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인권의 길을
내겠습니다.

  by 정민석

  인권재단 사람 사무처장

집밖에 나갈 때면 잊지 않고 마스크부터 챙깁니다. 벌금은 둘째 치고, 따가운 시선 때문에 마스크를 쓰지 않고서는 이동하는 것마저 불가능합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기침이라도 하면 괜히 신경이 쓰입니다. 누군가를 감염시킬 수 있다는 두려움때문에, 열이라도 나는 날이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제 만난 사람, 방문했던 장소를 다시 생각해보며 저의 하루를 되짚어봅니다.


대면하는 것보다 온라인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동료들과 사무실을 벗어나 술 한 잔 했던 시간은 사라졌습니다. 처음엔 금방 괜찮아질 거라고, 잠깐 스쳐가는 그런 바이러스쯤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채로 말이죠. 마스크를 써야만 하는 시간마저 1년을 넘길 줄은 몰랐습니다. 일상의 풍경이 완전히 뒤바뀌었고 개인의 삶도, 활동도, 익숙해진 모든 것과 결별해야 했습니다.

코로나19가 휩쓸고 간 자리


펜데믹 이후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줄을 서서 마스크를 사야할 때도, 재난지원금을 지급받는 상황에서도 이주민, 난민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범주에 포함되지 않아 배제되었습니다.

 

노숙인 지원시설이 문을 닫자 홈리스들은 밥 먹을 곳이 사라졌습니다. 밥은 커녕 지친 몸을 녹일 수 있었던 역 대합실 의자도 사라졌습니다. 홈리스 확진자가 늘어나자, 코로나19 음성확인서 없이는 밥도 주지 않았습니다. 거리에서 밥과 잠을 해결해왔던 홈리스들은 차라리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잠시나마 안정된 주거공간 얻는 게 더 낫다고 합니다.

 

시설에 갇혀 있던 장애인은 또 어땠나요. 청도대남병원부터 최근 신아원까지. 장애인이 머물던 시설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 코호트 격리동일집단 격리 가 되어 아무도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감옥과 같은 시설에서 ‘살려 달라’는 절규가 들렸습니다. 시설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외침은 비장애인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묵살되었습니다.

 

이태원 클럽 발 집단감염이 발생했을 때에는 성소수자 혐오가 극에 달했고, 우리 사회에서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한 성소수자들은 이름을 드러내고 검사받는 것조차 두려워했습니다. 동부구치소 등 교정시설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을 때는 과밀수용 등의 문제가 다시 드러났고, 콜센터 직원, 쿠팡 물류센터 직원 사이 집단감염이 발생했을 때는 재택근무는커녕 거리두기조차 쉽지 않았던 열악한 노동조건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얼마나 많은 곳에서 사회적 취약계층들이 코로나19에 노출되었던가요. 이는 우리가 몰랐던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모른 척 한 것입니다.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할 때마다 정의롭지 못한 우리 사회의 민낯이 드러났습니다.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위한 사회적 가이드라인> 표지

이럴 때일수록 인권운동은 더욱 더 바빠집니다. 2020년 초부터 인권활동가들은 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를 구축해 발 빠르게 공동대응에 나서며, 인권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K-방역에 일침을 가했습니다.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위한 사회적 가이드라인>을 작성해 발표하거나 의료공백 피해 실태조사, 쿠팡 노동자 인권실태조사 등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 확진자를 향한 혐오의 문제, 애도조차 하지 못하는 침묵에 대해서도 목소리 내었고, 감염병 확산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며 범죄화하는 정부 정책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비대면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대면하며 취약계층을 만날 수 있어야 하고, 무조건 금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말하고 모일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요구는 인권운동이 존재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경제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인권단체 운영도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인권교육이나 기행으로 운영비를 마련해왔던 단체는 대면활동이 멈추자 운영도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권운동이 권력에 흔들리지 않고 자율적 독립적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후원금은 돈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하지만 후원금마저 정체되거나 감소하기 시작했고 오프라인 후원 행사마저 개최하지 못하다 보니 경제적 어려움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긴급모금 포스터들

급한 불 끄고, 인권 ON


2020년 인권재단 사람은 인권운동의 변화에 맞춰 모금과 배분계획을 새롭게 수립하고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을 때 대구 지역에서 장애인 확진자와 자가격리자를 긴급하게 지원하고 있던 한 인권활동가의 간절한 호소가 인권재단 사람에게 닿았습니다.


당시 구호단체들이 진행하던 모금은 대부분 대구, 경북 지역에 보낼 긴급구호물품을 구입하는데 쓰이고 있었고, 지원대상도 지역아동센터나 노인복지시설, 의료인 등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장애인권 ‘활동가’를 위한 모금을 시작했습니다. 활동가들이 탈시설 장애인을 순회방문하는데 쓰일 교통비와 식비를 지원하고, 활동가로서 겪을 수 있는 심리적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비용으로 쓰일 수 있게 했습니다. 보름동안 진행된 모금이었지만, 인권재단 사람 후원인들이 적극 참여하면서 총 2천만 원의 후원금을 대구장애인지역공동체에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5월부터는 인권단체 운영비 마련을 위한 <인권ON> 모금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차라리 사회적 약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모금이었다면 더 쉬웠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우리는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인권단체가 어려워지면 사회적 약자를 위해 목소리를 내어줄 사람도, 곁을 지켜줄 사람도 없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권단체’를 지키자는 모금캠페인을 열었습니다. 인권활동가들이 걱정 없이 활동하고 행복해야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인권을 지키는 일도 가능합니다. 약 3개월 정도 진행된 모금캠페인을 통해 인권단체 10곳에 운영비를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임시방편이었지만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는 인권활동가의 모습을 통해, 이것이 정말 간절한 모금이었음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대구 장애인권 활동가들과 함께

아무런 준비는 할 수 없었지만, 당황하지 않고 사회적 약자·소수자들과 함께 1년을 보냈습니다. 여전히 팬데믹은 끝나지 않았고, 마스크 쓰는 일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입니다. 코로나19가 휩쓸고 간 자리에 무엇이 남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인권 상황은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고 있습니다. 아니 더 후퇴되었습니다. 재난이 평등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매일같이 배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권은 늘 양보해야 하고, 후순위로 밀리고 있습니다. 

 

이제 코로나19 백신 도입이 시작되었습니다. 막연하지만 코로나19가 종식되는 것은 아닐지, 마스크를 벗게 되는 날이 오는 것은 아닌지 기대를 하게 됩니다. 인권활동가들은 의약품접근권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백신접종과정에서 또 다른 불평등과 차별이 발생하지 않아야 하고, 존엄과 권리에 기반한 접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난 1년 우리가 배운 것이 있다면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인권의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코로나19는 언젠가 종식될 것입니다. 모두의 바람처럼, 정말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의 권리가 계속 침해당하고, 차별과 불평등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해결되지 않는다면 바이러스가 사라져도 재난은 끝나지 않은 것입니다. 인권재단 사람은 그동안 존재했지만 사회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차별의 문제, 일상적 재난을 해결하기 위해 인권활동가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인권운동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시민들에게 꾸준히 알려나가며, 활동가들의 곁이 되어달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험난하지만 가야만 하는 인권의 길에 동행해주길 요청합니다. 모두가 외롭지 않게.

01 - 코로나19 대응

02 - 배분/지원

03- 이어달리기

04 - 인권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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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 이어달리기

04 - 인권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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