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계속해서 저항하지만, 동시에 계속해서 제안한다.”

박래군
2020-05-28

“오늘 이후 저 운동의 '곁'에 누가 있을 것인가. 남는 자가 있을까. 아니면 새로 오는 자가 있을까.” 


사회학자 엄기호 씨가 페이스북에 남긴 말입니다. 정의기억연대를 둘러싼 논란이 한 달 가까이 계속되는 요즘, 인권단체와 인권활동가가 저주의 대상이라도 된 것 같은 비참함을 느낍니다. 30년 세월을 같이 한 피해자가 “이용만 당했다”라고 말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의 참담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정의기억연대와 떨어져 있는 저도 이런데 그 단체의 활동가들은 어떨까요? 


존재 이유를 부정당할 때


자신들이 헌신했던 운동이 한순간 부정당하는 것은 인권활동가의 존재 이유를 부정 당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정확하게는 일본군 전시 성노예 문제에 대해 세상이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았던 때부터 지금까지 30년 동안 피해자들의 곁을 지키며 헌신했던 활동가는 단지 윤미향 씨만이 아닙니다. 이 사태의 본질은 사실 회계 부정에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회계 부정이 더욱 분명해 보이는 ‘나눔의 집’이 비난의 중심에서 한참 비켜나 있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착잡한 심정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면서 적극적으로 옹호하지도 비판하지도 못하는 저의 태도도 못마땅합니다. 할 말은 많지만 말을 꺼내는 순간 왜곡되고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상황입니다. 피해자와 함께 하는 인권운동의 숙명 같은 거라고나 할까요?


오래전에 한 선배가 인권활동가는 ‘마음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인권활동을 하다 보면 욕도 많이 먹습니다. 극우언론이나 혐오세력에게 듣는 욕이야 그러려니 하는데 내가 온 마음과 몸을 던져서 옹호하려고 했던, 또는 그렇다고 믿었던 피해자들에게서 욕을 듣고 비난을 듣는 일은 너무 힘듭니다. 마음은 갈가리 찢기고 급기야 몸도 아프지요. 그래서 몸의 근육이 아닌 마음의 근육을 단련하라는 겁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러다 보면 피해자와의 거리두기를 익히게 됩니다. 피해자와의 적정한 거리가 어디쯤인지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우리는 계속해서 저항하지만, 동시에 계속해서 제안한다.” 


저는 인권활동가들이 ‘분노와 증오’에 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부당한 일을 겪은 피해자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절로 분노가 치밉니다. 어떻게 경찰이, 검찰이, 법원이 그럴 수 있을까? 왜 노동자보다 더한 폭력을 휘두르는 사장이나 기업 경영주는 처벌도 받지 않는 것인가? 분노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요. 그래서 언론에도 호소하고 법과 제도를 바꾸기 위해서 정부 관계자와 국회의원도 만나지만, 그러다 보면 더욱 화가 나고 어느새 법과 제도를 증오하게 됩니다. 이것은 어느 정도까지는 정당하지만, 활동가는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대안을 생각해야 하고, 좌절을 겪을 피해자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합니다. 호프 보에르스마 신부가 『가난한 사람들의 선언』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저항하지만, 동시에 계속해서 제안한다.”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욕심’도 경계해야 할 대상입니다. 활동가에게는 어느 순간 ‘사회적 인정’이라는 지위가 생깁니다. 활동을 오래 하다 보면 정보도 생기고 인맥도 늘어납니다. 그럴 때 조심하지 않으면 사달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정치권에 진입할 때는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단체나 같이 해온 연대단위들과 폭넓게 토론하고 동의와 지지를 획득해야 운동의 연장선으로 의미를 거둘 수 있을 겁니다.


정의기억연대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가 미칠 파장이 정말 우려스럽습니다. 그렇잖아도 코로나19로 인해서 인권단체와 활동가들 걱정이 더 많은데, 더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권운동은 어느 경우에도 지속되어야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부심하고 있는 인권활동가들을 믿습니다.


인권운동은 피해자의 곁을 지키면서, 그들을 활동의 주체로 세우기 위해 늘 고민할 것입니다. 그런 인권운동을 믿고 응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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