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정신을 곱씹어야 할 때

박래군
2020-10-30

나무위에 박힌 못에 실이 여러가닥 연결되어 있다

ⓒshutterstock



‘50년 동안 노동자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앞두고 여러 언론사에서 거의 동일한 내용의 기획 기사를 내고 있습니다. 이런 기획을 보다 보면 참담합니다. 전태일 열사가 이런 노동현실을 본다면 뭐라고 할까요? 1970년 그가 3천만 원이 없어서 만들지 못했던, 근로기준법을 제대로 지키면서도 이윤을 남기는 모범업체 ‘태일피복’같은 업체가 지금 얼마나 있을까요?


50년이 지나도 여전히 이 나라에는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노동 위에 노동자의 안전은 외면하는 기업들이 다수이고, 그런 기업주가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1년에 산업재해로 2천4백 명의 노동자가 죽어가는 나라, 올해만도 16시간씩 일하던 택배 노동자 13명이 과로사로 죽어간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전태일은 국제노동기구와 같은 곳의 노동인권 원칙은 본 적도 없지만, 그 원칙을 평화시장에서부터 만들어내려고 바위를 굴리고 굴리다 지쳐서 쓰러졌습니다. 그가 만들어내려던 원칙은 무엇이었을까요? 노동의 이유는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존엄하게 살기 위해서라는 것, 노동자를 한껏 궁핍한 상황으로 내몰고 인격마저 무시하고 조롱하지 않고 인간으로 대우하며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전태일 정신과 인간 존엄성 원칙


세계인권선언이 발표되기 4년 전인 1944년에 발표된 ‘국제노동기구의 목적에 관한 필라델피아 선언’에서는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란 원칙을 첫 번째로 꼽았습니다. 그리고 “일부의 빈곤은 전체의 번영을 위태롭게”하므로 “결핍과의 투쟁은 각국에서 불굴의 의지로, 그리고 노동자 대표와 고용주 대표가 정부 대표와 동등한 지위에서 공동선의 증진을 위한 자유로운 토론과 민주적인 결정에 참여하는 지속적이고도 협조적인 국제적 노력으로 수행돼야 한다.”고 천명합니다.


이런 선언을 다시 찾아서 읽게 되는 이유는 아직도 이 나라에서는 노동이 상품 취급을 받고 있고, 노사 관계는 한참 기울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노동존중을 내세우며 출범했던 이 정부에서도 노동법을 개악하려 하고 있으니 50년 전에 죽은 전태일 열사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판입니다. 모두의 노동이 차별 없이 존중 받고, 그 노동을 통해서 존엄한 인간의 삶을 꿈꾸었던 전태일 정신을 곱씹어야 할 때입니다.


“나는, 우리는 누군가를 밟고 서 있지는 않은가요?” 지난 26일, NPO 파트너 페어 국제 컨퍼런스에서 대담을 나눈 활동가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납니다. 이 질문이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노동에 빚지고 살고 있음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연결고리


우리 재단이 준비하고 있는 후원의 밤 주제어가 ‘연결’입니다. 물리적 거리두기 중에도 우리가 연결된 존재라는 것,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과도 연결되어 있고 자연이 파괴되면 인간도 살 수 없음을 올해만큼 절감한 해가 없었습니다. 위기는 시시각각으로 더욱 크게 다가오고 있는데 이런 위기를 극복하는 일도 결국은 인간의 몫이란 것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를 연결하는 고리는 무엇일까요? 차별과 혐오는 가난하고 힘없고 약한 이들에게 더욱 가혹합니다. 그런 약자와 소수자들의 곁을 지키는 인권활동가와 인권단체를 우리는 대구 장애인들이 처했던 상황 때, 그리고 이태원 상황 때 구체적으로 확인했습니다. 


인권운동은 약자와 소수자들이 사회의 연결망에서 배제되지 않게 합니다. 그래서 인권운동이 무너지면 약자와 소수자들은 걷잡을 수 없이 재난의 풍랑 속으로 떠내려갈 것입니다. 인권운동은 거친 재난의 풍랑에서 약자와 소수자를 지키는 방파제입니다. 그런 방파제가 터져 나가지 않게 함께 지켜주시길 감히 부탁드립니다.


매년 11월이면 후원의 밤에서 재단의 후원자들과 인권활동가들이 한 끼 밥을 나누며 새해의 꿈도 나누었지만, 올해는 랜선을 타고 우리의 마음이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온라인으로 개최되는 후원의 밤에 접속하고, 인권운동을 지키는 일에 마음 보태주실 거라 믿습니다.


이 가을,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산과 들도 보면서 코로나로 지친 마음들 조금은 달래 보시기 바랍니다. 계절이 바뀌고, 또 해가 바뀌면 우리는 코로나 걱정 없이 만날 수 있는 날도 오겠지요. 그런 날 우리 만남은 더욱 기쁠 것입니다.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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