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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세찬 눈보라에 피는 꽃, 冬花 박래전을 기억하며 - 정종숙 후원회원
    • 작성일
    • 2018-06-01
    • 조회수
    • 116
  • [인터뷰]
    세찬 눈보라에 피는 꽃, 
    冬花 박래전을 기억하며
    _정종숙 후원회원




    2018년 박래전열사 추모 30주년을 맞아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후원회원이 있습니다. 
    포토에세이 <1988 박래전> 제작에 참여한 정종숙님을 만나봅니다. 


    30주년을 맞는 소감이 어떠세요? 

    래전이 형이 우리 곁을 떠난 지 30년이나 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네요. 참 긴 세월이 금세 지났는데 뭐 하나 제대로 해놓은 게 없어서 죄송한 마음이 커요. 형이 남긴 걸 제대로 정리, 보존하고 형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책임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에 기념사업회에 뒤섞여 쌓여 있던 사진과 문서 자료를 집으로 가져와서 분류하고 정리해서 스캔을 해놓았고, 올해 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선후배들이 함께 모금도 하고 영화도 만들고 추모관도 만들고 강연, 공연, 추모제 등을 준비했어요. 


    포토에세이 <1988 박래전>이 발간되기까지 어떤 작업들을 하셨나요? 

    래전이 형이 남긴 시와 글, 사진과 자료, 형이 떠난 이후의 자취를 종합적으로 다 담을 수 있는 책을 고민하다가 포토에세이 형식을 택하게 되었어요. 직업적인 편집자가 아니라서 처음에는 막막했는데 남편의 후배님이 방향을 잡아줘서 감을 잡고 만들어 갈 수 있었어요. 딸이 파워포인트를 가르쳐줬고, 찾아보고 물어보고 배워가며 만들었습니다. 전체 내용과 형식을 기획하고, 판형과 종이를 정하고, 사진과 글을 고르고, 보기 좋게 파워포인트에 얹고, 사진 설명글을 달고, 원고를 받아 다듬고, 프롤로그와 출판사 서평을 쓰고, 디자인을 조정하고, 교정을 보고, 가제본을 만들고, 인쇄 감리를 하는 긴 과정 끝에 책이 나왔네요. 

    제가 매년 추모제 때마다 찍어둔 사진이나 평소 습관처럼 찍어둔 사진들이 책에 요긴하게 쓰였어요. 아버님 사진, 고향집 사진같은 거요. 그런데 한 페이지는 마땅한 사진이 없는 거예요. 래전이 형의 글 중에  부모님이 힘들게 농사를 짓고 겨울에 뻥튀기 구르마를 끌고 다니며 고생을 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내용에 맞는 사진이 없었어요. 그래서 시골집에 가서 벽장에 있는 사진을 꺼내 찾아보았더니 고맙게도 소 끌고 논을 가는 농부의 사진이 있었어요. 너무 희미해진 사진인데 글과 어울려서 그 페이지를 채울 수 있었네요. 그리고 신영복 선생님이 써주신 ‘동화’ 라는 시의 글씨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 친구의 액자를 해체하기도 했답니다.     


    생전의 박래전 열사에 대해 어떤 기억이 남아 있나요? 
    그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요?     

    저는 래전이 형이랑 같은 국문과였어요. 제가 1학년 때 형은 복학생이었죠. 복학해서도 운동에 대한 열정이 무척 컸어요. 그 당시에는 문학공부, 사회과학 공부하자고 불러서 운동을 접하게 하는 방식이 흔했는데, 래전이 형도 후배를 만들기 위해서 1학년인 저희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왔어요. 87년 6월 항쟁을 겪으면서 고민만 하던 저도 운동을 하게 됐고 3학년이던  1988년에는 래전 형과 같은 정파 조직에서 활동을 했어요. 저희 조직에서 인문대 학생회장 후보로 래전이 형을 세우고 선거 준비를 했는데 그때 래전이 형 모습을 잊을 수가 없네요. 불빛이 희미한 복도를 혼자 왔다 갔다 하면서 밤새도록 유세 원고를 들고 연습을 하고, 평소 잠바만 입던 형이 양복을 말쑥하게 빼입고 얼굴에 울긋불긋 난 걸 가린다고 화장을 하고 다녔어요. 인문대 학생회장 선거 기간 동안 모든 인문대생을 다 만났을 정도로 열심이었어요. 인문대 학생회장이 되어서도 그 열정은 그대로였어요. 총학생회에서 집회를 못 하고 있으면 인문대 단독으로라도 집회를 열고 몇십 명 안 되는 학우들을 이끌고 교문 밖까지 진출해서 시위를 하고 그랬습니다. 뜨거웠던 87년 6월 항쟁이 끝난 88년은 열기가 소강 상태여서 운동권 중심으로만 움직였는데 형은 그 상황이 많이 가슴 아프고 힘들었던 거 같아요. 

    지금 우리가 1988년의 인물, 박래전을 기억하는 건 그 시대를 알고 기억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민주주의와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고 기꺼이 하나밖에 없는 목숨까지 내어놓던 시대를 알게 되면 그게 얼마나 값진 것인지도 알게 될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 그렇게 애써서 지켜온 것이 지금은 어떤지 돌아보게 되고 무엇이 나아졌는지 무엇이 부족한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생각하게 될 겁니다. 


    종숙님과 인권재단 사람은 각별한 사이입니다. 
    재단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각별한 사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관계라고 할 수 있겠네요. 남편이 인권중심 사람 소장이니 자연스럽게 후원인이 됐습니다. 남편이 일하는 곳에 관심 갖고 협조하는 게 인지상정이지요. 그이가 유가협,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일할 때부터 인권영화제 같은 큰 행사 있을  때 아이들과 함께 참여도 하고 후원도 하고 그러던 게 재단과의 관계로 이어져 온 거예요. 우리 아이들 어릴 땐 사랑방 활동가인 이모 삼촌들이 저희 집에 놀러오고 저희 가족들도 행사에 가고 교류가 많았어요. 이제 아이들이 크니까 안 오고, 저만 가끔 한올모임에 참여하곤 했네요. 


    재단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인권재단사람이 잘 해오고 있어서 크게 바라는 점은 없어요. 오히려 잘 해오셨다고 칭찬해 드리고 싶습니다. 꾸준한 노력으로 여러 기금들이 만들어졌고, 기금을 제외하고도 연 2억이 넘는 후원금이 모여 53개 사업에 배분하였다는 걸 연간보고서를 통해 접하고 후원의 보람을 많이 느꼈습니다. 인권재단사람이 지금처럼 기금 모으는 것도 활발히 하고 인권활동가들 지원도 활발히 하면 돈의 제약 때문에 활동을 못하는 일이 없이 조금은 더 넉넉하게 활동을 할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첨부파일 정종숙.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