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 선생님의 세뱃돈

박래군
2021-03-10

“남김없이”


백기완 선생님 장례위원회가 장례 기간 중에 뽑아 쓴 글귀입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에서 따온 말이죠. 추모리본에도 이 글귀를 새겼습니다. 그런데 이 글귀를 새긴 데가 또 있습니다. 


장례의 마지막 순서인 하관식도, 평토제도 모두 끝나고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에 장례위원회에서는 느닷없이 백기완 선생님의 세뱃돈을 돌렸습니다. 위의 글귀를 적은 흰 봉투에 담긴 단 돈 1만원.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들 그 봉투를 받고 모두 좋아했습니다. 어떤 분은 자신도 갖고 싶은데 차례를 놓쳤다고 너무 아쉬워해서 제가 갖고 있던 돈 봉투를 건넸지요. 그분은 할아버지에게 세뱃돈 받은 아이처럼 좋아했습니다. 


평소 백기완 선생님은 명절에 찾아와 세배 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단 돈 1만원이 든 봉투를 내놓았다고 합니다. 세배를 마치고 선생님 앞에 손을 모아서 내밀고 “저도요, 저도요”를 외쳤다는 얘기를 종종 들어왔습니다. 저는 세배하러 간 적이 없어서 생전에 세뱃돈을 받지 못했지요. 그런데 선생님 돌아가신 다음에야 세뱃돈을 받았던 게 그것마저 넘겼습니다(이 사실은 안 장례위원회 총무가 나중에 챙겨주어서 저도 그 세뱃돈 봉투를 갖고 있습니다). 


세뱃돈 1만원이 든 봉투 


선생님과의 인연은 동생이 맺어주었습니다. 물론 그전에도 먼발치에서 선생님의 쩌렁쩌렁한 연설을 듣고는 했지만, 직접 인연이 된 것은 동생의 장례위원장을 선생님이 맡으시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한동안 선생님이 불편했습니다. 목소리가 컸고, 호통을 잘 치셨고, 너무 거침이 없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본의 아니게 선생님을 투쟁의 현장으로 불러내는 악역을 맡고는 했습니다. 


그런 선생님이 영락없는 할아버지 모습이 되고부터, 지팡이에 의지해서 발걸음을 하실 때부터 유난히 눈물을 많이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더 낮아지고, 험지를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김진숙, 그리고 일일이 거론할 수조차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 용산참사와 세월호 참사 현장에 함께 하셨습니다. 이미 과거의 어른들은 모두 떠난 자리였습니다. 길바닥에서 노동자들과 철거민들과 유가족들 곁에 철푸덕 앉았고는 했습니다. 선생님이 오시면 그 자체로 힘이 되고는 했지요. 


어느 때부터인가 이름만으로도 존경을 받던 어른들이 현장을 떠나갔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권에서 이런저런 자리를 맡으셨던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백발이 성성한 백기완 선생님과 흰 수염 휘날리는 문정현 신부님은 여전히 길바닥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이 들어 늙은 몸으로 점점 쇠약해져 가는 몸으로 마지막까지 현장을 지킨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지난 2016년 겨울과 그 다음해 봄까지 계속된 탄핵 촛불현장을 매주 찾아오셔서 촛불집회가 끝날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셨던 선생님, 그 자리에 오기 위해서 그 전날부터 음료 일체를 마시지 않으셨다고 하지요. 그 모습이 선합니다. 

추하지 않게, 아름답게 늙어 가는 일이 어떤 것인가를 선생님의 마지막 모습에서 찾은 것 같습니다. 마지막 병상에서도 심하게 떨리는 손으로 그려내신 마지막 몇 글자들을 적기까지는 1주일에서 보름이 걸렸다고 합니다. 병상에서도 투쟁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지요. 


선생님의 장례위원회에서 상임공동집행위원장 직을 수행하느라 미처 슬퍼할 겨를도 없었는데 장례를 마치고 나니 선생님의 부재가 새삼 다가옵니다. 


(앞부분 생략)

북을 때려라

북이 없으면 가슴이라도 때리고

가슴마저 거덜 날 것이면

하늘을 때리고 땅이라도 쳐

일하는 이의 피눈물이 통하는 벗나래

일하는 이가 알범(주인)이 되는 벗나래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리하여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사는 벗나래

노나메기 벗나래

아, 우리가 우리 손으로 일굴 그날까지

아, 우리가 우리 손으로 일굴 그날까지

북을 때려라

떵떵떵 북을 때려라

- 시 <북을 때려라>의 일부


북을 때려라!


선생님의 글은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차분하게 다가오기보다는 차디차게 식은 가슴에 확 불을 지펴 올리는 그런 글들입니다. ‘노나메기 벗나래’(세상)는 선생님의 사상이 집약된 말입니다. 서로 잘 살되 올바르게 잘 사는 세상은 이제 저의 지향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주고 가신 선생님의 세뱃돈, 훗날 그 세뱃돈을 보고 선생님이 생각나겠지요. 


벌써 3월입니다. 혹독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옵니다. 코로나로 한겨울 같았던 우리네 삶에도 봄이 올까요? 코로나 백신이 접종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하루 빨리 코로나 상황이 종식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전에 했던 것처럼 얼굴 보도 만나는 날이 빨리 오면 좋겠습니다. 그런 날이 봄날이 아니까 생각됩니다. 


올해의 환절기에는 더욱 건강에 신경 쓰시기 바랍니다. 건강해야 우리 웃으며 만날 수 있으니까요. 모두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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