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한 거리를 지키고 있나요?

박래군
2020-06-25

주말에 시간이 되면 무조건 자전거를 탑니다. 탈 때마다 30~60킬로미터를 달립니다. 무더웠던 지난 일요일에도 자전거를 끌고 나갔습니다. 역곡천에서 시작해서 안양천을 지나 성산대교 앞 한강 합수부에 다다르면 약 1시간.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 페달을 밟다 보면 속에 맺혀 있던 게 풀려나가는 것 같습니다. 돌아오는 길이면 온몸은 땀으로 젖고 힘에 부치지만 매주 거르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제 나름의 건강 유지법입니다.


그날은 한강 합수부를 지나서 아는 후배가 있는 여의도 샛강 생태체험관까지 갔습니다. 샛강 주위의 나무와 수변 식물이 어우러진 짙푸른 녹음이 마음마저 시원하게 해주었습니다. 그곳에서 샛강 돌보는 일을 하는 후배는 나무 이름과 생리까지 설명해줍니다. 숲 관리 요령은 한 마디로 '적정 관리'라고 하면서요. 너무 세심하게, 꼼꼼하게 관리하는 게 좋은 일만은 아니라고, 숲도 나무도 자신들의 생태 리듬이 있다는 거지요. 후배에게 다육이 두 놈을 얻어 와 화분에 옮겨심는데 아내가 말했습니다. 사랑도 너무 과하면 병이 나고, 죽게까지 한다고 말입니다.


두 달 전에 사 왔던 다육이 열 놈 중에 여섯을 죽였습니다. 이유 없이 썩어들어가더군요. 물을 너무 주어서 그랬나 싶었는데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꽃집에서 사 온 부식토였지요. 부식토는 그냥 흙과 달라서 물기를 머금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식토는 흙과 버무려서 화분의 흙으로 써야 합니다. 그래야만 다육이가 물기가 없이 건조한 환경에서 줄기와 잎에 물기를 머금고 건조한 날씨를 버티며 생장해 갑니다. 바로 '적정 관리'가 중요한 것이지요. 대부분의 사람은 다육이에게 물을 자주 줍니다. 애처롭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도 이파리가 시들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게 대체로 한 달 간격입니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 


지난주 금요일에는 평소 잘 알고 지내던 후배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런저런 일 얘기를 하다가 그의 목소리가 젖어있음을 느꼈습니다. 통화하면서 울고 있었던 거지요. 그리 힘든 일을 의논하던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는 정의기억연대 사건 이후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불안하다고 했습니다. 요즘 눈물이 자꾸 나요, 이러다가 죽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무얼 잘못하고 있나 싶기도 하고, 제가 일을 못 하면 우리 단체가 욕 먹을까 봐 불안해요, 사람들 보는 게 무서워요 그러면서요.


그는 직책은 사무국장이지만 혼자서 일하는 활동가입니다. 그는 말하면 누구나 아는 사건으로 친구를 잃었습니다. 고통 속에 죽어간 친구를 잊지 못하고 늦은 나이에 단체 활동가로 들어섰습니다. 이런저런 일을 기획하기도 하고, 혼자서 회계 정리도 합니다. 행사 때는 혼자서 자료집을 만들고 연락도 돌리고, 사회도 봅니다. 그러니 정신이 없지요. 누구에게 터놓고 자신의 고민도 말도 못 합니다. 시키는 사람만 있고, 챙겨주는 사람 하나 없고, 속을 털어놓고 얘기할 상대도 없습니다. 네가 잘못한 게 아니다, 다 받아주지만 말고 못 하는 건 못 한다고 하고, 부당하면 거부하라고 말했지만 그 친구는 잘 그러지를 못 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병원에 꼭 가봐라, 술 한 번 먹고 울자고 했습니다. 울지도 못하면 병이 깊어지니까요. 


요즘 활동가들이 많이 힘들어합니다. 자신들이 잘못한 게 없는데도 정의기억연대 일이 자신들의 일 같다고 합니다. 피해자들을 만나는 일을 피할 수 없는데, 그 피해자들이 자신들과 함께 해왔던 일들을 깡그리 부정하면 자신이 어떻게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故손영미 소장을 이해한다고도 합니다. 활동가들이 활동비부터 챙긴다는 비난을 받는 것도 억울합니다. 자신들의 활동비에 앞서 단체의 재정을 걱정하는데 그런 마음 몰라주는 것도 서운한 거지요.


적정한 거리 두기


인권단체든 시민단체든 잘못하는 것도 있고 피해자들을 서운하게 한 것도 있을 것이며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일손이 달리니 미루어둔 일도 있을 것입니다. 작은 단체일수록 더 그렇지요.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하지 않으면 이 일은 펑크 나게 되고, 곧 빈구석이 생기는 걸 알기 때문에 휴가도 제대로 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시민단체에 약점 하나 생기면 싸잡아서 욕을 하고 잡아먹을 듯이 덤벼듭니다. 어디 숨을 데도 없는 활동가들은 그걸 고스란히 감내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마음의 깊은 상처를 입고 하나둘 현장을 떠나가지요. 그렇게 인권운동, 시민사회운동의 생태계가 척박해집니다. 


사랑도 적정해야 하고 비판도 적정해야 합니다. 거리 두기도 적정해야 하지요. 지금은 적정한 거리에서 서로에게 응원이 필요할 때입니다. 


인권재단 사람은 <인권ON> 캠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다들 어려운 형편인데도 어려운 사람이 어려운 사정을 알아준다고 할까요? 많은 분이 호응해주고 계십니다. 기부자들 덕분에 오늘도 하늘 보며 잠깐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올여름 무더위도 잘 이겨내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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