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아
2020-01-30

난민건강 UP

지원역량 UP


글 | 김영아   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MAP


낯선 타국에서 아프고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어떨까요? 그런데 병원 정보도 모르고 병원에 가도 말이 안 통한다면? 진료결과와 처방전을 이해할 수 없다면? 그곳에서 직장도 구하고 아이를 학교에도 보내지만 의료보험에 가입할 수 없어서 작은 감기에도 병원비가 몇 만원 나온다면? 불면과 우울, 트라우마로 상담을 받고 싶지만 내 언어로 대화할 수 없다면?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데 집에 있는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이 없다면?  


이렇게 당혹스럽고 막막한 상황이 한국에 비호를 청한 수많은 난민에게는 일상사입니다. 박해와 분쟁을 피해 난민이 되고 나서 또 다른 생존과 실존의 문제에 부딪치는 것입니다. 체포, 고문과 폭격이 없어도 생사가 위협받고 온 가족이 불안과 생활고의 위기에 처하기도 합니다.  



마른 땅에 단비 같은 <인권프로젝트-업> 지원 사업 


〈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이하 ‘MAP’)는 한국에 거주하는 난민의 건강 증진을 위해 2017년부터 시민단체가 할 수 있는 노력들을 해 오고 있습니다. 2016년 여름 폭격 피해 후유증으로 고통 받고 있는 한 시리아 가정을 만난 것을 시작으로 위급하고 위중한 환자들의 연락을 받고 여러 도시로 달려갔습니다. 병원과 병원비, 생계비, 쉼터, 통역인을 찾아 헤맸습니다. 2017년 한 지역에서 난민건강실태 조사를 하고 국내 난민이 건강이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매번 의료기관, 복지단체, 지자체에 난민이 누구인지, 난민과 미등록이주민의 차이점을 설명해야 하고, 활동가와 통역인이 자비로 활동비를 지출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그런데 2019년에는 인권재단 사람의 <인권프로젝트-업> 지원을 받아 난민건강증진 활동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2019년은 어느 때보다 난민 건강 관련 과제가 많은 해였습니다. 2019년에는 긴 난민지위 심사 기간 동안 의료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난민신청자의 수가 2만 명을 넘어가고 있었고, 2018년 형성된 반난민 정서로 인해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는 난민이 늘고 있었습니다. 또 2019년부터 한국이 난민제도를 운영한지 거의 25년 만에 인도적체류자에게 지역건강보험 가입이 허용되고 7월부터는 당연가입 시킬 예정이어서 예상되는 혼란을 대비해야 했습니다. 


‘난민건강 UP’


마른 땅에 단비 같은 <인권프로젝트-업> 지원을 받고 MAP의 난민건강증진 사업도 <난민건강 UP 지원역량 UP 사업>으로 거듭났습니다. 먼저 ‘난민건강 UP’ 분야 활동을 살펴보면 예방적 조치와 긴급조치로 나뉩니다. 난민이 타국에서 건강관리를 하며 질병예방을 할 수 있도록 연중 1회 난민건강검진 행사를 하고 평소에 건강정보 콘텐츠를 만들어 홍보했습니다. 동시에 상담을 통해 의료보건 서비스에 대한 정보 제공, 자원 연계를 상시 진행하고 긴급 구호, 위기 사례에 대해서는 전 방위적으로 개입하는 사례관리를 하였습니다. 


올해 4회를 맞은 건강검진행사는 5월 26일 오후 서울에서 열렸습니다. 영유아부터 고령의 환자가 인근의 여러 도시에서 방문하였습니다. 5시간 동안 70명의 환자가 진단 검사, 구강 검진 등 검진을 받고 세부 질환이 있는 난민들은 응급의학과·류마티스내과·가정의학과·신경의학과·재활의학과 등 해당 진료과에서 전문적인 진료를 받았습니다. 총 97건의 진료가 이루어졌고 16건에 대해서는 향후 추가 진료를 위한 의뢰서를 드렸습니다. 5명의 MAP 스탭과 의료봉사자 67명, 통역봉사자 42명이 오랜 동안 준비하여 맞은 환자분들이었습니다. 난민 환자들은 동행하는 통역인과 시간을 충분히 들여 진료하는 의료진에게 높은 만족도를 표시하였습니다. 만족도 조사에 참가한 36명의 난민 거의 모두 의사에게 본인의 증상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의사로부터 진단과 처방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고 응답했습니다. 특히 의료서비스 접근이 어려운 중증 질환자 1명에게는 후속 치료를 지원하기로 하였습니다.  


