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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지) [박래군의 사람살이]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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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지독한 감기에 걸려 버렸습니다. 환절기라서 조심한다고 했는데, 일교차 큰 날씨에 덜컥 걸려 버렸지요. 열이 오르고 목이 붓는 와중에 제주에 가서 강연까지 했더니 더 악화되고 말았습니다. 약만 먹고 버티다가 어제는 병원에 가서 주사도 맞았습니다. 아직도 상태가 온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아지는 중입니다. 제가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지금 제 몸의 상태가 4년 전 서울구치소 독방에 있던 때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낫지 않는 병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행사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되어 있던 중이었습니다. 몸을 돌보지 않고 무리를 해왔던 게 구속 이후 몸으로 나타나더군요. 무기력 상태에 빠져서 기운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수면무호흡증까지 있던 터라 양압기수면무호흡 환자가 취침 때 사용하는 간이 호흡기도 들여왔지요. 감방 안에서 전기 코드를 쓰는 게 서울구치소에선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몸은 계속 가라앉기만 했습니다. 

    죽어라고 운동을 했습니다. 독방 수감자에게 허용된 하루 한 시간의 운동 시간 동안 교도관이 감시하는 ‘격벽 운동장’에 들어가 온몸에 땀이 나도록 뛰고 팔굽혀 펴기를 했습니다. 취침 전에는 방에서도 운동을 했지요. 그렇게 한 달 동안 운동하고 나니 겨우 몸이 회복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다음이 문제였습니다. 귀를 잘못 건드린 탓에 외이도염에 걸려 버린 거지요. 사회에서는 약만 잘 먹으면 금방 낫는 병이지만 구치소 안에서 주는 약은 먹어도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항상 미열이 계속돼 몸이 짜증 나는 상태였습니다. 

    두 달 가까이 약을 먹었지만 보석으로 석방될 때까지 그 상태가 지속되었지요. 재판 준비도 하기 어려웠고, 아프니까 괜히 서글퍼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복면가왕이라는 털레비전 프로에서 거미가 부르는 <양화대교>가 흘러나왔습니다. “아프지 말고 좀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그래 그래” 그 노래를 듣는데 눈물이 나더군요. 11월 초에 보석으로 나와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3일 치 약을 복용했습니다. 병은 언제 그랬는지 모르게 나아버렸습니다.  

    아픈 사람들 곁에 
     
    아프면 서럽습니다. 누구든 아프지 말아야 하고, 아프면 병원 가서 진료받고 약을 처방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미국보다 낫다는 우리나라에서 가난한 사람은 제대로 병원 치료를 받지 못합니다. 포기하는 경우도 있지요. 한편에서는 과잉진료, 연명치료가 문제라면, 한편에서는 가난하기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불평등 상황이 지속됩니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픕니다. 반대로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픕니다. 몸과 마음은 분리된 게 아니라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면서 생명 작용을 해갑니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픈 데에는 자연환경 때문이기도 사회환경 때문이기도 합니다. 정치적으로나 사법적으로 억울한 사람은 화가 나고 화가 풀리지 않으면 마음이 병들고 또 몸에 병으로 나타납니다. 

    아프면 치료도 받고 쉬어야 하지만 아픈 몸과 마음을 이끌고 종일토록 일에 시달려야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인권운동 하는 사람들은 아픈 사람들을 만나는 게 직업인 사람들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이들의 얘기를 들어야 합니다. 차별과 산재 사고를 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재난참사를 겪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피해자들, 혐오표현에 노출된 소수자들, 발언력도 얻지 못하는 빈민들, 성폭력 피해를 말하지 못하는 여성들, 과거 국가폭력 피해자들, 이주민과 난민들…이런 많은 약자들의 곁에 인권활동가들이 있습니다. 

    인권활동가들은 정작 자신이 아파도 쉴 수가 없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단체마다 활동가는 적고 일은 넘쳐납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빠지게 되면 일이 중단되니까 무리하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일만 하던 활동가는 결국은 몸도 마음도 모두 지칠 대로 지쳐서 운동 일선을 떠납니다. 어떤 경우는 죽어서 떠나기도 하지요. 2년 전 몸을 돌보지 않고 활동했던 박종필 감독이 간경화로 세상을 뜬 뒤에 활동가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이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두 번의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뒤에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환절기라서 감기 환자가 많아졌습니다. 몸과 마음은 하나입니다. 몸도 마음도 아프지 마시길, 이번 가을 환절기에 저처럼 감기 걸리지 마시고 건강 잘 지키시기를 기원합니다. 


    박래군
    인권재단사람 소장 드림.

      
첨부파일 9월사람살이.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