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참여 |
타리 HIV/AIDS 인권활동가 네트워크 활동가
랄라 다산인권센터 활동가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상임이사
인터뷰 진행 |
정민석, 박승호 (인권재단 사람)
인터뷰 참여 |
타리 HIV/AIDS 인권활동가 네트워크 활동가
랄라 다산인권센터 활동가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상임이사
인터뷰 진행 |
정민석, 박승호 (인권재단 사람)
우리가 만난 세 명의 인권 활동가는 코로나19가 가져온 위기의 시간을 조금씩 다른 방법으로 헤쳐나가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잊지 못하는 순간들, 그리고 돌아가고 싶은 일상에 대한 이야기까지 함께 살펴보세요.
장여경 : 코로나19라는 질병이 발병한 것 자체가 저희들에게 굉장히 충격적이었죠.
랄라 : 코로나19 3년 동안 2만 명이 넘는 사람이 죽고, 날마다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지금 사망하고 있는데 추모와 애도의 분위기는 없는. 저는 이렇게 잔인한 사회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타리 : 아무래도 초기의 기억이 아직도 제일 생생한 것 같아요. 2020년 5월에 이태원 게이 클럽에서 감염이 확산되고 있다, 이렇게 성소수자에게 포커스가 되니까 막막함, 두려움, 걱정이 몰려오더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이 사태를 어떻게 잘 헤쳐나가야 될지 굉장히 큰 도전을 받는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위기
타리: 그때 당시에 이태원 클럽 관련자들, 굉장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용산구 등에서 검사를 받는데, 그때 성소수자들이기 때문에 HIV 테스트를 강제로 하려고 하거나 아니면 강력하게 권고를 하는 그런 상황이었어요.
타리: 문진표에 '이태원, 게이' 이런 식의 메모를 막 남긴다든지 아웃팅의 우려, 그리고 그 당시에 일반 회사에서 사내 방송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이태원 갔다 온 사람 빨리 자진 신고해라, 그러지 않으면 해고를 하겠다, 라든지.
타리: 그래서 방역 정책이나 검증 정책 안에 그런 차별적인 질문이나 태도를 당장 시정하도록 하게 하는 것들이 좀 긴급하게 진행이 되었던 것 같고요,
장여경: 지방자치단체나 보건당국도 굉장히 마음이 급하니까 어떤 일을 했냐면 그 무렵에 이태원 클럽에 오고 간 사람 전화번호를 통신사를 통해서 수집을 하기 시작합니다.
장여경: 그런데 평소에 이태원 근처에 가거나 클럽을 가거나 식사를 하는 분들이 자기 휴대전화 번호를 통신사가 가지고 있다가 기관이 달라고 하면 주는, 그런 상황이 벌어질 거라고 예측을 못했을 거 아니에요.
장여경: 그래서 이건 좀 과한 측면이 있다, 그래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좀 해야겠다, 라고 해서 저희 말고 이제 여러 단체들이 같이 모여서 의논을 해서 헌법소원을 했었어요.
랄라: 코로나19 초기부터 '코로나19 인권대응 네트워크'라고 인권단체들과 연대체를 만들어서 활동을 했어요. 너무나 갑작스럽게 인권의 원칙들이 후퇴하고 차별과 혐오가 확산되는 과정 속에서,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인권의 원칙은 무언가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보고서를 발간하게 됐어요. 이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3년 동안의 활동을 지속해 왔습니다.
랄라: 이것 외에도 좀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을 좀 진행을 했는데요. 이주노동자, 홈리스, 장애인 등 사회적인 소수자들이 받는 차별의 문제를 좀 더 드러내기 위해서 다양한 활동들도 진행하고 입장을 내기도 했습니다.
랄라: 코로나19 상황에서 노숙인, 이주노동자들에게 경기도의 정책이 얼마나 잘 가닿았는지, 지원 정책을 분석하고 그리고 당사자들이 인터뷰하면서 보고서를 엮는 작업도 진행을 했습니다.
