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군
2021-01-29
어릴 때 학교에서 소풍을 할 때면 ‘보물찾기’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은 바위틈에서, 나무 뒤에서 잘도 찾았는데 저는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친구들은 보물을 받을 종이를 몇 장씩 찾아서 의기양양했지만 저는 빈손일 때가 많았습니다. 그 종이 쪼가리를 찾아서 선생님께 내면 연필 한 자루, 공책 한 권 주는 건데 그게 참 부러웠습니다. 한 번은 너무 답답했는지 친구가 자기가 찾은 보물을 제게 건네주기도 했지요.


남들은 잘만 찾는 보물을 저는 너무 어려운 데서만 찾았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은 보물을 너무 멀리에, 그리고 어려운 곳이 아니라 바로 내가 앉거나 서 있는 자리 근처에 숨겨두었습니다. 보물은 늘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갑자기 웬 보물 타령이냐고요? 요즘 세상사를 보면서 느끼는 점이 있어서입니다. 세상은 온통 폭력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차별과 혐오, 불평등이란 키워드로 읽어낼 수 있는 반인권적 상황들은 언제나 폭력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폭력은 어디에서 연유되는 것인가를 두고 많은 고민과 논의가 이어져 왔습니다.


최근에 정의당 대표의 성추행 사건이 공개되었습니다. 진보정당에서 발생한 사건들이라서 더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거대 정당들은 경악할 사건이라면서 정의당을 연일 비판하기에 바쁘지만 제 눈에 들보는 보지도 들어내지도 않으면서 적반하장의 충고를 하는 꼴사나운 상황도 벌어집니다.


이런 성적인 폭력 사건이 발생하는 데는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이유 등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자기결정권’을 부정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은 사람인 이상 고유의 인격을 갖고 있고, 그 인격을 발현할 기회를 갖게 됩니다. 인격을 가진 존재인 사람에게는 자기결정권이 중요합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외부의 간섭 없이 신체와 정신 등 자신과 관련된 사항에 관해서 결정할 권리가 있습니다. 자기결정권은 생명, 생활방식, 성적 행동 등과 관련해서 광범위하게 적용됩니다.


성희롱, 성추행 사건은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무시하고 침해한 결과입니다. 나이와 지위가 있으면 종종 상대방의 자기결정권을 쉽게 무시합니다. 그리고 쉽게 친밀감으로 포장합니다. 이런 태도는 인권감수성, 나아가서는 성인지감수성이 부족하기 때문이겠지요. 어떤 경우라도 동의 과정이 없이는 애정도 폭력이 됩니다.


예전에 친한 친구나 후배들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에 습관적으로 머리를 쓰다듬곤 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후배가 정색하면서 남이 자신의 머리 만지는 걸 끔찍이 싫어한다고 했습니다. 불쾌하니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그런 지적을 받은 뒤부터는 절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그럴듯한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남성들조차 왜 번번이 눈앞의 여성을 자신과 동등하게 존엄한 존재로 대하는 것에 이토록 처참히 실패하는가.


이번 정의당 대표 사건의 피해자인 장혜영 의원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눈앞의 여성”에 주목합니다. 그 눈앞의 여성을 자기결정권을 가진 인격체로 보지 않을 때 문제가 시작됩니다. 사회운동을 하면서 수많은 이들과 관계를 맺으며 활동하는 ‘그럴듯한 삶을 살아가는 남성’ 축에 들 수도 있기에 더욱 이 말이 제 가슴에 와 꽂힙니다.


논어에 “화이부동(和而不同)”이란 말이 있습니다. “조화롭게 어울리지만, 반드시 같기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친근하지만 그는 나와 다른 인격체임을 인정하자는 말로 들립니다. 동의 없는 어떤 친밀감도 폭력일 수 있음을 새롭게 확인합니다.


보물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나와 관계 맺는 눈앞의 존재들이 보물입니다. 올해는 그 보물의 소중함을 찾고 지키고 키우며,  자기결정권을 침해받는 존재들과 구조적 ·문화적 폭력에 노출된 존재들에게로 한 걸음 더 다가가겠습니다.


새해 출발 잘하셨나요? 저는 요즘 무척 답답합니다. 암 환자인 김진숙 씨의 청와대로 향하는 발길이 수도권으로 접어들고 있고, 청와대 앞 노숙단식농성이 40일을 앞두고 있음에도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청와대에서 길바닥 농성을 하면서 삭발을 하고 “다시, 세월호”를 외치며 시민들과 함께 촛불을 듭니다. 이런 문제들을 풀어보고자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에 갇힌 느낌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답답한 상황이어도 소중한 보물을 찾아가시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코로나로 반가운 사람들 만나기도 쉽지는 않겠지만, 설날에 새해 소망도 빌어 보시고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믿음을 갖고 설을 맞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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