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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지) [박래군의 사람살이] 5년 뒤, 누구의 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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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년 뒤, 누구의 곁에?



    세월호참사 5주기 기억문화제 


    요즘 5년 뒤를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예전에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지만 요즘은 5년이면 천지개벽이 될 정도입니다. 5년 뒤 우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나라는 좀 살기 좋아질까요? 5년 뒤 남북을 자유로이 오고가고 있을까요? 5년 뒤 세월호참사를 기억하는 생명안전공원이 개관하고 이를 계기로 사회는 보다 더 안전해져 있을까요?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잠든 뿌리를 봄비로 일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T. S. 엘리엇의 <황무지> 시작 부분입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죽은 줄 알았던 땅에서 라일락꽃이 피며 잊고 있던 기억을 일깨우는 봄은 잔인하다고. 차라리 겨울이 따뜻하다고. 지난 4월은 우리에게 잔인한 달이었습니다. 잔인한 기억을 떠올려야 하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4월 3일, 71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한 대학생이 말한 할머니의 사연은 사람을 울렸습니다. 부모와 오빠, 동생이 바다에 던져지는 걸 눈앞에서 본 할머니는 평생 생선을 입에도 대지 않았습니다.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할머니. 손주는 그저 할머니가 바다를 좋아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고 합니다. 제주도의 바다는 아름답지만 그 바다는 수많은 사람들을 삼킨 바다이기도 했습니다.

    망각세력 대 기억세력 

    세월호참사 5주기를 앞두고 자유한국당 정치인들은 유가족에게 막말을 해댔습니다. 아직 아물지도 않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짓에 우리는 분노했습니다. 5년 전 남쪽 바다에서 일어났던 비극을 시민들은 잊지 않았습니다. 광화문에서 태극기 부대가 방해하는 중에도 수만 명이 모여 같이 눈물짓고, 손잡았습니다. 안산에서, 인천에서, 전국에서, 그리고 해외에서 어김없이 사람들은 잔인한 비극을 기억하자고 다짐했습니다. 세월호특별수사단을 설치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4월 16일에 20만 명을 훌쩍 넘겼습니다. 한 유가족은 20만 명이 넘던 그 순간에 전율을 느꼈다고 합니다. 지겹다고, 이제는 치우라고 막말하는 사람들보다 5년 전의 약속처럼 기억의 의무를 저버리지 않는 이들이 훨씬 더 많음을 보았습니다. 

    역사학자 전우용은 예전에는 진보와 보수로 나뉘었지만, 세월호 이후로는 인간과 짐승으로 나뉜다고 말했습니다. 세월호참사를 사고라고 강변하는 사람들은 수학여행 가다 해상교통사고 당한 것을 두고 아직까지 우려먹는다고 합니다. 이들은 하루 빨리 세월호에 대한 기억을 지우려고 합니다. 이들 ‘망각세력’은 사실상 기득권세력이고 적폐세력입니다. 이들은 세상의 변화를 바라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기득권이 유지되는 세상을 염원할 뿐. 

    세월호참사를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건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은 기억함으로써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자 합니다. 이들은 이전의 참사들이 흔적도 없이 쉽게 덮였던 바로 그때부터 점점 더 세상은 지옥 같이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기억세력’은 변화와 개혁을 바랍니다. 망각세력과 기억세력 간의 싸움은 오늘도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방면에서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편에 서 있는 걸까요? 아니 나는 어느 편에 서 있는 걸까요?

    국가폭력의 기억을 호출한 서예전 

    인권재단사람은 인권운동사랑방과 함께 4월 17일부터 서예전 <선(線) 위에 선(立)―0.75평에서 붓을 든 사람들>을 열어, 아홉 분 장기수들의 서예작품 50여 점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후원을 통해 작품을 소장하실 수 있고, 후원금 전액은 인권활동을 위한 기금으로 쓰일 예정입니다. 장기수 선생님들, 전시장 방문객들은 이런 전시를 마련해줘 고맙다는 인사를 수없이 하셨습니다.

    서예전은 잊고 있던 기억을 불러냈습니다. 전시를 하며 장기수는 우리 사회에서 잊힌 존재임을 새삼 확인했습니다. 전시는 장기수들이 겪은 혹독한 수감생활, 그들을 육체적 심리적으로 고문한 전향공작의 역사를 많은 분들이 새롭게 기억해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90세 전후의 장기수들이 자신이 겪은 1970~80년대의 잔인한 국가폭력을 증언하는 자리도 가졌습니다. 그분들이 견디어낸 시간들은 얼마나 잔인했던가요? 그 일들을 우리가 잊고 있었음을 반성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인권은 그 혹독한 폭력을 온몸으로 견디어낸 이들에게 빚지고 있음에도 우리는 망각하고 있었지요. 앞으로 잔인한 국가폭력의 기억을 호출하는 일들을 만들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두고두고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한 자 한 자 써내려간 작품들을 보며 글자를 썼을 당시 그분들의 심경을 헤아려 봅니다. 

    5월에도 다시 기억해야 할 아픈 날들이 있습니다. 깊숙이 묻혔던 진실의 일단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광주에서 학살당한 시신들을 공군 수송기로 실어 날랐다는 기록이 나왔습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했을까요? 라틴 아메리카의 ‘더러운 전쟁’ 때처럼 하늘에서 던져 바다에 수장시켰을까요? 우리는 알아야 할 진실을 여전히 모르고 있습니다. 

    앞으로 5년 뒤에, 광주와 세월호참사의 진실이 밝혀져 책임자들 모두 처벌받아, 비극 속에 죽어간 이들을 추모하는 공원이 아름답게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듣기를 바랍니다. 그때까지 봄이 시작되면 몸부터 아픈 이들의 곁을 지키며 서 있도록 애쓰겠습니다. 진실을 향한 여정에 지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함께 걸어 갑시다.

    박래군 인권중심사람 소장 드림.

      
첨부파일 20190424.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