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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살이 / 201704] 사람의 말을 찾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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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말을 찾을 때

     

    박래군(인권재단 사람 소장)

     


    손가락 사이로 힘없이 흘러내리는 말. 모래 한줌의 말. 혀끝에서 맴돌다 삼켜지는 말. 귓속에서 웅웅거리다 사라지는 말. 먹먹한 물속의 말. 해초와 물고기들의 말. 앞이 보이지 않는 말. 암초에 부딪히는 순간 산산조각이 난 말. 깨진 유리창의 말. 찢겨진 커튼의 말. 모음과 자음이 뒤엉켜버린 말. 발음하는 데 아주 오래 걸리는 말. 더듬거리는 혀의 말. 기억을 품은 채 물의 창고에서 썩어가는 말. 고름이 나오는 말. 헬리콥터 날개소리 같은 말. 켜켜이 잘려나가는 말. 잘린 손과 발이 내지르는 말. 아직 핏기가 가시지 않은 말. 시퍼렇게 멍든 말. 눌린 가슴 위에 다기 내리치는 말. . . . 망치의 말. 뼛속 깊이 얼음이 박힌 말. 온몸에 흐르는 전류에 감전된 말. 화상 입은 말. 타다 남은 말. 재의 말.

     

    나희덕 시인의 시 <문턱 저편의 말>에 나오는 대목이다. 우리는 많은 말을 하고 살지만 실상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살 수는 없다. 능수능란하게, 현란한 수식어를 동원하고 논리적으로 말하는 사람의 말보다 어떤 때는 채 말이 되어 나오지 못하는 말이 더욱 오래 남을 때가 있다. 나희덕은 광주법원의 법정에 증인으로 나온 세월호 생존 학생이 증언을 했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그 학생은 말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한다. 말은 수시로 끊어지고, 결국 우리 반에서……저 말고는……아무도……구조되지 못했……친구들도……살 수 있었을……아무도……저 말고는 아무도……이렇게 증언은 끝난다. 법정을 메웠던 유가족들도 검사도 판사도 울고 말았다.


    세월호가 3년 만에 참혹한 모습으로 올라왔다. 옆으로 누워서 올라온 그 배를 보고도 그랬다. 유가족들도, 미수습자 가족들도 말을 했지만,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입속에서만 맴돌고 말로 나오지 못했을지 모른다. 나도 그 세월호를 보고 그 배의 모습을 묘사할 적절한 단어를 찾느라 헤맸다. 그 먹먹함과 분노와 또 다른 그리움과 간절함과 그리고 무엇인지도 모를 것들이 뒤엉켜서 무어라도 말해야 할 것을 못하고 지나가고 말았다. 말은 그런 거다. 말이 되어 나오지 못하는 소리가 때로는 울음으로, 때로는 몸짓으로, 때로는 어떤 표정으로 그쳐 버리는데, 우리는 그의 말소리를 듣지 못했어도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게 된다.


    416미디어위원회가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아서 만든 <승선>이라는 단편 다큐멘터리에서 주인공인 김성묵 씨가 그랬다. 그의 말은 어눌하지는 않지만 보통 사람들보다 느렸고, 참사의 그 순간을 증언하는 그의 말은 채 말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다. 그런, 소리가 되지 못하고 입 속을 맴도는 그의 말에 우리는 울게 된다. 그가 마지막 탈출을 할 때 보았다는 그 학생의 마지막 순간도 우리는 안다. 그리고 1년을 도망쳤다가 결국은 광화문에서 나와서 노란리본을 나누는 그의 채 하지 못한 말에 공감한다.

     

    이제는 사람의 말을 하자


    3년의 세월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그와는 반대의 편에 서서 살았던 사람들도 있다. 어떻게 하면 세월호를 덮어 버릴까 궁리했던 세력들이 청와대를 차고앉아서 사람들의 입을 막고자 했다. 블랙리스트가 그런 이유에서 만들어졌고, 화이트리스트도 그런 이유에서 만들어졌다. 그런 세력은 강하기만 했다. 울부짖는 유가족들을 시체를 팔아서 돈을 더 받으려는 시체장사라고 매도했고 언론은 그런 말을 받아썼다. 그런말은 카톡으로 퍼 날라졌다. 그래서 지금도, 정말로 유가족들이 돈을 더 받으려고 거리에 나와 집회시위를 하는 줄 아는 사람들은 광장에서 촛불 대신 태극기를 들었다. 그런 지시를 내렸던 우두머리는 탄핵을 당했고, 직접 관련이 있는 몇몇 사람은 감옥에 가 있다.


    다시 말의 시절이 돌아왔. 조기 대선에 나온 사람들이 뱉어내는 말이 언론을 타고 전국을 뒤덮고 있다. 여전히 세월호 참사를 해상사고 쯤으로 보려는 자는 한 정당의 대통령 후보자로 선출되려고 하고 있다. 어떻게 그럴까?


    세월호를 저 깊은 바다 속에 가라앉은 채로 두려고 했던 자들은 국민들의 등에 떠밀려서 인양 결정을 하고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인양을 차일피일 미루었다. 심지어는 상하이샐비지가 처음 제시했던 방식으로는 절대 안 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1년 반 동안 그 방식으로 인양하려다가 세월호에 백 수십 개의 크고 작은 구멍을 내고, 선체도 찢어먹었다. 증거가 될 만한 세월호의 앵커도, 스테빌라이저도 절단해먹더니, 인양 과정에서는 11미터의 램프도 절단했다. 수많은 증거들이 인양과정에서 치워지거나 훼손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제는 선체를 어떻게든 산산조각내서 고철로 팔아버리려 한다는 의혹을 낳게 하는 해수부, 그들은 지금도 비밀주의를 고수하면서 피해자들의 말을 막고 있다.


    이제는 말해야 한다. 미수습자 가족들이 그 배 안에 남아 있을 수 있는 가족들의 시신을 찾기 위해 3년의 세월을 인고했다고. 그러므로 그들의 울음, 눈물말이 되어 나오지 못하는 말을 가벼이 말라고 말해야 한다. 유가족들이 시편(屍片; 시신의 조각) 하나, 유품 하나라도 건지려고 하는 절박감을 비웃지 말라고 말해야 한다. 돈으로 모든 걸 환산하기 좋아하는 세력들에게 이번에는 절대로 그들 마음대로 세월호를 처분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알아듣게 말해야 한다.


    미수습자 가족들이 말 못하면, 유가족이 말 못하면, 우리가 말하자. 우리는 그들보다 좀 더 혀가 자유롭지 않은가. 우리도 그들만큼 참극을 겪으면서 많이 아팠지만 그들보다는 더 수월하게 소리 내어 말할 수 있지 않은가. 짐승의 말이 아니라 사람의 말, 진정이 있는 말, 정이 있고, 공감하는 말을 하자. 그리고 416, 그들을 위해 무엇이라도 하자. 그들을 기억하고 있는 우리는 사람이므로, 사람의 말로 전하자.

     

    그래도 문은 열어두어야 한다

    입은 열어두어야 한다

    아이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돌아올 수 있도록

     

    바다 저 깊은 곳의 소리가 들릴 때까지

    말의 문턱을 넘을 때까지

     

    - 나희덕, <문턱 저편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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