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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곁에 있어 든든한 그 사람 - 오세범 변호사
    • 작성일
    • 2017-04-05
    • 조회수
    • 631
  • [人터뷰] 

    곁에 있어 든든한 그 사람 

    오세범 변호사


      


    이제 사월은 내게 옛날의 사월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4월은 우리에게 큰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는 이 즈음, 유가족과 함께 활동한 인권재단사람의 후원회원 한 분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를 만나봅니다.

     

    세월호 참사를 마주하며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면서 바로 안산으로 달려갔습니다. 당시 변호사로서 첫발을 내딛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가족들 곁을 지켜주면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부터 안산에 내려가 가족들의 법률상담을 지원해 벌써 3년의 시간이 흘렀네요.”


    2011년 사법시험의 최고령으로 합격해 맡은 업무가 바로 세월호 참사입니다.


    가족들과 매일 보니까 친해져 그들과 함께 계속 행동하게 되었습니다. 여의도, 팽목항, 광화문 등 가족들이 가는 곳에는 같이 가게 되더군요. 세월호 참사는 우리사회에서 생명의 가치가 너무 경시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줬고, 앞으로 돈 중심에서 사람중심의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었습니다. 그리고 국가의 존재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 가족들은 생명을 보호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을 넘어 참사의 진상 규명을 위해 온갖 탄압과 모욕 속에서도 시민이 국가의 주인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분들이 국가를 세우는 사람들이죠.” 그는 생명존중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대한변호사협회에 제안해 재난안전특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1415기의 인생스토리


    그는 1974년 서울대 언어학과에 입학했지만 4학년 때 유신독재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구속되면서 삶이 달라졌습니다.


    거창하게 운동한다기보다 누군가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구속될 당시 시위라는 게 대단한 것은 아니었어요. ‘학생 여러분 모여 주십시오.’라고 외치는 순간 사복 경찰들이 달려들어 연행해 갔죠. 78년 서울구치소에서 복역할 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유신헌법 철폐, 긴급조치 해제, 민주인사 석방 구호를 외쳤다고 다시 징역 2년형을 받았어요. 제가 한 일이라곤 구호 몇 번 외친 것밖에 없어요(웃음).”


    출소 후 생계를 꾸리며 살다가 노조 총무부장이라는 이유로 회사에서 해고되었습니다. 이후 복직투쟁을 할 때 만난 인연으로 김칠준 변호사(인권재단 사람 이사)의 법무법인 다산 사무실에서 상담실장을 하고, 내일신문사 창간 멤버로 업무기획실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마흔을 넘기면서 사법시험 도전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신문사에 다니면서 생활이 안정되니까 뭔가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언론사 간부로 살아가는 게 편하기도 하지만 이것이 내 인생을 위한 최선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변호사 사무실에서 상담하던 때가 떠오르면서 사람 사귀기나 상담을 좋아하니까 변호사를 하면 재미있게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분쟁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며 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평균 수명이 늘어나니까 40대에 새로운 일을 시작해도 늦지 않을 거라는 믿음도 있었어요.”


    1997년 공부를 시작하면서 5년 정도면 승부가 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의외로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사시 도전을 시작할 때 초등학생이던 두 딸이 대학 진학을 앞둘 무렵 경제적 어려움으로 변호사 사무실에 취업해 다시 생계를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는 15년간 매년 1차 또는 2차 시험을 치렀고, 2차 도전 8회 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나에게 인권이란

    인권은 공기나 산소 같은 것이라 생각해요. 너무도 당연해 삶의 기본인데, 바꾸어 말하면 보통 때는 잘 못 느끼는 것이라 할 수 있죠. 평소 때는 잘 모르는데 없으면 바로 알게 되잖아요. 그게 인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권재단 사람을 말한다.

    그는 재단의 초창기 후원회원입니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후원을 이어왔습니다. “다산에 근무하면서, 박래군 소장을 알게 되었어요. 인권재단을 만든다고 하기에 소액이나마 후원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제 생각에 행복의 조건은 남을 도와주거나 남을 돕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단군할아버지께서도 홍익인간을 주창하셨잖아요. 변호사가 되면서 후원금을 조금 더 늘렸죠.”


    재단에 하고 싶은 말도 물어봤습니다.


    인권재단 사람은 인간의 가치를 지키는 최후의 수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래지향적인 성격은 아니라 확장성에 내심 걱정했는데 이 정도로 발전할 줄은 몰랐습니다. 인권활동가들이 현장에서 어렵거나 그만두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활동가를 도와주고 지원하는 것이 지속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보다 잘 해서 다행입니다. 사회 문제를 열심히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지속적으로 한다면 사람들에게 공감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요즘 풀뿌리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아파트 동대표로 활동 중입니다. 작은 곳에서부터 주민들과 함께 자율적이고 민주적으로 문제를 풀어 가면 공동체의 생활을 개선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풍부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2의 인생을 통해 새로운 삶을 발견하고 추진하는 그의 활동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냅니다.  


      
첨부파일 인터뷰 201704.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