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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지) [박래군의 사람살이]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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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박래군(인권재단 사람 소장)

     


    다시 4월입니다. 동백꽃이 붉은 꽃 통째로 툭 떨어져 지는 4월입니다. 벚꽃이 화려하게 피었다가 꽃잎이 휘날리며 지는 4월입니다. 그런 4월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지난 31, 전국인권활동가대회 둘째 날은 제주 4.3유적지 기행의 날이었습니다. 제주도의 서쪽을 도는 코스 중에 동광리 큰넓궤, 송악산, 진아영 할머니 삶터를 도는 코스를 택했습니다. 강정 해군기지 싸움에 손 거들어 주러 내려올 때부터 제주 4.3 유적지를 시간 내서 짬짬이 둘러보았지만 동광리 큰넓궤는 갈 수가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는 안내자도 있으니 꼭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길을 따라 나섰습니다.

    동굴 입구의 작은 구멍으로 몸을 밀어 넣자 그곳을 지배하는 건 어둠이었습니다. 비온 뒤의 동굴 안은 습기가 가득했고 바닥에도 물기가 번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70년 전 은둔해 살던 이들이 남겼다는 항아리며 그릇, 깨진 조각들이 바닥에 나뒹굴었습니다. 천장에는 물방울을 매단 돌기들 사이로 박쥐가 동면 중이었습니다. 앞의 너른 공간을 지나자 굴은 낮고 좁아지다 못해 기어서 가야만 지날 수 있는 통로가 되었고, 이 곳을 지나야 다시 너른 공간이 나왔습니다. 180미터의 굴은 그렇게 좁은 통로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말하지 못했던 비극

    그곳에서 랜턴을 일제히 껐습니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어둠이 찾아왔습니다. 옆 사람조차 분간할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 그 곳에서 120명의 주민들이 두 달 넘게 토벌대를 피해 살았습니다. 토벌대에 발각되어 굴을 나갈 때 임신부는 나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엄마와 뱃속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누구도 전해주지 않았습니다. 동굴을 나간 이들도 일부는 토벌대에 붙잡혀 정방폭포에서 학살당했고, 살아남은 이들도 한라산을 오르다 모두 학살당했습니다. 영화 <지슬>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그 어둠 속에서 초조하게 목숨 부지했던 이들을 생각해보았습니다.

    194731일부터 1954년 한라산 금족령이 풀릴 때까지 제주도민 3만 명 이상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학살당했습니다. 운다고 죽이고, 말 안 듣는다고 죽이고, 심지어 아이마저 돌에 메쳐 죽이고그리고 중산간 마을을 모두 불태우고, 주민들을 해안가 4.3성에 소개해서 집단거주를 시키기까지 제주도에는 어느 한 곳 학살의 피바람을 피해간 마을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말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1948, 그리고 한국전쟁 시기에 이루어진 학살의 잔혹함은 말하지 못해 왔습니다. 독일의 정부와 시민들은 유태인 학살의 기억을 되새기기 위해서 베를린의 복판에 거대한 추모공원을 세웠지만, 제주도의 학살을 말하는 것은 1999년 제주 4.3특별법이 만들어질 때까지 국가보안법 위반 행위로 처벌받는 일이었습니다. 2003년에서야 진상조사보고서가 발표되고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를 대표해서 사과를 했습니다. 그리고 2008년에야 제주 4.3평화공원이 준공되었고, 2014년에 들어서야 국가추념일로 지정되었습니다.

     

    4.3에 정명(定名)

    진아영 할머니는 우리나라에서 선인장이 자생하는 유일한 곳이라는 한림면 월령리의 두 칸짜리 작은 집에 살았습니다. 그는 토벌대의 총에 턱을 맞고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200490세로 돌아가실 때까지 무명천을 턱에 대고 살았습니다. 턱이 없으니 말도 웅얼거렸고 음식도 남 앞에서는 절대 먹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할머니는 제주 4.3의 비극을 온몸으로 살았습니다. 그 집에는 할머니가 턱을 잃기 전의 사진이 무명천으로 턱을 가린 사진과 나란히 있습니다. 평생 턱을 가렸던 무명천도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꼭 그곳에 가 보시기 바랍니다.

    70년의 어둠을 젖히고, 이제야 비로소 말해지기 시작하는 제주 4.3입니다. 학살의 끔찍한 비극은 덮으면 덮을수록 악의 세력에게 힘을 실어줍니다. 빨갱이, 종북을 외치며 나라를 불의와 부정부패, 폭력으로 지배해온 세력들에게 굴복하는 일이 됩니다. 제주 4.3은 이 나라의 인권구조의 원형을 주조해냈습니다. 그 구조를 깨는 일은 제주 4.3을 말하는 일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그래서 제주 4.3평화공원에 누워 있는 백비에 이름을 새기자는 정명(定名)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노란리본과 함께 동백꽃 배지를

    세월호 참사 1년 뒤에 벚꽃이 화려하게 피었던 꽃길을 걸어오던 유가족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삭발한 엄마들, 상복을 입은 그 엄마들은 아이들의 영정을 가슴에 안고 벚꽃 잎이 바람에 휘날리는 길을 걸었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 금요일에 돌아온다던 아이들은 3년 뒤 금요일에야 돌아왔습니다.

    오는 416일에는 세월호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합동영결식이 있습니다. 4년 만에 열리는 영결식입니다. ‘영결은 영원히 이별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비극을 잊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다짐하는 날이어야 합니다. 잊히면 반복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말한 것은 “4.16 이후는 이전과 달라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4년 동안 온갖 멸시와 모욕을 당하면서도 말했고, 모였고, 외쳤습니다. 그런 행동의 끝에 세월호 참사를 덮으려던 세력은 권좌에서 끌려 내려와 감옥으로 갔고, 새 정부가 탄생했습니다. 진상규명은 이제야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번의 영결식은 새로운 시작점이어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의 싸움 상대는 시간일지 모릅니다. 시간이 지나면 또렷했던 기억도 희미해지고 분노와 아픔도 점차 희미해집니다. 일상을 살기도 너무 힘들기 때문에 때때로 잊는 게 편하다는 것도 압니다. 그렇지만 제주 4.3의 비극처럼, 말하지 않으면 묻힙니다. 제주 4.3이 깊은 어둠 속에서 나와 증언하게 해야 하고 세월호참사도 분명하게 밝혀야 합니다.

    어느 시인은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별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고 노래했습니다. 4월에는 노란리본과 함께 붉은 동백꽃 배지를 함께 달기를 바랍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결코 잊지 않겠다는 약속과 과거처럼 뒤로 물러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달이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