리

김대권
2020-01-30

미등록이주민도 건강할 권리


글 | 김대권  아시아의친구들



보호외국인 I씨 이야기


I씨는 외국인보호소에 1년 넘게 구금된 외국인이다. 10년 넘게 미등록 상태에서 체류하면서 경기도 파주 등지에서 제조업과 돼지농장 같은 곳에서 일해왔다. 본국을 떠나 한국으로 온 계기는 정치적인 이유에서 였지만 난민신청을 하지는 않았다. 난민신청절차 같은 제도가 한국에 있는지 잘 알지 못했고 나중에 알게 되었어도 출입국사무소에 난민신청하러 가면 붙잡힌다고 주위에서 말렸기 때문이다. 결국 단속이 되어 외국인보호소에 온 후에 난민신청을 하였고 심사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I씨는 외국인보호소에 들어온 후로 체중이 계속 감소하였다. 독실한 무슬림인 I씨는 할랄방식으로 도축된 것이 아니면 육류를 먹지 않았다. 그래서 외국인보호소에서 제공하는 닭고기류 등도 입에 대지 않았다. 가뜩이나 부실한 식사에 그나마 나오는 육류도 먹지 않으니 몸에서 이상이 발생했다. 밖에서는 한번도 없었던 변비증세가 심하게 나타났다. 외국인보호소에서 의사가 약을 주었지만 변화가 없었다. 어느날 부터는 항문에서 피가 나오기도 하였다. 


결국 I씨는 다른 보호외국인이 효과를 보았다는 민간요법을 써보기로 결심했다. 그는 플라스틱카드 같은 것을 잘게 잘라서 그대로 삼켰다.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몇 개월 만에 변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삼킨 플라스틱 카드는 변과 함께 나오지 않았다. 복통이 찾아왔고 항문에서 출혈이 심해졌다. 결국 그는 119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다. 빨리 수술해서 플라스틱 카드를 제거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하였다.


외국인보호소 당국은 당황하여 보호를 일시적으로 해제해주었다. 그러면서도 신원보증금까지 받는 건 잊지 않았다. 보증금 액수로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그의 몸상태는 계속 악화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보호가 해제되어 나올 수 있었지만 병원을 찾으러 길을 가던 중 그는 지하철 역사에서 쓰러져서 응급실로 실려가고 말았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쳐졌다. 그의 몸안에서 수십개의 잘게 자른 플라스틱 카드가 나왔다. 의사 역시 깜짝 놀랐다고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플라스틱카드의 개수가 많았고 날카로왔다고 했다. 하지만 수술비 역시 수천만 원이 나왔다. 다행히 병원 사회복지실에서 도움을 주었다. 그래도 본인이 20% 정도는 의무적으로 부담해야한다고 했다. <인권프로젝트-업>(지구촌인권기금) 사업을 통해 그 부분과 이후 통원치료비를 지원하였다. 



I씨는 이제 건강을 회복하였다. 외국인보호소를 나올 때와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보일 정도로 얼굴도 좋아졌다. 하지만, I씨는 다시 외국인보호소로 돌아가야 한다. 수술을 마칠 때까지 일시적으로 풀어준 것이기에 건강이 회복되면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얼마전 그와의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함께 하였다. 그가 직접 재료를 고르고 만들어준 양고기 커리였다. 분명 맛있다고 느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를 다시 만나려면 그의 건강이 안좋아지길 기대해야 하는 현실이 마음 아팠다.



미숙아를 출산한 C 이야기


C 씨는 미숙아 아기를 출산하였다. 6개월 만에 제왕절개로 나온 아기는 인큐베이터에서 가쁜 숨을 이어가야 했다. 한국에 관광비자로 들어와 10여 년째 체류하고 있는 C씨는 건강보험이 없다. 미숙아 인큐베이터는 비급여항목이 많아 건강보험이 있어도 부담스러운 치료이다. 한두 달 만에 병원비가 2천만 원을 넘어갔다. 아이의 아빠는 한국사람이었다. 얼마 전부터 그는 병원에도 오지 않고 병원 전화도 받지 않는다. 남편에게는 한국인 부인과 자식들이 있다. 한국인 부인은 남편의 이혼요구를 계속 거부하고 있다. 그 사이에 C씨는 남편과의 사이에 낳은 아이를 키우고 있었고 이번에 둘째 아이까지 낳게 된 것이다.


C씨는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를 사랑한다고 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어서 부인과 이혼을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남편이 교통사고를 내고 감옥에 가게 되었을 때 합의금 등도 자신이 마련해주었다고 했다. 요즘 이런 가정이 늘고 있다고 한다. 법적 혼인관계를 이루지 못하면 C씨도 언젠가는 아이들을 데리고 본국으로 떠나야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이 해외에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 아이들에게 아빠와 한국에 대해 물어보면 어떤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C씨는 다행히 병원측과 <지구촌인권기금>의 도움을 받아 병원비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엄청난 액수의 병원비까지 갚아야 하는 외국인 엄마는 또 어떤 대답을 하게될까?


심근경색 수술을 받은 A씨 이야기


A씨는 집에 있다가 갑자기 가슴에 통증을 느꼈다. 근처에 사는 친구에게 다급하게 전화를 하였고 친구가 그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집근처 병원에서는 큰 병원으로 가야한다고 했다. 신촌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갔더니 곧바로 수술실로 들어가 수술을 하였다. 급성심근경색이었다. 스탠트를 이용하여 심장을 통과하는 혈관의 모양을 성형하는 수술을 받았다. 건강보험 가입자는 큰 비용이 드는 수술은 아니었다. 하지만, 건강보험이 없는 A씨에게는 1천만 원이 넘는 병원비가 나왔다. 


A씨는 종교의 자유를 찾아 2013년에 한국에 왔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그가 난민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소송까지 가 봤으나 최종 패소하였다. 그 후에는 미등록상태로 체류하면서 목재공장 등에서 일해왔다. 하지만 최종 패소 후 비자가 취소되면서 정규적인 일자리는 구하지 못하고 간간히 들어오는 임시직 일자리만 일할 수 있었다. A씨는 본인만 먼저 한국에 왔고 고향에는 아내와 세 아이가 있다. 하지만, A씨는 더 이상 한국에 있을 생각이 없다. 그 동안 난민심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너무 힘들었고 건강도 나빠졌기 때문이다. 


신촌의 병원에서는 A씨의 딱한 사정에 병원비 중 500만 원을 감면해 주었다. 하지만 나머지 금액을 내지 않으면 퇴원을 할 수 없다고 하여 오도가도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다행히 친구가 일부 빌려주었고 <지구촌인권기금>에서 일부를 부담하여 무사히 퇴원할 수 있었다. 지금쯤은 A씨가 가족들을 만나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길 기도해본다.


 #이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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