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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지) [사람살이 / 201712] 이룬 것도 잃은 것도 많은 해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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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룬 것도 잃은 것도 많은 해를 보내며

    _박래군(인권재단 사람 소장)

     

     

    첫눈 오던 밤의 국회

    첫눈이 내린 날 밤은 길었습니다. ‘사회적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사회적참사법)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을 하루 앞두었던 1124, 세월호 유가족들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국회의사당 정문 앞 돌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아 버렸지요. 낮에는 햇볕이 들어서 따뜻했지만 해가 지고 난 다음부터는 찬바람도 세게 불고, 밤이 깊어지자 눈도 내렸습니다. 제대로 내린 첫눈이었습니다. 첫눈이 국회를 하얗게 덮어버렸습니다.

    활동가들은 급히 텐트를 사오고, 침낭과 이불을 들이고, 두터운 비닐을 사와서는 텐트 위를 덮었습니다. 바람에 날린 눈발이 고스란히 농성장으로 들이쳤기 때문입니다. 겨울 농성 중에 눈이 오면 제일 걱정인 게 옷도 침구도 젖는다는 것입니다. 눈을 막지 않으면 젖은 침구 속에서 떨면서 밤을 지내야 하니까요. 그렇게 잠을 청하는 유가족들을 보면서 저는 한동안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첫 번째 신속처리안건으로 처리되어야 할 사회적참사법의 수정대안을 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의 합의로 만들어야 하는데 국민의당이 자꾸 어깃장을 놓으면서 중요 조항들을 삭제하거나 후퇴시키려 했기 때문입니다. 초조한 시간들이 흘러갔고, 새벽이 되어서야 박주민 의원실 소파에서 쪽잠을 잤습니다. 첫눈이 오면 아내에게 전화로 알려야지 하는 생각은 할 수도 없을 만큼 마음은 다급했고, 한편으로 피곤했지요.

     

    제대로 된 진상규명의 길

    다음날 오전 9시에야 마지막 수정대안에 합의가 이루어졌고, 920분 국민의 당 의총에서 승인이 되었습니다. 1030분경에 세월호 유가족,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같이 국회 본회의 방청에 들어갔습니다. 73번째 안건으로 사회적참사법이 상정되었습니다. 박주민 의원이 수정대안 발의 제안 설명을 한 후, 찬반토론이 이어졌습니다. 반대토론에 나선 것은 자유한국당 정유섭 의원이었습니다. 그는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필요성은 인정한다고 하면서 세월호는 이미 검찰 수사, 감사원 감사, 국회 국정조사, 특별조사위원회 조사, 선체조사위원회 조사 등을 거쳐서 진상규명이 다 되었다, 진실을 알고 싶으면 자신에게 오라, 다시 특별조사기구를 만들어서 세월호 조사를 하는 건 세금 낭비다, 이 법을 통과시키는 건 국회의 수치다 하면서 망발을 늘어놓더군요. 자유한국당 의석에서는 잘 한다며 호응하는 의원들도 있었고요. 사사건건 진상규명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던 장본인들이었기에 당장 뛰어 내려가서 멱살을 잡고 끌어내리고 싶었지만 어쩌지 못했지요.

    다행히 법안은 통과되었습니다. 그 순간 세월호 유가족들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서로 손을 맞잡고 우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저도 이젠 됐다며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2년 동안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11월을 정말 정신없이 보냈습니다. 갈무리해야 하는 것보다는 새로 시작해야 일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목포신항에 머물던 미수습자 가족들은 결단을 내렸고, 그예 뼈 한 조각도 쥐지 못한 채 빈 관에 눈물의 편지를 채워서 장례를 치렀습니다. 37개월을 기다렸지만 미수습자 다섯 명의 유골은 한 점도 발견하지 못하고 장례를 치렀는데, 해수부는 그 하루 전날 유골 한 점을 발견하고도 숨겼습니다. 이런 엄청난 짓을 저지른 이들은 해수부의 적폐세력으로 찍혔던 관료들이었습니다. 대통령과 장관은 바뀌었지만, 이전 정권에 복무했던 고위 관료들은 그대로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청산을 요구해왔지만 정부에서 미루다가 결국 이런 일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 정부는 새 정부이기는 하지만 이전 정부와 적폐 관료들을 그대로 두고 있는 동거정부인 셈입니다. 앞으로도 적폐 관료들이 계속 사고를 칠 것인데 걱정이 많습니다. 촛불정부라면 촛불정부답게 촛불시민의 명령을 귀담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벌써 12, 이제 올 한해도 저물어 갑니다. 역시나 많은 일들이 있었던 한 해가 다시 저물어 갑니다. 올해를 돌아보면 박근혜 일당을 권좌에서 끌어내렸고, 그러자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왔고요, 새 대통령이 주는 감동들이 있었지요. 그렇지만 개혁은 더디기만 하고 쉽게 세상은 변하지 않음을, 넘어야 할 산이 많음을 절감하기도 했습니다. 쌓인 적폐들을 들어내야 하는데 적폐는 여전합니다. 국회는 요지부동이고요.

     

    새해에는 아픈 사람 없이 함께

    기쁨 뒤에 아픈 일들이 많았던 한 해였습니다. 함께 일하던 활동가들이 병에 걸려서 일을 중단하고, 더러는 세상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후배들을 보내면서 너무 힘들고 아프고, 슬픈 데도 계속되는 일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지난 9년 동안의 심리적 고통이 몸의 병으로 나타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 재단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사무처장도 집중적인 건강관리를 해야 해서 잠시 재단을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참 속이 많이 상합니다. 몸과 마음 다치지 말고 병 얻지 말고 건강하게 활동을 하도록 지원한다고 하는 재단인데 그렇지를 못하네요. 우리 후원인들도 건강을 잃지 않게 평소에 돌보시길 바랍니다. 건강해야 같이 갈 수 있으니까요.

    서로 의지가 되고, 서로에게 어깨를 내어줄 수 있는 이들이 같이 만들어가는 세상, 누구도 차별 받지 않고. 소외되거나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향한 꿈을 더욱 키워가는 새해를 염원해 봅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모두가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향해 큰 걸음 내딛는 새해이기를 기원합니다. 한 해 동안 참으로 고마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