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과 슬픔 치유하는 약사여래처럼

박래군
2020-12-29

장곡사에서 만난 약사여래


아내와 함께 충남 청양에 다녀올 일이 있었습니다. 밥 먹을 식당을 찾다가 아내가 옛날에 가봤다는 절 표지판이 나와서 그리로 들어갔습니다. 장곡사(長谷寺), 긴 계곡에 있는 절은 칠갑산의 긴 계곡의 끝에 있었습니다. 늦은 점심을 먹고 별 기대도 없이 들어간 절이었지요.


산비탈에 세워진 절은 아담하고 소박했습니다. 보물로 지정된 상 · 하 2채의 대웅전에 고려시대의 불상인 '약사여래'가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대웅전이 두 개가 있는 것도 희한한데 여느 절처럼 본존불로 석가모니불을 모시지 않고, 약사여래를 모시고 있는 점도 특이했습니다.


약사여래는 “과거세에 약왕(藥王)이라는 이름의 보살로 수행하면서 중생의 아픔과 슬픔을 소멸시키기 위한 12가지 대원(大願)을 세운 보살”이라고 합니다. 그중에 몇 가지를 살펴보면, ③ 중생으로 하여금 욕망에 만족하여 결핍하지 않게 하려는 원 ⑩ 나쁜 왕이나 강도 등의 고난으로부터 일체중생을 구제하려는 원 ⑪ 일체중생의 기갈을 면하게 하고 배부르게 하려는 원 ⑫ 가난하여 의복이 없는 이에게 훌륭한 옷을 갖게 하려는 원등이 있습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약사여래(藥師如來)


약사여래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병을 단지 몸의 병만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쁜 정치가 만드는 악행도 병으로 보았고, 의식주가 부족해서 고통 받는 것도 병으로 보아서 중생들이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세 번째 원에서 말하는 '욕망'은 해석하자면 기본적 필요가 충족되는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12가지 대원에는 장애와 성차별의 아픔도 치유하겠다는 원도 포함됩니다. 그래서 예전부터 민중들은 약사여래에게 치성을 드렸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원들은 지금 인권에서 말하는 사회권-경제·사회·문화적 권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불평등과 차별 없애는 신축년


코로나 재앙으로 고생하는 2020년의 끝 무렵에 나는 왜 장곡사로 발길을 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겨울 한파가 며칠 동안 몰아치다가 조금 따뜻해진 날 오후의 절에는 스님들은 모두 동안거에 들어가 있었는지 적막했습니다. 연륜이 깊어서 구멍 난 몸으로도 잎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아름드리나무들이 이 절의 역사를 말해주더군요. 상대웅전 옆의 감나무에는 까치밥으로 남긴 감도 달랑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 있어서 자연의 새들까지 넉넉히 생각해주는 절 같았습니다. 보물 4점과 국보가 2점이 있는 유명 사찰인데도 입장료도 안 받더군요. 무언가 아픈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것만 같은 약사여래 보살님께 아픔과 슬픔을 치유해 주십사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습니다.  


2021년은 소띠 해, 신축년입니다. 12간지(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동물들은 약사여래를 수호하는 야차라고 하지요. 이들 동물들은 각각 활동하는 시간에 맞춰서 하루를 등분합니다. 축시는 새벽 1시부터 3시 사이 “밤새 풀을 먹은 소가 아침 밭갈이를 준비하는 시간”을 나타냅니다. 2021년은 코로나에 잔뜩 움츠렸던 몸을 추슬러서 이제 일하러 가야 하는 해가 될까요? 백신도 치료제도 차별 없이 제공되어 모두가 코로나의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일, 세상의 불평등과 차별도 없는 세상으로 나가는 일이라면 더욱 의미가 있겠지요. 중대재해로 사망하는 노동자들이 없는 세상을 여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되고, 세상의 모든 차별과 혐오가 더 자라나지 못하게 하는 차별금지법부터 제정되는 해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힘들었던 한 해에도 기꺼이 마음을 내어주고 손을 잡아주었던 기부자님이 제게는 약사여래만 같습니다. 세상의 아픔과 슬픔을 치유하는 약사여래의 손 안에는 병중의 중생을 구제하는 약그릇이 들려 있었습니다. 내년에도 좀 더 좋은 세상을 향해 같이 걸어갔으면 합니다. 한 해 동안 참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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