▲ 5월 26일 난민건강검진행사, 한성대학교 체육관 


건강검진행사에는 건강보험캠페인과 산전관리 모성보건 캠페인도 진행되었습니다. 2019년 바뀌는 난민 대상 건강보험정책에 대한 안내물이 한국어, 영어, 아랍어, 불어 등 4개의 언어로 배포되었습니다. 관계 부처와의 수차례 통화 그리고 공들인 내용 편집과 번역 작업 끝에 나온 안내물을 본격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건강보험정책이 바뀌는지 아느냐고 물으면 열이면 열 아는 난민이 없어 캠페인을 더 서두르지 못한 것에 대해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1월부터 인도적체류자 지역보험 임의가입이 허용되었는데 관련 부처는 보도자료만 내고 당사자에 대한 직접 고지는 없었습니다.  



▲ 건강보험 안내 홍보물


MAP은 건강검진행사 후 서둘러 건강보험 관련 안내지를 다른 난민 지원 단체들에게 배포하고 계속해서 정책 변화를 모니터링 하여 소식을 업데이트했습니다. 출입국관리소는 당연가입제가 시작되는 7월 16일 바로 전달인 6월에서야 난민에게 국문과 영문으로 된 통지문 한 장을 발송했습니다. 하지만 통지문 내용은 6개월 이상 체류하는 외국인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다른 외국인과 상이한 난민의 보험료 산정방식이 안내되지 않았습니다. 


더 큰 문제는 세대원 등록을 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난민은 본국에서의 서류 발급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고 한국정부의 가족관계등록 체계에서도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난민이 가족관계 증명을 할 수 있는 대안적 방법이 허용되어야 합니다. 관련 부처도 이를 인지하고 대책 마련을 하겠다고 했으나 모두에게 출입국사무소에서 발급하는 외국인등록사실증명서 상의 가족관계 란에 세대원이 기재되어 있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가족구성원들이 입국 시기가 다른 경우, 한국에서 아동이 출생한 경우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가족관계란에 배우자, 자녀가 미기재 되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난민 가정에 비상이 걸렸고 출입국사무소로 건강보험공단으로 헛발걸음을 하는 난민이 부지기수로 많았습니다. 


인도적체류자에게 지역건강보험 가입은 오래도록 희망해 오던 것이었습니다. 실제 예로 소아류마티스관절염으로 2017년 초부터 MAP의 지원을 받고 있는 아이는 약물 복용에서 주사요법으로 바꿔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건강보험 가입이 가능해져 의료비 부담이 줄어들었습니다. 이 가정은 미리 여러 달에 걸쳐 가족관계 증빙 서류를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득과 재산에 근거해 보험료가 책정되지 않고 전년도 전체 보험가입자의 평균 보험료가 보험료 산정 기준이 되고, 세대원 등록 기준에서 부모와 성인 자녀, 형제자매를 제외시키면서 보험료 부담을 감당하기 힘들어진 가정들도 생겼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보험료 미납 시 심각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습니다. 보험 급여를 멈추고 체류기간 연장을 제한하는 정책이 도입된 것입니다.


▲ MAP이 SNS에 게시한 건강정보 카드뉴스  


MAP은 보험정책 세부 내용과 변경사항을 카드뉴스로 만들어 난민에게 알렸습니다. 2월부터 문자 알림 서비스, SNS 포스팅을 통해 건강정보를 전달하고 있었는데 6월부터 9월까지는 건강보험이 주요 뉴스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10월, 지방의 한 소도시에서 우편으로 온 보험료 납부고지서의 의미와 납부 방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납부금이 밀려 있는 가정들을 만났습니다. 난민의 취약한 정보접근성과 MAP 건강뉴스의 효과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건강보험 이외에도 무더위 건강관리, 독감예방접종, 겨울철 건강관리, 난방 및 겨울 곰팡이 관리 등 여러 주제의 건강정보가 카드 뉴스로 나갔습니다. 총 17개 주제의 정보가 10차례에 걸쳐 나갔는데 4개 언어 버전을 만들다 보니 결국 슬라이드 수가 100장이 넘었습니다. 건강뉴스의 기획과 번역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또 배웠다는 난민 활동가는 말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난민에게 니즈를 묻고 여성, 아동, 남성 또는 노동자 대상별로 필요한 건강 뉴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난민에게 더 닿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난민의 정보접근성을 높이려고 노력하면서 동시에 직접 지원을 계속하였습니다. 생명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전화벨이 울리면 우선순위 업무가 되는 분야입니다. MAP의 연중 상담, 의료보험 관련 상담 및 가입과정 지원, 의료기관 연계와 건강자원 연계, 난민무료건강검진행사, 통번역지원, 긴급 소액의료비 지원을 통해 90~120여 명의 난민이 의료서비스를 받았습니다.  


