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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살이 / 201709] 힘들었던 여름의 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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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힘들었던 여름의 끝에서


    박래군(인권재단 사람 소장)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박종필 감독은 그예 저세상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를 마석 모란공원에 묻기까지 참으로 힘든 시간들이었습니다. 30년차 인권활동가로 살면서 후배들을 몇이나 앞세우고 있는 것인지요. 비 내리는 광화문 광장에서 그의 영결식 사회를 보며 겨우겨우 순서들을 진행했습니다. 다행히 내리는 빗물에 눈물이 가려졌지요. 장례를 마치고 며칠 뒤에 설악산 공룡능선을 넘었습니다. 험한 능선을 넘었더니 마음이 조금은 나아지더군요.


    인권현장을 지키는 일은 우선 듣는 일입니다. 아픈 이야기, 슬픈 이야기, 억울한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세상이 지옥 같기만 합니다. 어떻게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약자와 소수자들이 그런 억울함을 이기고 슬픔과 아픔을 이기며 일어나는 모습을 보는 게 감동이기도 합니다. 그들에게는 당신이 잘못한 게 아니다라는 말이면 충분합니다. 그 말 한마디에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인권활동가들이 현장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이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들과의 끈끈한 연대 말입니다.

     


    처음으로 시작한 스토리 펀딩


    재단에서 처음으로 스토리 펀딩을 합니다. 연재 첫 회를 우여곡절 끝에 제가 쓰기로 했는데 진짜로 쓰기 힘들었습니다. 인권활동가들은 가오로 사는데, 가오 떨어지게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쓰자니 마음이 나질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인권활동가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몇몇 인권활동가들은 그래도 나은 편입니다. 바닥을 지키는 많은 인권활동가들은 대표적인 인사나 전문가들에게 가려진 채 빛도 보지 못하고 일을 합니다. 세상은 그런 활동가들의 열정을 알지 못합니다. 누구는 활동가의 삶이 눈을 뜨면 출근이고, 눈을 감으면 퇴근이라고 말합니다. 사무실에서 일이 끝나도 일거리를 싸들고 나와서 결국 집에서도 일을 해야 하는 게 인권활동가들입니다. 그런 활동가들이 현장을 떠나는 것은 중요한 사회적 자산을 잃는 일입니다.

    지난주에 두 명의 활동가를 만났습니다. 모두 5년 이상 인권단체에서 활동을 했는데도, 일도 힘들고, 전망이 보이지 않고, 그런다고 인정을 받는 것도 아니고, 희망이 없다고 합니다. 더 시간이 가기 전에 전업해야겠다고 하는데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이후에 하고자 하는 일들을 도와주겠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요? 활동가들을 잡아두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 것일까요? 그날 저녁 그들을 만나 소주를 참 많이 마셨습니다.


    스토리 펀딩 한 번으로 인권활동가들을 잡아둘 조건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내년에 인권단체와 활동가를 지원하기 위한 재원을 확대한다는 1차 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 뿐입니다. 다만 이번의 모금을 시작으로 해서 재정적 토대를 단단히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글에서도 썼듯이 후배 인권활동가들이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인권현장을 지키며 인권의 나무를 더 풍부하게 키워서 숲을 만들어가는 꿈을 이루기 위한 프로젝트의 시작이라고 봐주시기 바랍니다. 후배 활동가들이 지치지 않고 아프지 않고 다양한 인권현장을 지켜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 재단의 설립 목적이고 지향입니다.

     


    인권의 숲을 만들고 싶은 꿈


    이번 스토리 펀딩은 저의 글로 시작하지만, 이후에는 <오마이뉴스>의 기자들이 9명의 인권활동가들을 인터뷰한 글을 싣습니다. 그 기자들의 감각을 믿기에 같이 하자 했고, 이 과정에서 기자들도 인권활동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거라 생각합니다. 활동가들의 삶과 이야기가 잘 전달되어서 세상 사람들이 인권운동과 인권활동가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재단의 회원 여러분도 한 주에 한 번씩 연재되는 활동가들의 인터뷰 기사를 눈여겨 봐주시고 주변에 많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어느 해보다도 무덥고 비도 많았던 여름이 물러나고 있는 듯합니다. 오랜만에 해가 난 하늘은 이미 가을이 왔다는 듯이 높고 푸르기만 합니다. 이 글을 쓴 오늘 위암 수술을 받은 김일란 감독이 항암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상태가 양호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너무 기쁩니다. 활동가들이 아프지 않고 지치지 않고, 아픈 이들과 우는 이들의 곁에서, 또 억울한 이들의 곁에서 들어주고 손잡아 일으켜 주는 일을 계속 해나갈 수 있게 힘찬 응원 부탁드립니다.


    오는 가을에는 오랜만에 회원 여러분과 가을 산을 오르고 싶습니다. 가을 산에서 함께 꾸는 꿈을 얘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첨부파일 storyfunding_02.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