장여경: 이태원 사건은 그냥 여럿 중에 하나고요. 집회에 참가를 했다가 이제 위치 정보 가져가는 일도 생기고, 환자와 접촉한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점점 널리, 기관들이 처리하는 일들이 발생을 했고 그 핵심적인 기능을 어떤 정보통신 시스템이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게 코로나19 역학조사 지원 시스템이라는 건데, 그래서 이 시스템에 대해서 좀 연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마침 이제 재단에서 지원 사업을 해 주셔서 저희가 코로나19 역학조사 지원 시스템에 대해서 여러 가지 전문가 의견과 활동가 의견을 반영을 해서 연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장여경: 해외에서 인권 활동가들이나 연구자나 언론에서 가끔씩 드문드문 연락을 줘요. 한국의 K-방역이 굉장히 잘하는 것으로 국제사회에 얘기가 되고 있는데 영어로 된 소스가 한국 정부에서 주로 낸 자료밖에 없다고 해요. 그래서 영어로도 한번 자료를 내봐야겠다 싶었어요. 그게 결과나 반응이 나쁘지 않아서 두 번째로 재단에서 지원을 받아서 낸 연구보고서들은 모두 국영문으로 동시에 발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랄라: 코로나19를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과정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추모와 애도가 없는 사회에요. 하루에 200명이 넘는 시민이 죽는데도 사회적으로 추모와 애도의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어요.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 사회가 얼마나 매정하겠어요. 저는 이들의 목소리를 같이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랄라: 그래서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 것, 재난이 반복되지 않을 다른 사회를 같이 꿈꾸는 것이 우리에게 남은 숙제가 아닌가 싶어요.
타리: 이 감염병이라는 문제 때문에 지금 우리가 너무나 쉽게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를 가지고 들어오잖아요.
타리: 내가 감염병의 사슬 안에 있다는 것은 내 앞에 누군가가 있었다는 거고 내 뒤에 누군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고, 그 사슬을 우리가 어떻게 함께 돌보고 관리하고 유지하면서 어떤 위험도를 낮출 것인가, 잘 잠재우면서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방법, 공생하는 방법에 대해서 좀 알도록 해주는 것이 HIV 운동이 그동안 얘기해 왔던 것이기도 하고 우리가 같이 공유하고 싶은 가치인 것 같기도 해요.
장여경: 사람을 디지털 방식으로 이렇게 지목하고 어떤 특정 집단을 분류하고 이런 일들을 우리가 지금 되게 당연하게 여기고 있어요. 이제 완전히 자동화된 방식으로 우리를 분석하고 예측하고 심지어 어떤 조치를 취하는 일에 대해서 우리는 아무 보호 장치가 없습니다.
장여경: 근데 저는 이게 멀지 않은 미래라는 것을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느꼈고, 그래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지금 목격하고 있는 이 위기 상황에 대해서 좀 잘 기록을 해두고 대안도 마련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랄라: 코로나19도 바이러스는 평등하게 다가온다고 하지만 사람들이 처해 있는 조건과 위치에 따라서 코로나 19에 대한 경험이 다를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일상에서 조금 더 평등한 토대를 만드는 것, 지역과 서울의 의료 격차를 줄이고 그리고 부의 격차를 줄이고 사람들의 불평등의 격차를 줄이는 게 앞으로 재난을 이겨내기 위한 가장 현명한 방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장여경: 저는 진짜 2년 동안 사람 만나는 일이 확 줄어든 것 같아요. 활동을 할 때도 몸이 고단하긴 하지만 기자회견도 많이 하고 토론회도 많이 하고 사람들 접촉하는 일이 되게 많았는데 지금은 비대면으로 일들을 많이 하고, 메아리가 없는 활동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좀 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같이 도모하는 일들이 다시 활발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타리: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은 50명이 캠핑을 가고 싶어요. 캠프를 가서 2박 3일 동안 정말 그동안 2, 3년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회포를 풀고. 스킨십에 목말라 있던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 같아요. 대화든 정말 손을 잡는 거든 포옹을 하는 거든 그런 것에 대한 두려움 없이 연결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가장 빨리 만들고 싶어요.
랄라: 저는 지금 어린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고요, 이 친구는 13살이에요. 3년 전 10살 때 이후로 친구들의 얼굴을 본 적이 없어요. 마스크에 가려진 채 친구들을 보고 선생님을 봤죠. 저는 이 친구한테 굉장히 미안했어요. 내가 잘못한 건 아니지만 내가 살아왔던 우리 사회가 살아왔던 이 과정들이 이 친구에게 다른 사람의 얼굴을 잊게 만든 것 아니었나 그런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거든요.
랄라: 그래서 제가 돌아가고 싶은 일상은, 저는 어찌 되어도 좋으나 제가 함께 살아가는 우리 어린이가 마스크를 벗고 다른 사람의 웃는 얼굴 그리고 환한 얼굴, 슬픈 얼굴이 어떤 모습인지 잘 알아차릴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