직접 지원을 책임 담당하고 있는 조주연 활동가는 2019년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올해는 만성질환 환자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의료연계지원 활동은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같이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과정이어서 환자와의 면담이 중요하죠. 그렇다보니 환자의 심리상태가 큰 영향을 미치게 되요. 만성질환의 경우 증상과 치료가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보니 이런 상황에 몸도 마음도 지친 환자가 감정적으로 어려움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아요. 아랍어권 환자의 경우 야스민 활동가가 모든 내용을 일차적으로 듣는 것인데 이러한 과정에서 활동가가 받게 되는 정서적 피로감이 우려됐어요. 의료지원 활동가의 심리를 케어할 수 안전장치도 필요한 것이죠.”


아랍어권 환자 사례관리를 함께 했던 야스민 활동가는 올 한해 만났던 환자 가운데 만성 신장병을 앓고 있는 한 환자가 가장 생각난다고 합니다. 


“그는 문제가 생겼을 때 감정 표현이 180도로 바뀌어요. 딱 하루, 시술을 받고나서 전화로 고맙다고 말하고 소리 내어 웃었어요. 완전 다른 사람. 아마 그 날만큼은 희망을 가져서 그랬나 봐요.”   



‘지원역량 UP’

난민건강 UP을 이루기 위해서는 난민이 수용국의 의료보건제도에 대해 잘 이해하고 이용 시 자신이 받는 진단과 치료에 대해 완전히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의료보건 종사자와 난민지원 봉사자들 역시 난민에 대해 배움이 필요합니다. 한 사람이 난민의 처지가 되면서 겪게 되는 건강위협 요소들이 내국민과 다른 이주자들과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한국의료보건제도 및 사회안전망에서 난민이 어디에 놓여있으며 그것이 난민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이해도 필요합니다. 결정적으로 의사소통이 원만히 이루어져 진료에서 시행착오가 있어선 안 됩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아직 의료진과 봉사자, 난민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갖가지 어려움과 갈등이 발생합니다. 난민과 이주민을 위한 전문의료 통역 서비스가 제도화되어 있지 않은데다 통역봉사자나 문화 중개인의 지원이 있다 해도 비전문적이고 의료진은 시간문제로 기피하기도 합니다.  


MAP은 난민 환자를 의료보건기관에 연계하고 진료에 직접 동행하고 통역을 지원을 합니다. 건강검진행사를 하면서 자체적으로 통역봉사자들을 모집하고 교육해 오고 있습니다. 원만한 진료와 갈등 예방 그리고 상호문화적 소통을 위해 통역봉사자는 전문성과 통역윤리를 강화해야 하고 의료진은 통역을 이용해 난민을 진료하는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2019년 MAP은 44명의 통역인을 모집했고, 난민건강검진 행사 전에 통역인 42명과 의료인 38명에게 난민건강실태, 통역의 윤리와 기본기술, 난민의료통역에 대한 사전교육을 진행했습니다. 봉사 후 실시된 만족도 조사에 의하면 통역인 의료진 모두 사전 교육이 유용했으며 봉사와 함께 난민에 대해 배우고 인식을 개선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답변하였습니다. 검진행사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통역봉사를 하신 분들과는 연말에 통역인 잡담회 <내 마음을 통역하는 밤>을 가졌습니다. 통역봉사를 통해 성장한 점과 향후 개선할 점을 나누고, 통역인 역할의 경계와 난민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과 경험사례도 얘기했습니다. 참가자들은 다른 통역인들을 만나 함께 성찰하고 고민을 나눌 수 있어 안심이 되었다고 평하였습니다.  


한편 난민과 난민건강에 대한 기본정보 및 의사소통 지침을 만들어 의료현장에 배포하려는 계획은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의료보건 종사자에 대한 접근성과 지침의 실제 효과까지 고려해 향후 실행을 검토할 계획입니다. 


▲ (좌)4월 13일 난민 의료통역교육, (우)11월 26일 통역봉사자 잡담회  



모두가 건강할 수 있는 2020년을 바라며 


“안녕하세요?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MAP 활동가들이 난민에게 또 일하면서 마주하는 협력기관과 시민들에게 항상 건네는 인사입니다. 

    

난민에게 “건강하세요?”하고 묻기 시작하고 대답을 들으면서 난민 삶 전체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박해와 분쟁, 폭력을 피해 온 이들이 다시 평범한 삶을 일구어 나가기 위해서는 생명과 직결되어 있는 기본적인 건강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합니다. 난민건강 UP, 우리 모두의 건강권 UP을 위해 MAP과 시민봉사자들이 우리 사회에 제도 및 여러 대안책이 마련될 때까지의 공백을 채울 것입니다. 모두, 건강하십시오.


#난민 #이주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