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고통을 알아주고 연대한다면『상처는 언젠가 말을 한다』

김경희
2022-05-27

몸에 난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을 떠올려 봅니다.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고 적당한 약을 바른다.'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도 이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상처를 드러내 보이고 적당한 위로를 받는 것.'


그런데 상처를 드러내지도 못한 채로, 더 벌어지지 않게 움켜쥐고 버텨온 사람들은 어떻게 회복을 할 수 있을까요?


인권활동가 박래군의 신간도서『상처는 언젠가 말을 한다』는 이렇게 상처 입은 사람들에 주목합니다. 이 책은 국가폭력으로 상처를 입은 사실조차 함구해야 했던 사람들이, 마침내 소리치고 세상을 바꾼 역사적 현장을 따라가며 인권의 시각으로 해설한 답사기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부패한 관리에 착취당하던 동학 농민들, 순교의 길을 간 천주교인들, 신분 차별에 울던 백정들, 한국전쟁 시기의 학살당한 사람들, 부랑인으로 낙인찍힌 채 사회복지시설에서 죽어간 이들, 미군 위안부로 내몰려 비참하게 살았던 여성들, 가난한 판자촌의 빈민들, 그리고 여전히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삶을 조명했습니다. 


그 중에서 세가지 장면을 소개합니다.



인권의 지평을 열어젖힌 갑오년, 동학농민혁명



“근대를 여는 뇌성과도 같은 후천개벽의 비전은 시대에 뒤떨어진 조선의 지배세력에 배척당했고 학살당했다. 최제우가 그려서 보여주고, 최시형이 체계화하고, 전봉준이 현실에서 이루려던 꿈은 그렇게 실패했다. 그렇지만 학살에서 살아남은 동학교도들은 이후 의병운동에도 참여하고, 천도교로 교명이 바뀐 뒤 일제 강점기에도 여성, 청소년, 어린이 등 당시 소수자의 인권운동도 시작하고 확장해갔다. 그러니 우리나라 근대를 열어젖힌 것은 동학이었다.”

- 『상처는 언젠가 말을 한다』 49쪽


1894년 갑오년의 동학농민혁명 이전에도 수많은 민란이 있었지만 동학농민혁명은 도(道)의 경계를 넘어 퍼진 전국적인 민중혁명이었습니다. 아득한 지평선의 베들평야가 있는 전북 정읍은 가장 큰 곡창지대로 수탈과 착취가 제일 심한 지역이었습니다. 이곳 농민들은 손발이 다 닳도록 농사일을 해도 빚더미에 시달리고 추석에도 배를 곯아야 하는 삶을 살았는데요. 이 때문에 동학농민혁명이 이곳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백산성에는 1만 명이 모였습니다. "그 시절에 1만 명을 상대로 연설을 하려면 목청이 얼마나 커야 했을까?" 전봉준을 떠올리며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평등한 세상의 열망을 안고 모인 이들은 결국 지배세력에 의해 배척되고 학살되었고 ‘반란’으로 기록되었습니다. 110년의 시간이 흐른 200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만들어졌는데, 이때서야 ‘반란’에서 ‘혁명’으로 제자리를 잡았습니다.



노동·인권운동가 이소선의 연대



박래군과 이소선이 나란히 서서 웃고 있다박래군(왼쪽)과 이소선(오른쪽)


이소선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입니다. 그는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이후부터 온갖 회유와 탄압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굽히지 않았습니다. 이소선은 노동조건 개선, 노동조합 결성 등 8개 요구사항을 앞장서 따내고 청계피복노동조합을 결성했습니다. 이후에도 노동자의 권익 향상과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인간 차별이라고 하는 건 대가리 터지도록 싸워. 왜냐면 인간은 날 때부터 인권은 똑같이 타고났다. 그리고 배우고 돈 있다고 인권을 지 맘대로 휘두르고 그러면 돈 없고 권력 없는 사람들은 사람 아닌가.
- 이소선의 말, 『상처는 언젠가 말을 한다』 261쪽.


저자는 인권활동가 이소선의 철저한 평등주의자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한 문장을 소개했습니다. 거침없이 연대하고 활동했던 인권활동가 이소선을 세상 사람들이 더 많이 기억해 주었으면 했습니다.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이 아니라 노동운동가 이소선, 인권운동가 이소선을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유가족들이 누구의 어머니, 아버지로만 평생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소선뿐 아니라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종기도,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배은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유가족으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활동가로서 목소리를 냅니다. 이소선은 1970년대에서 80년대를 거치면서 160번이나 체포되고 3년 동안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건강이 악화되기도 했지만 전태일 열사의 뜻을 지키고자 활동했습니다.”
- 저자 박래군의 말


저자의 생생한 이야기에, 실제로 이소선 활동가를 만난 적 없음에도, 진실하고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모습과 환하게 웃으며 든든하게 안아주는 모습이 절로 떠올랐습니다.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저자는 인권활동가 김정하와 '탈시설 운동'을 함께 했던 인연이 있습니다. 5월 19일 열린 북토크에서 이들은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자 박래군과 김정하 활동가가 무대 위에 앉아 청중을 바라보고 있다.

저자 박래군(왼쪽)과 김정하 활동가(오른쪽)


“형제복지원처럼 과거에는 마구잡이로 잡아다가 시설에 수용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등 인권침해를 했습니다. 그러나 비노골적 방식으로 바뀌었을 뿐 구조는 지금도 똑같습니다. 이전에는 발달장애인을 관리하기 위해 묶어두었다면 이제는 약으로 활동성을 떨어뜨려서 관리하고 학대합니다.

시설에서 학대나 인권침해가 문제가 되어 학대행위자를 아무리 내쫓아도 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삶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수용형 복지서비스는 복지서비스가 아니라 학대의 공간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탈시설 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 김정하의 말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대표이사)


“인권침해 문제는 꼭 비리 문제와 연관이 되어있습니다. 복지사업을 한다고 시설을 지었지만 실상은 시설을 이용해서 돈벌이를 하고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인권유린도 마다않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을 이슈화하는 데에 피해생존자들과 인권단체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우리 사회가 진상규명을 미루면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 저자 박래군의 말 


저자 박래군과 북토크 참가자10여명이 두줄로 나란히 앉아 있다.

저자 박래군과 북토크 참가자들


때로는 누군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됩니다. 너무 거대하고 오래된 상처가 무늬처럼 박혀있다 해도, 서로 그 고통을 알아주고 연대한다면 언젠가 그 상처는 용기 내어 말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처가 회복되는 날까지, 피해생존자와 그들 곁에 함께하는 인권활동가들이 지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곁에 인권재단 사람도 함께하겠습니다.


*『상처는 언젠가 말을 한다』(박래군 저, 출판사 클, 2022)의 인세는 인권재단 사람과 416재단에 기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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