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 인권버스 시리즈2] 속헹씨가 일하던 포천에서 생긴 일

황서영(콘텐츠팀)
2022-07-04

2016년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처음 한국 땅을 밟은 한 여성 이주노동자가 있었습니다. 비닐하우스는 막아줄 수 없는 매서운 추위가 닥친 2020년 12월의 어느 겨울날, 그는 동료에 의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죠. 사인은 간경화로 인한 식도정맥류 파열. 본국으로 돌아갈 날을 3주 앞두고 그렇게 반대 방향의 머나먼 길을 떠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누온 속헹. 겨우 31살의 나이였어요. 만약 그가 한국에 오지 않았어도, 아니 숙소가 적어도 비닐하우스는 아니었어도, 제 때 제 때 병원을 갈 수 있는 상황이었어도, 이같은 비극이 벌어졌을까요? 사망 사실 자체만으로도 비통한 마음인데, 명백히 산재인 사건을 산재로 인정받기까지 무려 500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는 점은 유족과 동료들을 더욱 애타게 했습니다. 


‘지구인의 정류장’을 비롯한 이주노동인권단체들이 함께 진행하는 이주노동자 권리찾기 행사인 ‘찾아가는 인권버스’. 지난 6월 18일에 진행된 2022년도 첫 인권버스는 속헹씨가 일하던 포천으로 향했어요. 첫 순서로 그의 추모제가 진행되었습니다.


포천은 예전에 종종 오갔던 지역이라, 가는 길에 펼쳐진 풍경이 낯설지만은 않았어요. 익숙한 지명, 익숙한 향기. 그러나 도착해서 제가 보고 느낀 것은 아무리 경험해도 익숙해질 것 같지 않은, 아니 익숙해져서는 안되는 것이었죠.


찾아가는 인권버스 시리즈1편 보러 가기 >


추모제에서 린사로 스님이 속헹씨의 영정 앞에서 추도염불을 하고 있어요.



추모제는 캄보디아 국적의 린사로 스님의 추도 염불과 함께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되었어요. 곧이어 캄보디아에 있는 고인의 유족들이 화면으로나마 인사를 전했어요. 그들은 산재 인정을 받기까지 도움을 주었던 많은 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했어요. 딸이 겪은, 동생이 겪은 고통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시는 듯 했습니다. 



"만약 사장님이 못된 짓을 하거나 월급을 잘 주지 않으면 선생님들이 도와줄 겁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 속헹씨의 가족들



이후로도 추모사가 이어졌어요. 



속헹씨의 동료 짠나씨가 발언하고 있는 모습


“한국에 오기 전에는 한국 법이 잘 돼있으니까 한국에 와서 일해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 가슴 아픈 일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저도 사람입니다. 사장님은 제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나요?”
- 짠나 (故속행 씨의 동료)



정치하는 엄마들의 윤일순씨가 발언하는 모습

“기숙사 사진만 보고 굉장히 외진 곳인줄 알았어요. 오늘 와서 보니까 이렇게 민가가 가까이 있는 곳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 더 많이 관심 가지고 저도 제가 있는 자리에서 활동하겠습니다.”  
- 윤일순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



약 두 달 전, 안산에 있는 ‘지구인의 정류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어요. 이주 노동자 관련 문제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기에 그 곳에서 경험한 모든 게 놀랍고 새로웠죠. 하지만 그마저도 대부분 대표님의 마이크를 통해 전해들은 이야기에 불과했어요.

  

현장에는 다른 어떤 공간에도 없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속헹씨의 이야기는 이미 수차례 기사로도, 위에서 언급한 ‘지구인의 정류장’에서도 접해 알고 있었지만, 속헹씨가 일하고 생활하다 숨진 그 곳에서 다시금 듣고 동료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니 마치 새로운 사건처럼 충격적으로 다가왔죠.


혹자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으며 이들 때문에 한국인이 피해를 본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요. 다음은 얼마 전 읽은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에 쓰여있는 구절이에요.


사람들은 대체로 평등을 지향하고 차별에 반대한다. 관념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소수자 때문에 다수자가 차별받는다는) 다수자 차별론도 결국은 차별은 옳지 않다는 기본 전제 위에 성립한다. 사람들은 적어도 평등이라는 원칙을 도덕적으로 옳고 정의로운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대부분의 선량한 시민에게 차별을 하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차별에 가담하는 건 도덕적으로 허락되지 않는다. 차별이 없다는 생각은 어쩌면 내가 차별하는 사람이 아니길 바란다는 간절한 희망일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히려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이 역설적으로 차별을 하고 있을 가능성은 높다.
- 『선량한 차별주의자』(김지혜, 창비출판사, 2019) 중에서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는 이주민들에게 차별적 대우를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에 분노하면서도, 혹시 나에게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차별적 시선이 존재하지는 않는지 검열하고 또 반성해보려 합니다. 


故 속헹씨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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